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서 큰 질문을 던지자

- 배움의공동체 수업디자인 이야기(1)

by 글쓰는 민수샘

1. 진정한 배움 - 아이들이 큰 질문을 던지게 하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삼각형이 있습니다. 배움의공동체를 주창하신 사토 마나부 교수님의 '배움의 성립하는 요건' 3가지인데요. 첫 번째인 '진정한 배움- 교과의 본질을 추구하는 배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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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배움의공동체 철학에 공감해도 일상적인 수업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평가부터 바꿔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 프로젝트형의 수행평가에 도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혁신교육대학원에서 엄기호 교수님의 강의를 듣던 중에 수업디자인과 연결할 내용이 있었어요.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세이트 폴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변천사를 통해 구엘리트와 신엘리트의 차이를 살펴보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가장 학비가 비싼 부자 학교의 교육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오히려 가난한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과 배움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의도입니다.

세이트 폴 고등학교는 아이들에게 먼저 '큰 질문'을 하게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문명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를 1년동안 탐구한다고 합니다. 교과의 본질을 추구하는 배움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이러한 교육과정 속에 담긴 의도는 좀 무섭습니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엘리트에게 지식의 배타적 특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지배하는 계급이 아니라 지도하는 계급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구엘리트가 민중들은 이해할수 없는 우아한 학문과 예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갔다면, 신엘리트는 현실세계 안으로 들어와서 튀지 않게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민중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지도계급'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권위와 권력에 의한 지배가 설득과 동의를 통한 지도로 바뀐 것이지요.

독서와 토의, 글쓰기를 통해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는 수업을 듣고 평가를 할 때에는 세부적인 정보를 얼마나 알고 있나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가를 평가합니다. 이 수업을 마치고나면 저마다 관심 있는 세부 주제를 탐구하는 수업으로 넘어가는 50개가 넘는 강의가 개설된다고 합니다. (500명이 조금 넘는 학생수인데 교사가 100명이 넘어서 가능할 것 같아요.)

세인트 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나 예일대 등에 진학한 학생들은 서민층 출신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면서 따르게 하는' 리더로 활약(?)합니다. 힙합만 듣는 서민층의 아이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상류층 아이에게 음악에 대해 말을 걸 수 없지만, '음악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공부한 상류층 아이는 힙합을 듣는 아이와 음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를 즐겨 읽었던 세이트 폴 졸업생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표현하면서 해리 포터에 대해서도 유창하게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대학원 수업에서 세인토 폴의 교육과정을 배우고 나서는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아이들에게 큰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우리나라 아이들은 언제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가?'를 토의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교과의 본질' 을 탐구하는 수행평가부터 해보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영어는 어떤 언어인가?', '과학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프로젝트 수업으로 해보는 것이지요.

방식은 다양할 것 같습니다. 수학을 예로 든다면, 수학자나 수학 이론에 관한 흥미 있는 단행본을 읽고 토의한 후 각자 발표하거나 에세이를 쓰는 방법이 먼저 떠오릅니다. 또 학기 초에 '수학이 왜 필요한지, 수학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나에게 수학이란 어떤 의미인지' 등을 먼저 써보게 한 후, 한 학기 수업을 듣고 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적어보는 방법도 제안했습니다. 그동안 배웠던 내용 중에서 자신에게 가치 있었던 배움을 활용해서 '수학'이란 큰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을 말해보는 것이지요. (수학을 못하지만 수학자의 삶을 존중하고 수학의 가치를 느끼게 됐다는 발표를 듣는드면 수학교사로서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사토 마나부 교수님께서 말씀하는 본질적 배움은 문학은 감상과 창작을, 사회나 과학은 탐구와 토의를 기본으로 하는 수업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입니다. 이런 수업은 오히려 학력이 낮은 학생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학교 밖에서 감동적인 문학과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과학자의 치열한 탐구 과정을 접할 수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면, 오히려 교과마다 큰 질문을 먼저 던지는 것이 그들을 배움으로 초대하는 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큰 질문을 머리와 가슴 속에 담고, 교과의 멋과 맛이 제대로 살아 있는 대상을 만나면서 깊이 있게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수업을 상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예술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즐기면서도, 사회구조 전체를 조망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아서 행동할 수 있는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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