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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경기도가 하얗게 물들었다. 어제는 새벽 내내 대설이 올 거라는 문자에 후다닥 창문을 열어봤더니, 막상 그리 많이 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눈이 자주 온다. 지방에서만 2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눈이 많이 내리는 광경 자체를 몇 번 본 적 없는데, 경기도의 겨울은 이런 맛이구나 생각했다. 눈이 아주 많이 와서 괜히 들떴다가,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해서 생각보다 애를 먹었다. 그래도, 눈이 온다는 건, '내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라 며칠간은 꽤나 들떠 있었다.
하나, 강설 때문에 4호선이 고장 나서 지각했다. 맹세컨데,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각이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중교통 그것도 지하철이 고장 나서 회사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수도권에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로 눈이 오는 날이면 이십 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눈이 온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직장인들에게 생각보다 즐거운 일은 아니지 싶다. 먼저 취업전선에 나갔던 지인들이 그렇게 말했고, 근무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나에게도 그렇다. 질퍽질퍽한 거리, 추워지는 날씨, 젖은 머리, 많아진 대중교통의 사람들까지... 이전에 신나게 느껴졌던 것들이 방해 요소가 되어버렸다는 게 어찌 보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오는 날이면 병원은 조금 바빠진다. 아이들이 산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느낀 건데 산책을 할 수 없다는 건 꽤 큰 리스크인 것 같다. 입원한 환자들 중 몇몇은 실외 배변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병원 앞에는 조그마한 산책 마당이 있다. 눈이 오면 이 마당은 하얗게 변해버리고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산책을 하기 어렵게 된다. 제설삽과 여러 가지 도구로 눈을 치워내지만, 많이 내리는 날에 아무래도 역부족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가끔은 '지금 밖에 눈 와서 못 나가'만큼은 말로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든, 비든 뭐든 동물들 말 하나쯤 할 수 있다면 많은 반려인들이 고달프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이건 덧붙이는 말인데 눈 오는 날 산책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가 바닥에 뿌려지는 염화칼슘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야 신발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맨발로 염화칼슘을 밟으면 화상, 물집, 습진 등의 위험성이 있다고 한다. 행여나, 눈길에 뿌려진 염화칼슘을 핥아 섭취하기라도 하면 탈수 증상이 일어난다고 하니 신발을 신겨서 외출하거나, 어렵다면 적어도 돌아온 후에 발을 따뜻한 물에 씻어주는 게 좋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안전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수술실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 적이 있다. 행여 있을 오염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장비를 소독하고, 보호구를 갖춘 채 입장했다. 그리 위험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야만 일말의 두려움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여 일말의 감염이라도 일어난다면 나에게는 작은 행동이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오는 고양이들 중 중성화나 호흡곤란 같은 다양한 이유로 수술실에 오는 아이들이 많지만 생각보다 결석(소변이 나올 수 있는 요로나 방광 등에 이물이 생기는 질병)이나 이물 섭취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아이들도 많은 편이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지만, 입사 후에 많은 고양이들의 케이스가 그러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석은 대부분 과도한 식이 섭취 혹은 수분 섭취 부족으로 일어나는 질병인데, 유전적인 것이 이유일 수도 있고 방광 내 세균 감염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균형 잡힌 식단과 수분 섭취만 일정하게 유지되면 해결되기도 하는데 동물들은 사람처럼 '물 많이 마셔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가 없기에 한 번 내원하게 되면 습관처럼 자주 내원하게 되는 것 같다. 이물 섭취로 인한 입원도 마찬가지.
수술실에 들어가면 공간 전체에 전반적으로 냉기가 흐른다. 무균을 유지하기 위해 평균 20~23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하는데 비단 온도의 영향 때문은 아닌 듯하다. 수술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워낙 공포감을 주는 데다가 철제로 된 낯선 장비들이 가득한 공간이 어떻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수술의 당사자가 되었든, 제삼자가 되었든 쌀쌀한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걸 보니 온도 때문은 분명 아닌 것 같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마취가스를 맡는다. 후에, 기력이 빠지면 마취주사를 맡게 된다(대부분의 아이들이 호흡 마취를 하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 주사 마취를 맞기도 한다). 하얀색의 마취제 프로포폴(수면 마취제의 일종)이 혈관을 타고 흐르면 아이들은 혀를 내밀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렇게 아이들이 곤히 잠든 모습에 비해 수술실을 조금 분주해진다. 극소량의 마취라도 혹여나 있을 돌연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추가 투여 없이 수술을 끝마쳐야 하기에 수술의 과정은 생각보다 소란스럽다.
