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나의 영원한 처녀

by 한솔
선정성을 넘어, 문학을 넘어, 영화에서 보여주던 것.

단연 파격적이었다. 신인 배우 김고은이 전라로 나와 베드신을 강행했고 박해일의 노인 분장은 단연 돋보였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이미 논란에 서있었고 '섹슈얼 판타지가 영화로 개봉되냐'라든지 '문학작품일 뿐이다'라든지 갖가지 반응이 난무했다. 내가 처음 접한 건미성년자이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쩌다 도서관에서 <은교>를 이미 소설로 접하게 되고 영화까지 보게 되었었다. 단순한 19금 영화로 치부하기엔 아쉽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남자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성인영화라며 떠들어 대기 일수였지만 영화를 두세 번 보고 나서는 꽤나 애착이 가는 예술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선정적인 몇몇 장면들을 넘어서 영화가 스토리 내내 관통하는 주제와 인물끼리 묘사된 구도와 갈등도 모자람 없다. 결핍이 만들어낸 탐욕적인 사랑 이라던가, 본질을 이해해야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던가 그런 멋진 문장으로는 표현해낼 자신이 없다. 내게는 심오하지만 단순한 영화였다.


영화의 색감 또한 전반적으로 괜찮다. 밝은 장면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 어두운 채색으로 영화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색감을 좋아하는데 이유라 하면 눈에 크게 방해받지도 않고, 색깔이 어두울수록 오래 보기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은교>의 색감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유를 하나 생각하자면 극 중 전개가 대게 불행하게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맹목적으로 향하는 이적요와 순수하지만 외로움에 묻혀 스스로를 잃게 된 한은교, 둘 다 해피엔딩으로 갈 수는 없었다.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리뷰를 쓰기 전에 나는 타인의 리뷰도 몇몇 편 찾아보는 편인데, 모든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각기 시선에 맞게 소재들에 의미를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헤나, 헤나를 하는 동안에 은교가 들고 있는 저 붓이 이적요를 젊음의 시절로 보내주는 도구라니. 영화를 보며 추측일 뿐일 수도 있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저 장면 이후로 이적요의 욕망이 시작되니 단순 추측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 외에도 많은 소재들이 영화에서 일종의 도구로 작용하는데, 하나하나 찾아가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나는 선악이 명확하게 구분 지어지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충 결말이 뻔히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영화들은 그게 너무 명확해서 보기도 전에 흥미가 떨어지곤 한다. 스릴과 긴장감은 있으나 영화 전체를 두고 본다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은교>안에서 자칫 서지우를 악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욕망에 이끌리는 대로 비겁하게 행동해서, 못되게 굴어서 악역이라 삼을 수 없다. 이적요와 한은교처럼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 본연의 추한 모습을 증명하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서지우를 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베드신이 꼭 필요했을까요?'라는 질문을 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감독은 이상 성욕자가 아니다. 연출을 위한 일종의 장면이었을 뿐 성욕을 채우기 위한 장면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느 시점에서는 베드신의 장면이 존재하기에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애초부터 성욕을 위해서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조금 안타깝다. 영화 자체에 집중한다기 보다 그 한 부분만을 떠올린다는 게 어찌 보면 같은 영화를 봤지만 그 사람이 영화 자체를 덜 읽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김고은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여기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순수함을 온통 내비치고 있는 저 표정이 많은 남자들을 홀린 게 아닐까. 이후 김고은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지만 <은교>에서만큼 배역에 잘 어울리는 역할을 보지 뭐 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의 지은탁도 <은교>의 한은교를 따라갈 수는 없다. 극 중 한은교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 표정 뒤로 숨어있는 외로움의 욕망이 사실 나는 안타까웠다. 극 중 한은교의 동정이 시작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자칫 흥미 없을 수도 있었던 이 영화를 두세 번 보게 해준 건 김고은을 향한 팬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 중 하나가 아닐까. 많은 대사와 장면이 있지만 나는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잘 남는다. 극 중 이적요를 맡은 박해일의 톤이 좀 더 중후했다면 완벽했을 텐데 팬심으로서 나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박해일 배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노인 배우가 연기했어도 괜찮았겠지만 젊음의 태가 남아있는 박해일의 모습이 젊음에 대한 갈망을 좀 더 잘 표현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단지 저 대사에서는 좀 더 중후했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영화가 단순히 소녀와 노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좀 오산이다. 영화는 비극이다. 카타르시스라도 있을 줄 알았다면 그렇지도 않다. 영화에서 배울 수 있는 감정을 좀 간추리자면 연민, 동정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감정들을 단순히 슬픔으로 비추기에 이적요와 한은교가 지나치게 비참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든 보지 않았든 극 중 어느 시선에 서서 영화를 볼 것인가, 중요한 질문이 되지 않을까.


원작 소설과는 꽤나 많은 차이가 있다. 서지우의 결말과 구성 자체가 다르다 보니 소설과 영화가 주제를 같이 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점이 이적요에게서 타인으로 옮겨가지 않으니 소설을 본 사람은 영화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미투 운동이 문학계를 뒤집었다. 예술가의 가면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은교>의 원작 소설가 박범신 소설가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꽤나 좋아하는 소설가였다. <은교>뿐만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에세이와 다른 작품도 읽고 감동했었는데 굉장히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하루빨리 이런 일들이 문학계에서 영영 사라지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이제 약간 지루하다. 뻔한 사랑 이야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설레게 할 뿐 진짜 두근거림에 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은교>는 결코 로맨스는 아니다. 설레지도, 두근거리지도 않는다. 어떤 장면에선 충격적이고, 어떤 장면에서는 안타깝고, 어떤 장면에서는 답답하기도 하다. 하나, 파격적인 구성 뒤에 숨어있는 외로움과 슬픔이 멜로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기에 평범하지 않을 때 보기 좋은 로맨스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시시콜콜한 연애담이 지겨워졌을 때 한 번쯤 틀어볼 만한 그런 영화. 색안경 없이 영화 전체를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영화가 가진 본질을 이해하고 영화가 가진 의미 자체를 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