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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회사들이 공휴일을 잘 지켜주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프로듀서에게 휴일이란 꿈같은 일이다. 유통업자가 정해진 날에 물건을 납품하지 못할 것 같다고 납품기한을 미룰 수 없듯이, 프로듀서도 정해진 기한 안에 영상을 완성해야 한다. 비교적, 이런 기한에서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일할 때에는 협의를 통해 날자를 정한 편이지만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영상을 만드는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일하는 곳은, 365일 24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동물의료센터이다 보니 명분 상 출근을 안 하기가 더 눈치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경기도에 오고 나서야, 24시간 동물병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휴일에도 많은 동물들이 입원하는 걸 보고 '동물들도 사람처럼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 일이구나'를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주말에 쉬기 때문에, 금요일에 보는 입원실의 동물들이 가장 기억에 나는데 가끔 월요일에 돌아오고 헐레벌떡 입원실을 돌아봤을 때, 귀엽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없으면 그날은 왠지 기분이 묘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퇴원을 하는 거겠지만, 마음 한편에 어떻게 됐을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면 왠지 종일 기분이 처지기 때문이다. 일한 지 한 달 정도 되어가는 최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대기실을 보고 있노라면 '저 아이는 또 뭐가 아파서 왔을까' 보다 '저 아이가 나갈 때 어떤 모습일까' 같은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괜히 마음이 씁쓸하다.
동물병원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이들이 사람 같지 않다는 점이다. '당연히 동물이니까 사람 같지 않지'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람 같지 않다는 말만큼 상황을 적절히 표현해주는 말이 없다. 우선, 기본적인 초상권이 보호자에게 있다는 것부터가 난제로 작용한다. 촬영을 진행할 때 당사자에게 협조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동물병원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보호자 심정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상의 90%는 영상 구매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영상에 협조를 구해서 구해오거나, 그마저도 없다면 상황에 맞지 않는 영상을 쓸 수밖에 없다.
둘째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어쩔 때는 차라리 내가 백설공주라도 빙의해서 동물의 언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팔 들어주세요' 나 '가만히 계시면 돼요'라고 요청하면 대부분은 그대로 행동해주는 편이다. 어색하게 연출하거나, 소극적일지언정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크나큰 축복이다. 동물들에게 '팔 들어주세요', '가만히 있어주세요' 해보자. 들어주는 강아지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촬영 시에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동물들과는 대화할 수 없다. 당연한 이 전제가 프로듀서를 괴롭게 한다. 발톱을 깎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수술에 들어갈 때도 그 어떤 부분도 대화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답답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 번만 가만있어주면 좋겠는데, 동물들은 이유 없는 행위에 불만을 표출한다. 아직까지 다쳐본 적은 없지만, 그것도 조만간 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셋째는, 시간이 없다. 촬영 시에 원래 시간이 없지만 여긴 진짜 촬영 가능한 시간이 없다. 나는 원래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사람이다 보니 굉장히 느린 영상을 만들어가던 사람이었다. 진득하게 오래 카메라를 두고 원하는 장면을 길게 찍어내는 프로듀서 말이다. 반복되는 장면을 찾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두거나, 10분짜리 영상을 위해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른 장면들을 곁들이기도 하고 해 가며 영상을 만들었는데 동물들에게는 불가능하다. 빠른 시간 내에 속전속결로 모든 행위를 끝내야 하는 강아지에게 시간의 자비란 없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금세 기분이 상해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게 설령 원장님이 키우시는 강아지라도 말이다. 때문에 동물들이 사람 같지 않다는 점은, 프로듀서에게 가장 힘든 일이다.
그래서 동물병원 프로듀서는 '때'가 굉장히 중요하다. 기분이 좋아졌을 때, 간식을 줄 때, 발톱이 길었을 때, 라인을 놓을 때 ... 사무실에 앉아 조용히 편집을 하는 중에도, 이 '때'는 어김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수시로 병실을 기웃거리고, 선생님들을 보채야 한다. 지금 뭘 하는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는 눈치 보아서는 좋은 컷을 건질 수 없다지만 눈치 보지 않으면 '메마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이 곳에선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은 장면을 건지는 최고의 방법이다.
대형견 입원실에 덩치가 커 보이는 시바견이 한 마리 입원했었다. 입원 때부터 건강은 좋지 않아 보였고, 유리문 앞에는 DNR표시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여러 관이 몸 곳곳에 삽입된 채로, 단타로 울려 퍼지는 신호음만 남긴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꽤 힘든 숨을 쉬고 있다. 사무실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동물들을 보고 할 기회가 없긴 하지만, 회진 시간에 잠깐 눈에 띈 그 아이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촬영도, 일정도 없는 데 한 번씩 나와 기웃거렸다. 한 번은 선생님들이 없는 틈을 타, 한참을 쪼그려서 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타까워서 이 아이가 나아서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니, 대형견 입원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퇴원을 했는지 아니면 가엽게도 무지개다리를 건넜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젯밤까지 거칠게 숨소리만 내뱉던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다.
많은 보호자들이 '우리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아플 때 자기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동물병원에 일하면서 그 말 한마디가 계속 곱씹어진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하고 그냥 마음 한편에 먹먹한 감정을 담아두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
아이들이 아픈 건 보호자들의 탓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봐온 모든 보호자들은 그랬다. 아픈 아이의 검사를 위해 몇 백만 원의 금액을 계산하고, 사람보다 더 비싼 하루 입원비를 하루 간격으로 내고 가는 보호자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아플 때 그때마다 알 수 없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하루아침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그렇게 아프진 않았을까 하는 보호자들을 보면, 그냥 괜찮다고, 당신 탓이 아니니 괜찮다고, 꼭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반려동물은 죽을 때가 되면,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숨을 거둔다는 사례를 많이 본 적 있다. 본능적인 습성 때문에, 자기보다 강한 동물을 피해 숨는다는 이유가 논리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의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미안해 숨으러 간다는 게 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동물들에게는 때가 없다. 수의사나, 테크니션이 아닌 프로듀서로 본 3자의 눈에는 모든 동물들이 그래 보였다. 언제 아플지 알 수 없고, 언제 무지개다리를 건너갈지 나이로 가늠해 예측만 가능할 뿐이다. 동물을 키우지 않기에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언제 올 지 모르는 그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반려동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행복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 원문에 게시되는 글은 모두 의학적 소견이 아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자세한 증상이나 문의는 가까운 동물병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