카메라 속에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천천히 담고 있다 보면, 안타깝다가도 가끔은 역하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아무래도, 수술 과정 자체가 워낙 내추럴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부위를 절개해 속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내심 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수술 과정 동안 조용히 시간을 지나간다. 마취 덕분에 고통은 없지만 치료의 순간을 맨몸으로 받아낸다.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뭐랄까 알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생명의 치료를 보고 감탄한다기보다, 그냥 그 과정에 대한 이질감에 더 가까울 것이다. '정말 이렇게 해서 나을 수 있다고?' 같은 생각 말이다. 동시에 그 과정을 견뎌내는 아이들을 보다 보면 왠지 마음이 무겁다. 어쩔 수 없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아이들. 수술을 받지 않으면 고통밖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가끔 신이란 게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감이 들기도 한다.
동물병원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밟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영하로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는 날 길고양이나 길 강아지들을 보는 게 그렇다. 무슨 연유 때문인지, 한겨울에 거리 한복판에서 추위를 버티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는 탄생만으로 누군가의 축복을 받았을 아이 들이었을 텐데... 존재만으로 사랑이었던 아이들이 존재 자체로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길거리 아이들의 삶은 도대체 누가 정해주고, 누가 거두어 가는 걸까.
예전에 와인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가게 앞을 자주 서성이던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제법 경계하며 눈치를 보더니, 몇 주간 준 간식 몇 개에 금방 경계심을 풀고 아예 가게 앞에 눌러앉는 생각보다 넉살이 좋은 아이들이었다. 후에는 아예 그릇 몇 개를 사서 적정량의 사료를 가져다 놓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게 일이 되기도 했었다. 신기하게도 정해진 시간에 스윽 나타났다가, 밥을 먹고 사라지는 꽤나 규칙적인 아이들이었다. 한 번은 가에 안에 밥그릇을 두고 기다렸더니 가게 안까지 들어오기도 하는 꽤나 용감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우리 가게를 드나들기를 몇 달째 되던 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내심 쓸쓸한 마음으로 그릇을 정리했었다.
하루는 오전 오픈을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와서 다급한 목소리를 나를 부르셨다.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다 보니 친절히 설명하려는 때, 고양이 사체 한 마리를 봤다고 혹시 여기서 밥 주는 아이가 아니냐고 나를 재촉했다. 순간 머리가 띵해 다급하게 사체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생각보다 많이 야윈 그러니까 우리가 밥을 주던 고양이보다 훨씬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아이가 죽어있었다. 꽤나 비참한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이는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했는지 머리 쪽이 짓이겨져 있었고, 추운 날씨에 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미 부패가 꽤 진행되어서 여기저기가 썩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이 밀려오면서도,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몰려왔었던 걸로 기억한다.
길고양이들을 옹호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마음에서 오는 기본적인 동정심은 감출 수 없는 편이다. 쓰레기봉투를 찢고, 주차된 차에 상처를 내고, 밤새 소음공해를 펼치는 게 물론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막상 그런 고양이들을 추운 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막상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차오른다. 버려졌든, 자연에서 태어났든 피차 길거리의 삶이 고단한 것만큼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나는 동물운동가 같은 사람은 아니기에 '아껴줍시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픈 게 아니다. 나도 지나치는 길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거나, 그들을 보살필 만한 공간이 있는 위인이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 적어도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구태어 '해코지'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굳이 위해를 가해 그들의 생을 빼앗을 이유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적어도 추위에 떨며 죽어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 원문에 게시되는 글은 모두 의학적 소견이 아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자세한 증상이나 문의는 가까운 동물병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