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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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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괴왕 Jul 10. 2019

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거예요

어떤 사람 이야기

오늘 만난 택시 기사님 이야기를 꼭 기억하고 싶어서 노트북을 켰다.


이대 근처에서 신설동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했고 가는 길에도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야 했다. 하.. 그런데 그만.. 투머치토커 기사님을 만나고 만 것이다.


"아유 나는 또 이대로 들어가자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내가 방금 이대에서 왔그덩."

"학생들이 여기 오르는 게 힘드니까는 정문에서 여기가달라 후문에서 여기가달라 이렇게 타요."

"아침에는 고대에서 여학생이 아이스링크를 가달라구 해서 아침부터 거길 왜 가냐 그랬더니 뭐 훈련을 받으러 간대요. 우리 아들도 운동을 했는데..."


그리하여 나는 그의 길고 방대한 가족사를 듣게 되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30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열심히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암에 걸렸다. 모은 돈을 전부 병원비로 써버렸지만 그의 아내는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 살기 싫어 잠시 딸이 사는 호주엘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은 나이 든 사람이 할 것이 없고 인종차별이 심했다. 그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 아들 내외와 손자 두 명과 살고 있다. 첫째 손자는 5학년, 둘째 손자는 2학년.

 아들 내외가 바쁘니까 손자를 직접 데리러 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손자(첫짼지 둘짼지는 가물가물, 아마도 첫째.)가 할아버지 학교에 오지 마세요, 하더란다. 그래서 학교 근처로 가서 가만히 지켜만 봤더니 손주 놈은 한 손에 떡볶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도 무슨 군것질거릴 들고 집으로 향했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를 타고 부모님이 데리러 오고 하느라 못 누리던 걸 한국 와서 해보니 재밌었나 보다. 그래서 '할아버지 이제 오지 마세요' 소릴 했던 모양이다.


 첫째 손자는 별 말썽 없이 컸는데 둘째는 말을 너무 안 들어서 학교로 부모님이 호출당하는 일이 잦았다. 예전이면 선생님이 혼도 내고 매도 들고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 하고, 선생들이 영리하게 부모님을 불러서 말 안 듣는 자식을 가만히 지켜보게 한단다.

 그런데 둘째 손자 요놈이 애교도 많아서 미워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게임 칩(닌텐도 스위치 칩으로 추정된다.)을 사고 싶었는지 할아버지에게 '딜'을 제안했다고 한다. 뽀뽀 한 번에 만원. 할아버지, 그러니까 기사님은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에 호통을 쳤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딜이 어딨냐 이놈아! 천 원이나 될까 몰라. 그래서 거래는 '뽀뽀 한 번에 천 원'으로 성사되었고 지금은 한 만 원어치 정도의 뽀뽀가 남아있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어른보다 좋은 물건을 잘 알아서 손자는 축구화도 좋은 거 사달라 옷도 좋은 거 사달라 뭐 그런 요구를 잘한다고 한다.

 손자의 아버지, 그러니까 기사님의 아들은 운동을 했었다.(사실 고대에서 아이스링크장 가는 손님 이야기 다음에 이 얘기가 나왔다. 원래는 제일 첫 문장에 나왔어야 할 얘기) 훈련도 빡세게 받고 했는데 재능이 없어서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됐다. 대신 다른 집에서 스키장에 놀러갈 때 기사님 아들을 자주 빌려갔다고 한다. 가서 그 집 자식들 스키를 알려주고 아들은 공짜로 놀다 오는 그런 작은 거래다. 기사님도 운동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농구였던가... 훈련도 열심히 받고 선배들 옷도 다 빨고 했는데 경기는 한 번도 못 뛰었다고 한다.  재능이 많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랬겠지.

 아무튼 이야기는 다시 아들로. 아들은 지금 일간지 경영팀에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을 볼까 말까 한단다. 뭐가 그리 바쁜지. 직원들 연봉 협상도 하고 오래 일한 사람 작은 회사 하나 떼주고. 아들은 그런 일을 하느라 바쁘다. 매일 술을 먹어서, 그놈이 오래 살기는 글렀다고 기사님은 말했다. 며느리에게 잡혀 사는 꼴이 보기가 싫다고 한다. 며느리는 유명 포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아들보다 직급이 높다.

