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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31. 2018

"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

오늘 새벽을 떠나보내며,

영롱하고 찬란하게


사람들이 제각기 바쁜 걸음으로 삶을 재촉하고 있었다. 인파에 끼여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발걸음을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밤늦은 기차에 몸을 싣고 밤을 달렸다.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의미 없는 역 몇 개를 순식간에 지나쳤다. 창문으로 본 풍경은 조용했으며 지루했다.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몇 번 네 생각을 했다. 역에 도착하고 한참을 걸어 너를 만났다. 너는 늘 익숙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표정 하나에 내 하루를 온전히 씻어냈다. 너의 손을 잡았다. 따듯했고 내 눈 한 움큼에 네가 있었다.


너는 내게 온전한 하루이며,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가, 존재 하의 이유가 된다. 네 손을 잡고 있노라면 나는 그런 생각에 빠져 네가 옆에 있는데도 너를 떠올리기 바쁘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탓에 네가 말을 걸 때에는 너에게 온통 집중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부끄러워 코끝까지 붉어지고 만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네 앞에서 부끄러우며 여전히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곤 한다. 네 앞에서 홍옥처럼 붉어지는 나는 언제쯤 태연해질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어디가 좋냐고, 왜 좋아하냐고 응당 묻곤 한다. 네가 아니라 내가. 증명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숨길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네가 모든 것이라고 얼버무리거나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질문에 대답한 네가 지금 쉬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 행복에 응당하다 생각하는 나를 보며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질문에 나는 철없이 굴고 싶어 지곤 한다.


너의 휘어지는 눈가 안에 내가 있는 것, 반달 같은 웃음 속에 내가 온통 담겨 있는 것, 손을 잡을 때에 알맞게 쥐어지는 손깍지, 너의 짧은 머리를 넘길 때에 손 끝에 느껴지는 감촉, 장난칠 때에 토라진 너의 목소리와 표정, 가만히 누워 밝아오는 아침 옆에 있는 너, 때론 뻔뻔하게 굴고, 때론 숨기지 못해 모두 티가 나는 우리, 지나치게 사랑하다가도 간혹 애틋해지는 우리. 나는 이런 것들이 좋다. 미치도록 좋다.


야경이 예쁜 곳, 세상 모든 게 잠든 자정 너머에서 나는 천연덕스러운 너의 품에 파고들어 한참을 울었다. 왜 울었는지 이유조차 찾을 수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울음 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그저 나를 몇 번 다독였을 뿐인데 나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아직도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그날 밤, 네 목소리가 유난히 따듯했고 네 말들은 침묵의 순간보다 더 적막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그 악센트에 휘어져 눈가를 찌푸렸고 감정이 일었다. 너와 내가 소란스러운 밤을 보낸 뒤 모든 것이 적막하게 멈춰버린 순간. 내가 너의 영원함이 되기를 소망했다. 또한 네가 나의 찬란함이 되기를 빌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 창밖에서 네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 네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왔고 다른 곳을 보자니 한동안 보지 못할 네가 아른거려 코끝이 시큰해졌다. 나는 자꾸 네 얼굴에 대고 무어라 소리치고 싶었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미어오는데도 나는 그저 소리 없이 울음을 참았다. 이내 네 뒷모습과도 멀어지는 순간에 이유 없이 한참 동안이나 울었다. 나는 숨죽인 채로 한참을 울었다. 이런 것들도 사랑이라고 부르는 걸까. 반갑지 않지만. 나는 수없이 반복하여 더 많이 울 것 만 같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 사이사이마다 온통 너를 심어놓았다. 돌아가는 길에 네가 없어도 외롭지 않을 것만 같지만 너는 군데군데 네 멋대로 피어서는 몇 걸음 채 떼기도 전에 너는 나를 뼛속까지 보고 싶게 만든다. 그때마다 너는 태연하게 잠을 자거나 반쯤 졸린 목소리로 나를 반기곤 한다. 나는 너의 단잠을 깨워 미안하지만 그 목소리에 달라붙어 한참을 실실 댄다. 너와 나의 하루가 다름에 원망스럽지만 그럴수록 나는 네가 그리워진다. 잠에서 깨면 부디 예쁜 말들로 내 하루를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네가 자는 동안 내가 온통 네 생각으로 예쁜 하루를 채웠듯이.


나는 늘 두렵고 불안한 사람이기에, 더 이상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 해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유들 속에 숨어있는 '그냥'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널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전만큼이나 차가운 곳에서 준비 없는 이별을 맞이하더라도 이전처럼 미어지게 아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가끔은 네가 쉽사리 가버리지 않았으면 하고 배 아픈 욕심을 부린다.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을 당신, 부디 내 곁에서 떠나지만 말았으면 하고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나에게 존재하는 날. 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때문에 순간의 영원을 기약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진심을 담아 나는 모든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때론 서로가 바빠 미처 말하지 못하더라도 가슴 깊숙이 담아두었다가 때가 되면 풀어내어 서로에게 감동이기를, 시간이 되지 않아 우리가 어긋나더라도 서로의 마음속에 서로가 존재하기에 마음만큼은 잃지 않기를, 표현하는 게 부끄러워 소스라치게 온몸을 떨다가도 이내 태연하게 낭만이 되어주기를, 오늘 새벽이 떠난 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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