정끝별의 시 '현 위의 인생'

- 이 좋은 시를 기출 문제로 만나지 않기를

by 글쓰는 민수샘

현 위의 인생

- 정끝별


세 끼 밥벌이 고단할 때면 이봐

수시로 늘어나는 현 조율이나 하자구

우린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어차피 한 악기에 정박한 두 현

내가 저 위태로운 낙엽들의 잎맥 소리를 내면

어이, 가장 낮은 흙의 소리를 내줘

내가 팽팽히 조여진 비명을 노래할 테니

어이, 가장 따뜻한 두엄의 속삭임으로 받아줘

세상과 화음 할 수 없을 때 우리

마주 앉아 내공에 힘쓰자구

내공이 깊을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지

모든 현들은

어미집 같은 한없는 구멍 속에서

제 소리를 일군다지

그 구멍 속에서 마음 놓고 운다지





15행의 시인데 설명은 150줄이 넘는다지

시집을 넘기며 읽은 이들은 1500명쯤 될까

기출문제로 풀어야 했던 아이들은 15000명쯤 될까

내가 부드러운 흙의 소리로 시를 낭송해도

너는 가장 위태로운 비명으로 듣겠지

그래도 따뜻한 두엄의 속삭임으로 받아줘

팽팽히 조여진 정답과 해설은 치워두고

한 구절이라도 서로의 마음에 닿도록 조율하자구

마주 보며 아름답게 내공에 쌓자구

우리는 남들이 파놓은 구멍에 빠져

함께 우는 현 위의 인연이니

(이런, 나도 11줄이나 괜한 소릴 튕겼네)






작가의 이전글그가 나의 이름을 5번 불러주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