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If i end up alone, I'll be a lobster

by 한솔
독립영화관을 처음 가게 한 호기심 충만했던 영화, 하나 끝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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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영화를 보러 갔다. 날이 밝았고, 처음 가본 극장도 좋았고, 극장에서 마신 맥주도 좋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영화를 봤고 자극적인 장면에선 침을 삼켜내기도 했다. 말과는 다르게 영화는 제법 진지했고 어려웠다. 그냥 보기에는 무겁고 어려웠지만 사실 영화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극장에서 영화와 당신을 번갈아 보느라 내내 바빴던 기억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헤어진 이후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 이 영화 한 편을 꺼내어 다시 봤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새벽 내내 나는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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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소재가 흥미로웠다. 45일 안에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소재만 놓고 보면 로맨스 코미디에 가까워 보이지만 나의 감상평으로 따지자면 전혀 아니었다. 무겁게 느껴지는 장면이 많았고, 그렇다고 극구 무겁지 만은 않은 장면도 많았다. 한마디로 심심한 블랙 코미디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소금 없는 계란을 사이다 하나 없이 퍽퍽하게 삼켜내야 하는 영화 같았다. 어려웠고 왜 저런 행동들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소재 자체는 흥미로웠고 전개도 자연스러웠고 주제도 무겁게 잘 전달되었다. 다만, 내가 영화를 보던 때에는 이해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 보려고 하시는 분들은 멜로 판타지에 블랙 코미디를 적절히 섞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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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당시 나를 동반한다. 누구와 봤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디서 봤는지, 왜 보게 되었는지 모든 것이 중요하다. 그것들은 기억에 남아 영화평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나는 이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런 요소는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할지, 아니면 두 번 다시 틀고 싶지 않게 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게 이 영화는 도박이었다. 하나의 기폭 장치처럼 연관되어 내 머릿속에서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것에 무너질지 버텨낼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섣부르게 영화를 꺼내고 꽤나 심하게 흔들리고 무너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프닝과 결말은 아직까지 기억난다. 결말에서 나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주인공은 도망쳤을까, 남았을까. 나는 도망치고픈 걸까, 남아있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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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즐거운 영화라고 써둔 리뷰를 많이 봤는데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소름 돋는 대사와 장면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영화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게 전개되다 보니 극적인 감정이 더 잘 끌어 올라온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소름 돋은 순간을 꼽자면 '왜 내 눈을 멀게 한 거야,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었잖아'라는 대사도 있고 총으로 아내를 쏘려고 하는 남자의 절박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장면에서는 가끔씩 눈을 찔끔 감고 실눈을 뜨고 온몸의 떨림을 견뎌냈다. 극단적인 장면으로 치솟을 때마다 나는 자칫 나의 두려움을 들킬까 애써 모른 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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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둘이 되었다가 호되게 당하고 혼자가 되고 나서야 사랑에 빠진 남자, 기구한 운명이었다. 어쩐지 주인공이 불쌍해졌다. 그래도 여자와 함께 숨어 함께 춤을 추는 장면, 둘만의 언어를 만들어서 대화하는 장면, 둘이 꼭 붙어서 아무 걱정 없이 풍경을 감상하는 장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로맨틱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걸 망치려고 할 타이밍에는 꼭 버틸 수 없어서 이를 빠득빠득 갈아대기도 했다. 어차피 예정된 상황들이었지만 때론 그걸 견딜 수가 없다. 꼭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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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깨달았다,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대사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도 이 대사가 내내 귀에 맴돌았다. 맞다,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건 힘든 일이지만 본래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다. 다만, 이 말은 사랑에서만 쓰이기보다 현실에 모든 일에 적용된다. 사랑을 하게 될 때에도, 사회를 살아갈 때에도, 성장할 때에도, 사람을 만날 때에도 모든 일들에 적용된다. 그래서일까, 이 대사가 계속 내내 맴돌았던 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몸이 알아가게 되는 것 같은 그런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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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등장하는 호텔 안이라는 배경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짝을 맞춰 살아가야 하고, 공통점을 따지고, 커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서로의 매력이나 마음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고 강요한다. 얼마 전에 '여자 친구 있니?'라는 식의 안부도 굉장히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스냅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연애를 자유가 아닌 마치 당연하게 하고 있어야 한다는 듯이 강요하게 돼버린 것이 안부에서도 드러나게 되었다고, 현대 사회의 사랑이 과연 진정성이 느껴질까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며 조금 과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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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솔직하게 내게는 답답하고 불편했다. 함께 영화를 봤던 사람 때문에 여러 번 들춰보았을 뿐 개인적인 감정은 거의 없다. 블랙코미디는 좋아하지도 않고, 영화 내용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미국식 멜로 판타지는 어렵고, 영화에 관해서도 내게는 가시 같은 느낌이 돋는다. 그래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랑의 중립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서가 아닐까. 중간의 선을 극단적으로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중간이 없는 사랑에서 당신은 억지로라도 순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각오하고 서라도 도망치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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