 마누라에게 잡혀 사는 또 다른 남자, 기사님의 친구. (사실 친구 이야기도 먼저 나왔지만, 내 기억이 뒤죽박죽이라) 이놈은 자린고비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으면 계산할 때쯤 스윽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이놈도 밉지가 않다. 마누라에게 맨날 잡혀 사는 놈이라서 친구들끼리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마누라에게 일일이 다 일러바친다고 한다. 그래 놓고는 친구들한테 와서 마누라 욕을 한다. 친구들은 딴 사람 만나라 말한다. 그러면 또 그 얘기를 고대~로 마누라한테 가서 이른다고 한다. 그러면 그 마누라가 친구들 있는데 쳐들어와서 소리를 떽떽 지르고 간단다. 그래도 기사님은 친구가 밉지가 않다. 친구는 한 평생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친구)마누라는 한때는 바람도 핀 남자를 꽉 붙잡고, 시장에서 일수를 하면서 번 이자로 가정을 먹여 살렸다. 그래도 잡혀 사는 꼴이 기사님은 보기가 싫다.

 그런데 돈 한 푼도 안 쓰던 친구 놈이 어느 날 고기를 사더란다. 그래서 기사님은 물었다. 야 너 어디서 돈을 꿍쳐놨냐(이거 말고 다른 재밌는 표현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랬더니 친구가 '이것'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택시. 그래서 기사님은 친구를 따라 택시 면허를 따고 주 4일(월화목금) 택시 운전을 한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모두 같이 면허를 따서 같은 회사에 취직했다. 한 시쯤 되면 모여서 같이 밥을 먹는다. 내일은 뭐 먹자 모레는 뭐 먹자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 오후 다섯 시쯤 퇴근을 한다.

 일을 안 할 때는 온 가족이 새벽 일찍 나가 하루 종일 할 게 없었다. 찬밥을 챙겨 먹고 신문을 읽고 해도 할 것이 없다. 기사님은 나보고 젊을 때 많이 놀아보라고 했다. 늙은이들의 취미생활, 그러니까 춤 추거나 고스돕 치거나 하는 것을 배우질 못해서 그런 걸 하러 가도 재미가 없었다. 기사님은 일 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남은 시간에 춤 추거나 고스돕을 치거나 하는 것보다 택시 하는 것을 선택했다. 월 100 쯤 벌면, 늙은이들은 일주일 20이면 차고 넘치게 놀 수 있으니까 아들 내외에게 손 벌리지 않고 거뜬하게 살 수 있다.

 최근엔 오토바이를 사서 주말에 드라이브를 나간다. 며느리에게 잡혀 사는 아들 꼴이 보기가 싫고 집에 있으면 며느리도 편히 쉬지 못하니까 그냥 나와서 오토바이를 탄다. 어디도 가고 어디도 갔다.(둘 다 경기도 지명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들도 꼬셔서 다 같이 오토바이를 탄다. 친구들 집에서는 기사님과 놀지 말라는 안사람들의 잔소리가 한창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젊은 사람들이 '이거 왜 해요'하는 식으로 물어본다. 그럼 기사님은 말한다. 그럼 내가 뭘 하겠어 마누라도 없는데 혼자서.


대화는 대충 여기서 끝났다.


"기사님 이야기 너무 재밌었어요. 고맙습니다."

"예예. 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거예요."



언젠가 내가 글을 수려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오늘의 일을 꼭 짧은 소설로 기록하고 싶다. 정말로 소설 속 한 장면 같았다. 내가 아무 목적 없이 누구 인생 얘기를 듣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얘기가 재밌기까지 했으니까. 이렇게 '마이 라이프' 즐기는 어른을 얼마 만에 봤지. 꼭 오늘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써야지. 이제 잠을 자볼까. 그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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