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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ug 13. 202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럴 필요까진 없지 않느냐는 말이야.


스토리는 제쳐두고, 액션에 모든 것을 걸자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이전에는 영화를 보고 기록을 남기는 게 그저 즐겁게 느껴져서 꾸준히 글을 썼는데, 어느 순간 일처럼 느껴져서 그만두고 말았다. 때문에 한동안 영화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째, 의미 없이 넷플릭스 요금만 내고 있다가 영화관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때 마주친 작품이 바로 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였다. 지난해 크랭크 인 소식을 듣고  이 조합이라면 반드시 찾아봐야겠다 해놓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황정민, 이정재라는 익숙한 라인업에 내심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예고편이나 스틸컷도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 들어갔다. 가볍게 시놉시스만 대충 읽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기분은 '쩐다' 였다. 말 그대로 쩔어도 너무 쩔어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추후에 감독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고 빌게 되는 최초의 영화가 돼버렸다.




황정민, 이정재 ... 이름만으로 영화 전체를 압도해버리는 두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한다. 게다가 암살자라는 타이틀을 단 청부살인업자와 복수를 위해 피를 뿌리고 다니는 인간백정이라는 거친 배역을 소화해내는 추격 액션이라니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벌써 온몸에 전기가 맴돈다. 캐스팅부터 알 수 있듯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치트키'를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추격 액션이라는 강렬한 장르에 가장 어울리면서 익숙한 두 배우를 캐스팅했다. 마치 두 배우가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 <신세계>의 스핀오프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거짓말처럼 영화에 홀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예고편을 봐도 스틸컷을 봐도, 심지어 시놉시스를 봐도 감히 내용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냥 단순한 액션이 영화의 전부는 아닐 수 있는데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치트키'를 아주 잘 활용한 예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캐스팅한 배우의 분위기와 장르의 밸런스만으로 관객의 니즈를 잘 채워주었다. 




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액션하고 연기가 다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스토리는 정말 차마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부실하고 진부하다. 이런저런 인과관계를 섞어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노력은 느껴졌으나 오히려 그것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난잡하게 만드는 꼴이 되었다. 더군다나 개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급작스럽게 전개된다. 스토리 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전체적으로 텅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액션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과정에 있다. 도망가고, 추격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사건들은 관객의 긴장감을 끌어당기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해하지 않도록 스토리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액션 영화의 묘미이다. 그런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일련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감독이 배우 하고 액션에 올인해서 작정하고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108분이라는 긴 시간의 지루함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액션 영화가 가진 액션의 본질을 잘 지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가 허술한 데 비해 액션은 탄탄하다. 둘의 액션의 흐름을 보면 클로즈업과 카메라워킹, 슬로우 모션, 속도감 조절 등 다양한 촬영기법을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기법들이 액션신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연속되는 행동의 순서를 따라감으로써 관객을 장면 안으로 빨려 들게 하고, 배우의 눈빛을 활용해 긴장감의 템포를 조절한다. 화면 구도의 변경으로 스토리를 암시하고, 속도감으로 생동감을 더한다. 정말 액션이 영화의 모든 것을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한 액션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국내 액션 영화 특유의 클리셰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허술한 액션보다 한 장면마다 신경을 쓴 흔적 또한 많이 보였다. 이러한 고강도 액션을 이제 국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더불어, 두 배우의 분위기는 뭐랄까 감히 이랬다 저랬다 하며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특히, 이정재 배우 특유의 톤이 극 분위기 전체를 압도하는데 그리 많은 대사도 아닌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두 배우의 표정을 따라가며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갔는데 이목구비의 큰 변화 없이 영화 극 전개를 전반적으로 끌어나가는 걸 보면 영화 캐릭터 자체에 얼마나 몰입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경이로울 정도였다. 영화를 100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액션에 40, 배우에 55, 스토리에 5를 주고 싶다. 덤으로 박정민 배우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영화를 보기 전에 분명 박정민 배우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화 소개, 예고편, 시놉시스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내심 아쉬웠는데 ... 왜 박정민 배우의 존재가 그렇게 꼭꼭 숨겨져야 했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바로 이전작이 <사냥의 시간>과 <시동> 임을 생각해보면 박정민 배우의 변화력이 새삼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 제목을 보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영화를 모두 보고 돌아 나오면 비로소 영화 제목의 뜻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전반적으로 인남(황정민 분)의 편에 서서 그를 응원하게 되는데 영화 후반부에서는 마냥 그를 응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남은 암살자라는 직업을 택하고 살아왔다. 사람을 죽이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삶 말이다.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인남의 역할도 결국 '악'이다. 인간으로서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살아가는 '악' 말이다. 레이(이정재 분)의 편집증적인 성격이 미쳐 보여 유난히 '악'으로 보였을 진 몰라도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역할 모두 '악'인 셈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는 것은 인남 본인의 삶의 구원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겠다는 인남의 모습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원칙이나 사실에서 벗어나 예외적인 사항과 조건이었던 무언가를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의 삶 같은 것 말이다. 영화 자체가 메시지를 던지려고 하진 않는다. 스토리 없이 액션에 다 때려 박았기 때문에 그냥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제목과 내용의 경계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해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였다.




액션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아쉽게도 오래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짜릿하고 즐거우나 막상 영화관을 벗어나면 내용조차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내용보다 강렬했던 장면의 연속들로 인해 사람들에게 금방 잊히기도 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또한 내용과 액션 두 요소 모두의 밸런스를 잡긴 힘들었으나, 그래도 기존 국내 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액션의 한계를 한 단계 뚫어준 것만큼은 칭찬하고 싶다. 108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손에 땀을 쥐고 볼 수 있었고, 나름 무언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도 볼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추천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할 때 보면 속은 시원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의미를 찾아 해석해가며 감독의 의도를 파악해가는 영화도 재미있긴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극장의자에 앉아 밀려오는 긴장감을 즐기는 그런 재미가 있는 영화였기 덕분에. 오랜만에 편하게 영화 리뷰를 작성하고 싶어졌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사진 출처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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