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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un 10. 2018

" 참, 못났다 "

이따금씩 찾아오는 우울한 기록.

이따금씩 찾아오는 우울한 기록.


나는 왜 이렇게 못난 걸까.


본심을 드러낸다는 건 어렵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그냥 입 밖으로 뱉으면 그만인 것을, 말할 용기조차 없으면서 가슴속에 품어놓고 티라는 티는 왜 다 내고 마는지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유치한 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나를 이해해주겠다는 듯이 손을 건네는 사람들이 미워 나는 되려 못된 생각들로 덮어버리고 만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손가락질하는 모습들과 수군거리는 소리들. 자기방어처럼 나는 나를 못난 사람으로 치부하고 만다. 이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탈출구일 뿐이다.


사람에게 여전히 관대하고 쉬운 내가 싫어서 몇 날 며칠을 스스로 혐오했다. 티 나지 않을 만큼이나 지독한 혐오감 때문에 고전했다. 이 지독한 악전고투를 이어가기 싫었건만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멍든 내가 붙잡을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상처 많은 이 세상에서 더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나는 지금이 너무 벅찰 뿐이다.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그 한마디가 무서워 나는 다시 이 악순환을 이어간다. 언제 끊어지질도 모를 썩은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나조차도 확신이 없는 몸놀림으로 온몸을 비틀어댄다. 


나는 너에게도 괜찮다고 말할 만큼 멍청한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멀쩡한 사람인 척하려 드는 멍청한 사람이다. 네가 생각해주는 만큼만 내가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완벽하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어도 되니까 다른 사람이 생각해주는 만큼만이라도 기대에 부흥하고 싶다.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늘 부담스럽고 시선이 두렵다. 행복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시작되는 게 이것 때문일까.


요 근래에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아니, 행복 자체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했다.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놓치고 싶지 않을 때에는 행복에 집착하게 되는 게 두려워져서 언저리에서 늘 멈추기도 했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면서 늘 불안함과 공존했던 걸 보면 아마 진짜 행복은 아닐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분에 취해있는 게 나한테는 휴식 같은 개념이었다. " 행복에 집착하고 싶진 않지만, 그냥 행복하고 싶다. " 말처럼 나는 지금 진짜 행복에 메말라 있을지도.


나는 내가 싫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상황도 싫고, 이런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도 싫고, 이런 상황 속에서 허우적대는 내 기분도 싫고, 온몸을 휘어 감는 불쾌한 기운이 싫고, 쭉 빠진 기운 탓에 자꾸 쳐지게 되는 모습이 싫고, 그런 나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싫고,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나도 싫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싫다. 나는 내가 싫다.


요 근래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자꾸 무너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떡하지.


이놈의 우울증이 나를 또 집어삼킨다. 거대한 장벽 하나가 통째로 나를 향해 넘어지는 기분이다. 땅속부터 붙잡혀버린 발을 기어이 떼어 뛰어보지만 걸음 하나하나가 너무 벅차다. 어느 순간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나는 몸을 맡겨버린다. 그리고 다시 이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놈의 우울증을 평생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마다 상대방을 성가시게 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했으니까. 알고 있음에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도 내가 싫다.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어긋나는 걸 보고 있으니 속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나면 좀 뜨거워지겠지 했더니, 되려 뿌리부터 식어버리기 시작한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뭐가 즐거웠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현실이라, 내가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있는 것조차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뭔가 믿을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나를 기만하고 안도한다. '나는 왜 이럴까' 끔찍한 자괴감에 빠져서 감정적으로 나를 자해하는 일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타인처럼 살고 싶었다. 평범한 삶에서 더욱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남들처럼'의 단어가 싶었다. '잘하고 있어', '경험이지'라는 말 따위도 필요 없으니 나는 지독하리만큼 평범하고 싶었다. 떠나온 지 시간이 꽤 되었을 때 내가 돌아갈 곳이 없었고, 내가 어리석었음을 판단하기까지는 과정이 조금 필요했을 뿐인데 나는 너무 먼 길을 택한 게 아닐까. 이제 부럽다는 생각이 끝나고, 나 스스로가 애처롭다.


악몽을 여러 번 꿨다. 꿈에서 나는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했다. 현실만큼이나 생생한 기억에 온 몸의 힘을 잃고 자꾸 무너졌던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악몽을 꾸는 것 치고는 꽤나 늦게까지 잠들어있곤 했다. 오후가 돼서야 찝찝한 기분으로 일어나고 침대에서 한동안 내려오질 못한다. 바닥으로 닿는 발걸음이 나를 지옥까지 집어삼킬 것 같아서 침대에서 한참 동안 버티곤 한다. 잠자는 것 까지 방해받기 시작했다면 도대체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걸까. 


여기저기를 많이 다쳤다. 손도 베이고, 감기에 걸렸고, 설상가상 사랑니까지 뽑아야 했다. 아프고 난 뒤 무기력감에 정복당해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었다. 비를 싫어하다 보니 저절로 약해졌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빠른 시일 내로 병원을 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쩌면 너무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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