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Me too. Now I know how.

by 한솔


색감에서 시작된 영화, 사랑의 의미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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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마다 영화에 대해 좋았던 포인트라는 게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영화가 갈리는 이유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색감이 좋아서, 누군가는 내용이 좋아서, 누군가는 효과가 좋아서 가지각색인 이유를 가지고 영화에 접근한다. 이 영화를 처음 접근할 때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접근했다. 영상미에 욕심을 가진 나는 '색감이 좋아서' 가 그 기준이 되었다. 베이지색처럼 연한색감으로 시작된 영화, 끝을 달릴수록 감정의 색은 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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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 얼핏 상상했을 때 가능성 있는 소재이지만 은연히 거부감이 드는 소재였다. 사람을 만나고, 겪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실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심하게 보여지고, 심지어, '역겹다'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무난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소재였다. 나 또한 비슷한 관념으로 시작된 생각이기에 기대와 걱정에 쌓여 영화를 보게됐다. 이런 소재로 이야기 풀이가 가능한가, 너무 뻔하진 않을까, 그럼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긴 한가 하며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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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본다면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를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적으로 차지해있는 시대, 당신의 손바닥에 잡히는 휴대폰 속에도 인공지능이 존재한다. 섹스마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 현 세대에 비추어 봤을 때, 영화에 나오는 '사만다'만큼 뛰어난 인공지능의 상대가 존재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얼핏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적인 미래가 아닐까. 누구도 외롭지 않으며, 누구도 홀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불편한 기색 없이 감정의 낭비 없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 사랑할 수 있으면 그 누구도 상처받을 일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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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만다'와 마주하게 되지만, 스스로 소프트웨어 '사만다'를 부정한다.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고, 소프트웨어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를 피한다. 전 아내를 잊지 못한 미련에서 떠오르는 마음이었을수도 있고, 인공적인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이었을수도 있다. 이내 곧 타인에게 인정하게 되는 순간, 사랑이라 이야기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가진 한계를 체감한 주인공은 때론 분개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흐름은 단순하지만, 주인공의 내면에서 나오는 상실감과 감정들은 무엇보다 복잡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후반부 주인공과 아내의 만남에서 둘의 대화는 영화 속 인물과 더불어 관객들까지 감정의 끝으로 치닫게 만든다. 영화가 소위 말하는 '랜선연애'의 소재처럼 마냥 가볍게 보였다면 생각보다 더 깊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내에서 던지는 철학적 질문과 사랑의 의문들은 마냥 영화를 쉽게 생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을 만나서 직접 감정을 교류하고 몸을 맞대고 살결을 부벼야만 결국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건가. 아니면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어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이런 논제는 일상에서 가볍게, 학문적으로 무겁게 대두되어 왔었다. 영화에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이 갈등에 대해서 보여준다. 주인공과 이혼한 아내의 대화에서, 주인공과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주인공과 인공지능 '사만다' 사이에서. 영화에서 이질감 없게 꾸준히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영화 내에서 수많은 사랑의 형태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부정으로 '사만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혐오하며, 누군가는 '긍정'으로 주인공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해'의 과정 속에서 주인공과 비슷한 사랑을 띄는 인물도 보인다. 이것들이 한데 어울려져 관객에게는 더욱 깊은 공감대와 세계관을 형성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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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이혼 과정에서 겪는 말다툼에서 언뜻언뜻 오프닝 부분이 떠올랐다.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와 적당히 로맨틱한 대사.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극도록 대조되는 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영화에서 추억의 매개체는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이 된다. 주인공에게는 행복했던 때를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던 셈이다. 이처럼 영화 오프닝을 비롯하여 영화 전체적으로 위와 비슷한 장면이 돋보인다. 회상의 도구이지만 때론 장면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유달리 배경이 넓거나, 인물의 표정 클로즈업이 길거나, 특정 장면에선 전개 속도가 낮아지거나, 포커싱을 자유자재로 다루거나, 이어갈 수 있는 장면에 교차적으로 편집한다거나 이런것들에 초점을 두고 보았다. 감독의 마음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런 구도의 연출과 장면의 연속적인 편집방식이 영화를 더욱 '감성적이게' 끌어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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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속에서도 더 디테일한 영역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던진다. 마치 '나는 이랬어, 너는 어땠는데?' 라고 쉬이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든 부분이 많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랑을 대체하는 소프트웨어 '사만다',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편지를 써줄 수 있는 인간의 자리는 주인공의 것이라는 설정 속에서만 해도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도 각 모습으로 그 양상을 보여줬듯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가 갈릴 것 같다. 만약,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연인과 함께 누워 영화를 보고 이런 저런 얘기로 밤새 내내 떠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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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감정의 기폭점으로 전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주인공이 나온다. 조용한 음악과 곁들어 들으며 울었던 장면으로 기억한다. 몇 번이나 되뇌어 읽었지만 주인공만큼이나 잘 설명할 겨를이 없을 것 같아. 편지의 전문을 옮긴다. / ' Dear Catherine, I’ve been sitting here thinking about all the things I wanted to apologize to you for. All the pain we caused each other. Everything I put on you. Everything I needed you to be or needed you to say. I’m sorry for that. I’ll always love you ‘cause we grew up together and you helped make me who I am. I just wanted you to know there will be a piece of you in me always, and I’m grateful for that. Whatever someone you become, and wherever you are in the world, I’m sending you love. You’re my friend to the end. Love, Theo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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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중 큰 재미 중 하나는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목격과 환상의 실감이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 세계에 대한 표현은 무궁무진하지만 막상 현실감 넘치게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 <HER>의 배경은 미래지만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다. 유별나게 기술이 발전되보이지는 않는 이토록 이질감 없는 미래라면 퍽 괜찮을 것 같다 생각했다. 영화 중반부 중요한 장면에서 이따금씩 풍경의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가장 큰 OST의 제목이 'Song on the beach'인 점만 보았을 때도 영화의 배경이 가진 장면의 힘은 강하다. 86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제71회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수상, 그 외에도 여러 세계 영화제를 휩쓸며 극찬 세례를 받은 작품인 만큼 영화 소재와 각본 자체도 좋았지만 좋았지만 외적인 부분도 담백하고 깔끔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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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영화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던져주는 철학적 질문에 마땅히 대답하고 싶지 않고 그냥 영화 그대로를 보기엔 조금 복잡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관계에 대해서 지나치게 골머리를 앓는 주인공이 이해가지 않을수도 있다. 2시간의 러닝타임 간 자극적인 느낌없는 잔잔한 영화가 싫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하나, 나는 영화를 단순 오락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는 만큼 영화에 대한 의미 자체에도 집중하는 편이다. 관객마다 해석의 논점이 다르고, 영화를 보는 평이 다른 것 처럼 내게 이 영화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의미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기에 스토리 외적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잡아놓은 탄탄한 흐름은 그 자체로도 몰입력의 힘을 잘 활용했다고 느껴지며, 연기/연출/디자인/각본/음악 모든 것이 영화 안에서 잘 녹아들었기에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인간상의 소외와 상실 그 자체를 그렸기에 슬픈 영화라는 평도 많았지만, 사랑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 해보고 싶다면 오늘 밤 <HER> 한 편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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