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의 조명이 왜 흑백이었나
윤동주,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시인이었다. 윤동주의 삶은 이전부터 좋아했었다. 글을 쓰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우연이 재출간된 그의 시집을 닳도록 원문으로 읽었다. 그의 이름이 어딘가에 나올 때면 알게 모를 자부심이 들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밤을 새울 수 있을 만큼 그를 좋아했고 사랑했다. 영화가 나온 지 4년이 넘은 지금, 현세대에 그의 삶이 유난히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비참한 20대가 현세대의 20대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흑백으로 처리된 그의 삶은 정말 흑백이었나.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동주의 삶'이다. 동주의 삶이라 하면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인 만큼 '일본이 반성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감독의 의도가 돋보이지만,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을 가지고 영화를 보라는 뜻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펜으로, 총으로 버텨낸 윤동주와 송몽규의 모습을 흑백으로 깊게 그려냈다. 내가 보고 싶었던 동주라는 20대 청년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영화에서 돋보였던 포인트는 윤동주의 '시'가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일생 자체가 역사로 남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감독은 윤동주의 시대와, 삶에도 포커스를 맞추고 불편하지 않게, 따듯하게. 영화를 만들어냈다. 물론, 예정된 그의 비극적 삶은 관객들의 마음에 큰 짐을 두겠지만 일생과 영화 자체로는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지 않을까 느끼게 할 만큼 몰입도가 뛰어났다. 그렇기에 먹먹한 감정이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정말 그가 어딘가에 남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송몽규에게도 서사의 초점이 윤동주만큼이나 맞춰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늘 배우보다 눈이 갔던 건 송몽규 역할을 맡은 박정민 배우의 모습이었다. 실제 역사 속에서 송몽규는 동주의 우정의 라이벌이자 사상가였다. 문예지를 만들고, 사상을 공부하고, 전파하고 … 그런 송몽규를 보며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청년으로써 느꼈어야 할 무력감과 열패감을 영화 안에서 잘 표현해냈다고 보인다. 감독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한 사람으로 보길 바랬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많이 닮아있고 함께 붙어있다. 윤동주의 삶은 시와 함께 세상에 재조명되었지만 송몽규의 삶은 미처 알려지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 총을 들었음에도, 아름다운 청년의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못했다는 건 아쉬움 그 자체론 설명이 부족하다. 그러니, 송몽규의 이야기를 조명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돋보였고 영화 안에서 각인시키려고 했던 감독의 연출력이 딱 들어맞은 셈이다. 감독의 연출력이 노련하고, 의도가 아름다웠다 해도 영화로서의 가치는 배우가 좌지우지할 정도로 배우의 입지는 크다. 그런 의미에서 강하늘 배우와 박정민 배우가 보여준 연기력은 둘의 삶 그 자체였다.
고증에 충실한 영화이지만 순박한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별 헤는 밤'을 가벼운 로맨스로 풀어냈을 때, 감독의 고찰이 느껴졌다. 주인공은 20대 청년 윤동주이다. 그는 준수한 외모에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 요즘 말로 '썸' 한 번 타보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밤을 걷는 길에 장면이 퍽 괜찮게 느껴졌다. 어둡고 비참한 일생에서 그의 따듯한 삶을 비추는 조명 같은 미장센이 그의 순박한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연출력의 아름다움. 영상미를 강조하려 하진 않았지만, 영상미가 짙게 잘 보이는 영화였다. 인물 간의 배치도만 봐도 감독이 어떤 역할을 부여하려 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생각의 피로감을 덜고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하고픈 얘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려 하는 것. 영화 <동주>의 영화로서의 가치가 주는 편안함도 여기에 있다. 영화적 기법에 맞게, 흐름에 맞게 적절하게 배치된 시와 내레이션까지. 미장센을 위해 노력한 감독의 흔적들이 영화 곳곳에 돋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흑백 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모습을 최대한 담백하고 정중하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고, 스물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었다' 흑백 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모습을 최대한 담백하고 정중하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고, 스물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었다'라는 이유로 흑백 영화를 선택했다.
독립을 주제로 한 활극과 복수극은 너무 진부하다. 물론 역사라는 소중한 기점을 두고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아도 액션과 굳어진 클리셰로 버무려진 영화들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는 참 좋은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고, 진정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했으며, 관객 스스로가 동주의 삶에 투영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으로 스크린 안에 잘 담아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기보다, 어떤 인물에 관한 심리와 심정을 주변 인물의 깊은 관계로 배치하여 딮하게 끌어내고, 동주 개인의 삶이었던 글과 시의 생을 이야기로 적절하게 풀어냈으며 … 무엇보다 영화가 '흑백'이라는 점에서 그저 좋았다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