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학교>인가 <다시, 강의>인가?
EBS가 신년 대기획으로 내놓은 다큐프라임 10부작 <다시, 학교>를 기다렸습니다. 공교육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EBS'라면 학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가치와 역할에 관해 제대로 발언해 주리라 기대했지요. 그런데 1~3부를 보고 나니 <다시, 학교>가 아니라 <다시, 강의>를 본 느낌입니다. ㅠ.ㅠ 제작진이 의도했다고 믿지 않지만,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치밀하지 못한 활동줌심 수업과 과도한 수행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은 동의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만화 그리기와 색칠 공부로 시간을 허비하고 수준 낮은 게임식 활동으로 경쟁심만 자극하거나, 모둠활동과 상관없는 내용을 지필고사에 출제해서 아이들을 좌절시키는 문제점 등은 이미 교사들이 공유하고 있고 개선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지역과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새롭게 제기된 문제점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옳다고 믿는 교육은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10부작 다큐는 그 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결국 과거의 강의와 문제풀이 수업으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그래서 진정한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의 힘을 빼면서 학교를 더욱 학원처럼 만들자는 말인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정말 독특한 레트로 취향입니다...
활동중심 수업의 수준이 낮고, PPT 발표나 UCC 만들기 같은 수행평가가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풍부한 사례를 중심으로 교사들이 '아이들의 진정한 배움'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하는데, '지식 전달을 위한 강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강의를 못 하는 교사는 없습니다. 단지 강의식 수업의 모형도 여러 가지가 있고, 대상 학년과 학생들의 수준, 수업목표와 성취기준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뿐입니다. '강의를 하지 않아서' 아이들의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 심합니다.
'가르치지 않는 학교'라는 제목이 붙은 1화는 전제부터 잘못되었어요. 우울한 음악을 배경으로 '사교육비 지출 역대 최고, 기초 학력 저하, 교실 내 격차 심각'을 보여주면서 바로 '가르치지 않는 학교'라는 커다란 제목이 나오고, 수행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아이들의 인터뷰와 '고교 수행평가를 축소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 내용이 이어집니다. 악의적인 편집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처음 5분만 봐도 인성교육, 진로 상담, 동아리와 체험활동에서 자유로운 학원 강사들이 강의를 제일 잘 하니, 학부모님들은 학교를 더욱 불신하고 학원에 더 많이 보내야겠다고 결심할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잘못이 교과서의 지식을 그대로 가르치지 않고, 활동중심 수업과 수행평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교사들 때문이라는 결론을 주입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수행평가의 문제점을 과다하게 지적하는 국민청원의 댓글을 대놓고 인용한 저의도 의심스럽습니다. 아이들이 느끼기에 '정말 의미 없는 쓸데없는 수행평가'도 있겠지만, 대입 하나만 바라보고 강의식 수업으로 문제풀이만 하는 교실은 어떤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의미 있는 배움을 줄 수 있나요? 또 '수행평가와 맞바꾼 아이들의 성장은 또 어쩌나요'라는 말도 인용했는데, 그럼 EBS 다큐 프라임팀은 '지필평가를 통한 지식의 성장(?)'만을 바라는 것인지, 대답을 듣고 싶어요. 교사의 말이 조금만 길어져도 고개가 푹푹 떨어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수업 방식을 비교한 실험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있는 듯 문제가 많았어요.
무엇보다 강의형 수업, 교사 개입 활동형 수업, 학생 주도 활동형 수업에 대한 개념과 구체적인 활동 상황과 조건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수업 직후의 기억력 테스트로만 '강의형 수업'의 우수성을 증명(?)하다니요. 그리고 활동형 수업에도 도입 부분에 기본 개념 강의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모둠활동을 관찰하고 어려워하는 모둠은 교사가 개입하거나 다시 핵심개념을 설명합니다. 특히 배움의공동체 수업에서는 강의식보다 활동 수업을 할 때 과제의 수준을 더욱 높여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협력하게 하고, 연결짓기와 되돌리기와 같은 모둠활동 중의 교사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학생 주도 활동 수업을 보여주면서는 모둠활동을 할 때 한가롭게 서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교사의 모습만 부각시켰어요. (제가 그 선생님이라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아요.)
오히려 활동 중심수업, 협력학습은 강의를 15분 이상 듣지 못하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 하는,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질문하지 않는 '저학력 학생이 많은 학교의 수업을 바꾸기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강의식 수업에서 교사에게 일일이 물어보기 힘든 어휘와 개념의 의미, 어려운 풀이과정을 모둠의 친구에게 편하게 물어불 수 있게 배움의 환경을 바꾼 것입니다. 교사 혼자 개념과 원리를 설명하고, '알겠지?'하고 지나가는 수업이 아니고,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모둠활동입니다. 기초를 배우고 나면, 교과서 수준을 뛰어넘는 '점프 과제'를 제시해서 선행학습에 찌든 상위권 아이에게도 배움의 즐거움을 돌려주고 친구들의 배움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고요.
저 역시 혁신학교에 근무하기 전에는 하루 종일 강의식으로 수업하면 목은 좀 아팠지만 학급에 상관없이 거의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하면 되니 수업준비도 별로 필요 없고, 수행평가도 과제형으로 10~20%만 했으니 교무실에서 여유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업 전에 활동지를 만들고, 수업 중에는 모둠활동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활동지를 고치고, 수업 후에는 아이들이 쓴 글을 읽고 평가하는 지금은 두세배 바빠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아이들끼리도 사이 좋게 지내니 비로소 교사로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게 되었지요.
가장 큰 문제는 이번 EBS 다큐 프라임의 1~3부를 보면, '교과 지식, 학습량, 성취도 평가' 같은 정량적인 도구들만 반복되고 '아이들을 민주적인 시민으로 키워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 어떤 역량을 길어줘야 한다'와 같은 교육의 목표와 가치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이번 다큐 프라임의 기획은 시청자들이 상대평가, 입시경쟁, 학벌주의, 승자독식 사회 구조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모둠활동과 수행평가를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는 교사들을 편견을 가지고 보게 만드는 위험이 큽니다.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고치겠습니다. 이미 많은 학교에서 전문적 학습공동체와 수업임상연구를 통해, 또 수업설문지와 학생과의 간담회를 통해 아이들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교사들이 노력하는 과정도 다큐로 만들어달라고 EBS에 요청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