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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ul 10. 2018

" 여느 때보다, 날이 좋았다. "

7월의 어느 멋진 날.

좋아서, 좋았다.


너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몇 번 훌쩍거리며 몇 번이나 뒤돌아섰다. 딴에, 기차를 놓쳤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집에 돌아와 우리의 날을 떠올렸다. 몇 시간 채 지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나는 몇 겹의 시간이라도 이어 붙인 것 마냥 삶 속에 너를 깊이 새겨 넣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우리 사진을 몇 번이나 뒤적거렸다. 눈을 감고 조용히 흔적을 밟았다. 사춘기 소녀처럼 배시시 헛웃음을 치다가, 볼이 붉어져 몇 번이나 숨을 내쉬었다. 너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깊게 빠져들어, 헤어나갈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너를 보러 가는 길이 설레어, 나는 발길을 띄웠다. 멀리 네 모습을 보니 속도 없이 좋았다. 첫마디를 어떻게 떼야할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안아줘야 할까, 말했던 것처럼 뻔뻔하게 굴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네 얼굴이 이만큼이나 가까이 붙었다. 나는 숨을 멈추어 너의 손을 잡았고, 네 앞에서 애타게 너를 찾았다. 태연하게 말하는 나의 목소리 속에 수많은 떨림이 있었다. 나는 날씨 탓을 대며 자꾸만 너를 가지려 들었다. 너는 환한 미소로 답했고, 하루를 온전히 함께했다.


네가 내 얼굴을 또렷이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 눈동자가 소란스러워 몇 번이나 네게 이유를 물었다. 대답해주지 않는 너의 표정 앞에 나는 쉼 없이 웃었고, 이윽고 너는 내게 담아놓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네 입술에서 떨어질 때, 나는 너를 온전히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투박하게 탐을 부렸다. 너를 보면 볼수록 자꾸 탐이 나서, 나는 과감하게 미래를 꿈꿨다. 그런 나를 붙잡아 놓지 말았으면, 너는 그렇게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을 눈치챈 네가 아이처럼 내 손을 이끌고 온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나는 부끄럼도 없이 오직 네게 집중하여 낭만을 만끽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네가 옆에 있었기에, 나는 이 도시에서 홀로 특별했다. 너는 명랑한 몸짓으로 내게 달려오고, 나는 그런 너를 붙잡고서 한참 동안이나 몸짓 없는 춤을 췄다. 하루 동안 나는 너를 닮아갔다. 쉬이 뻔뻔해지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너의 말투를 닮아가기도 한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온몸으로 순간을 만끽한다. 순간이 모두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날은 온종일 눈부셨다.


이따금씩 너는 배롱나무처럼 까르르 웃어댔다. 표정 모두를 찌푸린 채, 온몸을 다해 나를 향해 해맑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 하나가 나의 우주를 헤집어 놓는다. 아무것도 아니었을 네 웃음 한 번이 내게 온 세상의 욕심을 부리게 한다. 나는 그 마음을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가만히 접어둔다. 너는 자꾸만 얼굴을 비비며 욕심 하나르 기어이 꺼내게 만들고, 나는 영원의 욕심으로 수없는 마음을 포개었다. 너는 자꾸만 나를 향해 웃었고, 나는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욕심을 부린다. 행여, 쉬이 지나갈 시간이라도 나는 마음만이라도 붙잡아 나의 우주 한 복판에 전시해두고 싶다. 이게 네게 바랄 수 있는 마지막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멀었다. 걸음에 속력을 낮추어보아도 너의 집은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심장은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네 입술이 맞닿는 순간에 요란하게 요동치다가도, 한 걸음이 떨어질 때마다 땅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네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밤의 핑계를 대어도, 어떤 변명을 내어놓아도 나는 내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사랑하는 날 속에서의 헤어짐은 멀고 아프다만, 너와의 날은 더욱 지나치게 나를 그립게 만들었다. 너는 그런 내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가만히 앉아 손을 잡고, 이따금씩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나의 슬퍼지는 두 눈 뒤로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 흘렀다. 너를 옆에 두고도 너를 떠올렸다면 과언일까.


너를 뒤로 하고 내 손에서 내내 네 향기가 맴돌았다. 나는 그 향을 따라 몇 번을 킁킁거리다 홀로 실실 웃었다. 향에서 시작되어 생각으로 번지는 너는 내 일상 하나하나를 온통 잠식해간다. 지하철 역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퇴근길에서도 나는 이따금씩 픽 웃어버리곤 한다. 웃음에서 시작된 너의 잔재는, 그리움으로 번진다. 빛바랜 삶에서도 너는 팔레트가 되어 온 세상을 너로 물들여버리고 만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애타게 너를 떠올리다 너를 그리곤 한다. 어느새 내가 너가 되버린 이 순간을 나는 겸허히 순응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네 자랑을 뱉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해보지도 못한 짓을 하는 내가 낯설기 그지없다. 그래, 너는 나를 바꾸고 있다. 아니, 나의 생 전체를 휘저어놓고 뒤집고 무너뜨리고 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을 네 손에서 피어내 너와 나의 시간으로 온통 뒤바꿔가고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처럼, 너는 모든 것들을 사랑스럽게 하는 힘을 가졌다. 단순히 네가 존재할 뿐인데, 그 존재함으로도 나를 감히 행복하게 하며, 감히 이 모든것에 공존하고 싶게한다. 네가 내게 낭만이고, 나의 자랑이자 내가 너의 자랑이고, 너의 낭만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을 가로질러 너에게 간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생의 너를 껴안고 가만히 네 숨결을 느낀다. 조용히 머금은 너의 숨이 내게 뱉어질 때, 물결처럼 퍼지는 너의 향이 좋다. 네 조그마한 입술이 옴짝달싹 하며 너만이 내는 목소리로 나의 귓가 언저리를 간지럽힐 때,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 온통 너로 가득 채우곤 한다. 어쩌면 너무 얕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모두 네게 전하고 싶다. 마음 언저리 구석까지,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온통 네게 향했으면 한다. 나의 방향이 온통 너를 향해 있는 탓에 쉬이 나를 잃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지독한 불안감이 좋다. 벗어나고 싶지 않다. 설령, 지나치게 아프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죽을 만큼 껴안고 말겠다. 그러니, 너는 그대로 있어주어, 부디 예쁘게만 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날은 유난히 좋았다. 해가 잘 떠있었고, 바람은 쉬이 불고 있었다. 걱정이 없었고, 나의 앞에는 오직 너만이 존재했다. 생은 밝았고, 밤은 깊었다. 여느 때보다, 날이 좋았다. 너는 잠이 들었을 지금 시간에, 나는 감히 이 행복에 몸을 뉘었다. 그 날의 행복 속에, 다시 한번 포근히 온 생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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