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내내 사주에 미쳐있던 이야기
2018년 한 해 나는 굉장히 불안했다. 기업이 선호하는 신입사원 연령에서 한 발짝 멀어졌고, 채용 한파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불안할 이유는 많은데 내가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나는 그 확신을 얻기 위해 사주를 보러 다녔다. 내가 다녀본 역술집 후기를 간략하게 써보려고 한다. 상호는 밝히지 않겠다.
1. 건대
난생처음 오프라인에서 처음 사주를 본 날이다. 사주카페였다. 비용은 2만 원이고 음료를 따로 주문해야 했다. 낮에 이곳에 방문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에 바로 예약을 해 찾아갔다. 이 날은 중요한 시험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생년 월일은 물론 이름 한자까지 따져서 사주를 봐주셨다. 설명이 친절하고 구체적이었다. 나쁜 것을 숨기지 않았지만 좋은 말도 아끼지 않았다. 내 새옹지마 인생의 그래프를 물결 모양으로 그려주시며 '좋은 일이 있어도 안심하지 말고 나쁜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말라'던 것이 기억난다. 당연한 말 같지만 당시 내게 절실히 필요했던 조언이었다. 꽤 만족했는데 나중에 보니 낮에 상담한 친구와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2. 왕십리(타로)
애인과 큰 싸움을 하고 화해를 했던 날 찾았던 곳이다. 미래보다는 내 성향이나 진로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았던 곳인데 적성 검사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많아 놀랐다.
3. 회기
학교 커뮤니티에서 추천받아 간 곳이다. 2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상담시간이 한 5분 정도로 매우 짧았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내가 아빠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굉장한 사실이다.
3. 성신여대
인터넷에서 추천을 받았다. 이곳을 추천받았다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은 곳이자, 내가 지금껏 본 집들 중 가장 만족하는 곳이다. 나를 '바다 위에 떠있는 바위섬'에 비유해주셨다. 빛이 들지 않아 나무가 자라기 어렵고... 나무는 '관'을 뜻하고... 올해는 힘들고... 너무 나쁜 말만 했나 싶었던지 열심히 포장을 해주시기도 했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가 더 강하잖아... 그건 오래 산다고... 포장을 할 수록 나는 더 비참해졌지만 이 집 사주를 듣고 나는 좀 단단해졌다. 열심히 살아서 사주대로 살지 않기 위해 말이다.
4. 남포동
남포동에는 역술인의 거리(?)가 있다. 타로를 보기도 하고 사주를 보기도 하고 신점을 보기도 한다는데, 내가 부산에 살 때는 '왕꽃선녀님'이라는 분이 굉장히 유명했다. 내가 상담한 곳은 왕꽃선녀님은 아니고, 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촉이 굉장히 좋다고 소문난 분이 하는 곳이었다. 사실 사주라는 게 같은 생년월일을 가지고 해석을 하는 거라 내용이 비슷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언니는 어떤 역술인보다 빠르게 내 사주를 해석했다. 보통은 한자로 이것저것 쓰고 책을 몇 번 뒤적거리며 해석을 하던데 언니는 내 생년월일을 듣자마자 뭔가를 줄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신기했다. 중간에 타로카드를 몇 번 뒤집으며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보다는 친구들한테서 맞는 내용이 더 많이 나왔다. 언니가 예측해준 것 중에 하나는 틀린 것으로 결론 났다.
5. 영등포
2019년 올해 처음 찾은 사주집. 10년 넘게 손님이 끊이지 않는대서 갔는데 가장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었다. 이유는 별게 아니고 너무 좋은 말만 해줘서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준비를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지만 너무 좋은 이야기만 들으면 지나치게 안심하고 모든 걸 놓게 된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다. 우리가 마지막 상담이었는지 상담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자꾸 나쁜 건 없는지 캐물었는데도 다 좋다고만 말해서 조금 성의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본인만 재밌는 우스갯소리를 자꾸 하기도 했다. 이상한 개그 하시려면 나한테 돈을 주고 하시지... 이 집에선 그냥 3만 원 주고덕담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연초에 좋은 말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여기는 예약을 받지 않고 무작정 가서 기다려야 한다.
6. 기타 사주 어플
점신, 포스텔러, 운수도원. 이 세 가지 어플을 이용한다. 점신은 평범한데 광고가 많아서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다. 포스텔러는 다른 사주집이나 어플이랑 사주 보는 방식이 좀 다르다. 서머타임을 적용해서 '태어난 시'를 보정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결과가 다른 곳과 다를 때가 많다. 정확도가 더 뛰어난지는 모르겠다. 세부 카테고리가 많아서 친구들과 재미 삼아 보기에 좋다. 어플 UI도 아기자기해서 귀엽다. 가장 잘맞다 싶은 어플은 '운수도원'. 다른 곳이랑 다른 기준으로 보는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게 맞는 말이 많다. 대신 페이코 회원이어야 사용 가능하다는 귀찮은 점이 있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 하기 싫을 때 어플을 켜서 식사 메뉴를 정하거나 놀러 갈 곳을 정한다.
내가 다녀온 역술집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내가 본 사주의 기억은 내 불안의 기억이다. 일 년간 약 40만 원 가까운 돈을 사주에 썼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이 안 오는 날이 길어질 때마다 2, 3만 원 씩을 이런 과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불안을 달래는 데 썼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모두 사주에 미쳐있었다. 더러는 직접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우울한 현실에 아주 답이 없는 것은 아닐 거라고 희망을 가지며, 그렇게 내일을 읽어내려고 했다. 모두가 그랬다. 함께 사주에 미쳐있던 친구가 어느 날 기사 하나를 보내왔다.
사주를 보는 젊은 세대가 늘었다고 한다. 종교나 역술의 인기가 많아지는 것이 망국의 징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날마다 실업률이 최고 수치를 기록하고 경제가 위기라는 기사를 본다. 아름다운 결혼과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로망의 시대는 끝났다. 애는 없어도 부양해야 할 어른은 많다. 그런데 돈 벌 구멍은 없다. 비슷비슷한 대졸자가 넘쳐나도 일자리가 나진 않는다. 나를 포함한 '에코 세대'가 버려졌다는 절망적인 분석을 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놓은 적이 없는데, 뭘 포기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세상에 산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사회가 내 삶을 결정짓고 있다. 국운(國運)이 내 운에 자꾸 끼어 든다. 사주집을 찾는 이들은 사실 다 같은 불안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회의 불운이 내게 옮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여전히 나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해가 바뀌었고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으니 불안의 크기는 더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사주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역술인들에게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제가 노력하면 사주를 바꿀 수 있을까요?"
모두들 대답은 같았다.
"결국 사주대로 살게 되어 있어."
내 사주가 기막히게 좋게 나오는 날에도 나는 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힘든데, 나 혼자 부귀영화 누리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그래도.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리면 내가 내 미래를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가만히 앉아 오는 미래를 맞기만 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이 또 어딨을까. 그래서 나는 60 갑자가 정해놓은 운명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건 내 삶 하나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사회가 나를 불안하게 한다면 나와 내 세대는 또 60갑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려 들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은 역술인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해야 한다. 아주 따지듯이 물어야한다. '그렇다'는 확실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말이다.
*사주가 과학적이지 않은 방식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사주는 사이언스다. 사주가 근거하는 주역이나 명리학은 통계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