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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파이더맨은 '토비' 당신뿐이야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을 편애하는 이유

by 파괴왕

만화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ギャグマンガ日和)> 시즌1 9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

참고로 이 요정이 소녀에게 준 마법봉의 이름은 '홍명보'다. 우리가 아는 그 홍명보와 관계는 없다고 한다.


어느 날 수험생 고3 소녀에게 요정이 나타나 '마법소녀'가 되어 세계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소녀는 묻는다.

'마법소녀는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인 거지?'

요정은 시니컬하게 대답한다.

'아니.. 그냥 적당히 나와봤더니 여기던데요.'


나는 이 장면에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이걸 처음 본 건 중학교 3학년 때로, '마법소녀' 같은 걸 꿈꾸기엔 너무 커버린 나이였다.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공부가 아니라 세계를 구원하는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한구석의 작은 로망을 버리지는 못하는 나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장면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운이 좋으면, 비록 '마법소녀'를 하기엔 나이도 꽤 차고 머리도 커버렸지만, 그냥 어쩌다 보니, 우연히, 멍청한 요정 덕에 마법소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내가 <스파이더 맨> 무비 시리즈 중 오직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 맨>를 편애하는 이유다. 아무 조건 없이, 가진 것 없이. 그냥 어쩌다 보니 우연히 영웅이 되어버린 영웅. 영웅이 되고서도 여전히 찌질하고, 여전히 생계를 위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영웅. 이 친근한 모습이 바로 그가 미국인들의 애정을 듬뿍 받을 수 있게 한 비결이다.

스파이더 능력은 배달에 유용하다. 사진은 PS4 게임 <스파이더 맨>의 한 장면.
괜히 짠하게 생긴 스파이더 맨


하지만 다른 시리즈의 스파이더 맨은 어떤가?

우선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 여기서의 피터 파커는 그렇게 '찐따'는 아니다. 과학 천재에 적당히 사회생활도 한다. 무엇보다 피터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피터의 아버지는 스파이더 기술을 연구하던 과학자였고 스파이더 맨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피터가 따랐던 코너스 박사는 사실 아버지의 동료였다. 피터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설화나 신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영웅의 서사다.

눈요깃거리 역할은 충실히 했던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2>
사실 그웬을 생각하면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의 피터 파커에게도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다ㅠㅠ 3편 내놔 소니 것들아!



다음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포문을 연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 맨 홈 커밍>. 여기서는 세계관이 반칙이다.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수 있고 최고 슈트를 마련해줄 수 있는 토니 스타크가 있는 세계라니. 피터 파커가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인싸'라니. 시리즈가 사골처럼 우려먹던 '벤 삼촌' 이야기를 빼 버린 것도 굉장히 아쉬웠다. 앞선 시리즈와는 다른 독보적인 재미를 만들어낸 건 사실이지만.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엄청 유명해져서 멀어진 기분이랄까... 괜한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MCU 최고 인기맨이 나와서 명장면, 명대사 던져주고 가는 건 진짜 반칙이다.

다시 말해 <어메이징>이나 <홈 커밍>은 내게 재미는 줄 수 있을지언정 희망을 주지는 못한다. 평범하고 찐따 같은 나도 로또처럼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나는 박사 아버지를 둔 과학 천재, 세계 최고 무기 개발자이자 부자를 후원자로 둔 과학 천재보다는 피자 배달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찐따'에 가깝다. 그건 내 이웃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나에게 <친절한 이웃>은 '토비' 스파이더맨, 오직 당신뿐이다!




**생각해 보니 셋 다 쩌는 절친이 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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