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我也很喜欢当年喜欢你的我. (나도 널 좋아하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

by 한솔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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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대만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바람에 휩쓸려 몇 편을 봐야겠다 생각하고 처음 보게 된 영화가 바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였다. 제목에서부터 첫사랑 냄새 풀풀 나는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겼고,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았다. 볼 때마다 가슴속에 저릿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들뜨곤 했다. 영화에는 언제나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갈등과 애타게 하는 극의 전개가 있다. 가끔 이런 영화들이 너무 부담스러울 때 부담감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가 그런 류에 속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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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부터 예쁜 여배우 뭣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없었지만, 사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짝사랑을 해보았기에, 제목 자체가 눈에 띄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원제가 무엇인가 찾아보니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 (그 시절, 우리가 쫓아다녔던 소녀)였고, 해외로는 You Are the Apple of My Eye(넌 내 눈 안의 사과야)로 수출되었다. 개인적인 견해로 우리나라로 넘어오며 제목 선정이 잘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원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우리 정서 특유에 잘 맞춰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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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체의 소재는 여자들보다 남자의 가슴에 불 지르기 딱 좋은 첫사랑을 다루고 있다. 배경은 고등학교, 여주인공은 예쁘고, 남주인공은 덜떨어졌다. 짝사랑이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갈등과 오해를 빚어낸다. 뻔하고 진부한 클리셰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진부한 로맨스더라도 표현하는 방식, 상황 설정,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로맨스의 흥행도는 천차만별을 달린다. 이 영화에서는 포인트가 있다. 그런 두근거림을 한 번에 콕 집어내는 포인트. 얼핏 지나치지 않고 볼 때 쉼 없이 미소 짓는 본인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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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중간중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는 B급 코드 여기저기 묻어있는데, 유치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귀엽게 느껴진다. 간혹 몇몇 장면에서는 한국의 2000년대 초반 코미디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이런 모습이 순수했던 시절 자체를 더욱 투박하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아닐까. 정서의 차이가 있기에 공감가지 못하는 장면도 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장면도 몇몇 보이지만 어쩐지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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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모든 부분에서 순박함이 잘 느껴졌다는 것. 현실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단순히 아름답게만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어쩌면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부분이 낭만으로 전개되었던 건 영화가 가진 순수함의 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그 나이 때에서만 할 수 있었던 과도하지 않은 감정들과 소소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관객의 입장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어려워지는 현세대에서 이 영화가 가진 원초적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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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에 대한 이미지.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깔끔하게 묶은 머리, 더운 여름 교실 안으로 비추어오던 햇살, 투박하게 생긴 교복, 장난치던 모습, 두근거려 말도 못 꺼내던 날들, 한국인에게는 <건축학개론>의 수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첫사랑이 떠올랐다거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나 또한 그랬고, 영화를 본 대부분의 지인들이 그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겪어온 삶과 만났던 사람은 다르겠지만 무의식 중에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평균선에 맞춰져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순간이 지나치게 비슷했던 걸까. 아니면 모두 한 사람을 만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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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소년의 사랑이 고마웠고, 소년은 소녀를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서로는 애틋했으며 분명 그 속에 사랑이 있었다. 이 영화가 가진 첫사랑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 시절에 가질 수 있던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했던 고마움의 의미였다. 영화가 가진 의미가 스크린 너머 관객에서 변함없이 잘 전달되는 것, 의미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이 영화가 가진 큰 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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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한국에서 꽤나 반향을 일으켰던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나의 소녀시대>도 재밌게 봤다. 대만영화의 청춘 로맨스의 클리셰는 비슷하게 전개되지만, 한국과는 언뜻 다르다. 색깔이 강렬하진 않지만, 분명히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핫했던 영화 <라라 랜드>를 떠올렸던 사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흐름이나 결말도 비슷하지만 <라라 랜드>가 좀 더 뜨겁고 불타는 사랑에 대한 의미가 컸다. 이처럼 서양의 사랑이 좀 더 뜨겁고 강렬하다면, 동양의 사랑은 소소하고 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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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사실이 안부가 되어 쉬워진 이 시대에서 이 영화가 가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훨씬 더 깊고 오묘하다. 앞서 말했듯 소재와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가지고 있는 순수함의 의미는 생각보다 뼈저리게 중요하다. 사랑하고 이별한다는 게 사람의 삶에서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지금의 당신,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첫사랑처럼 영원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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