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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Feb 09. 2019

" 간혹 "

네가 떠오름은.

때론 머릿속 가득히 메워지는 너를 모아 써내는.


내가 간혹 너를 그리워 함은, 다만 변하지 않는 이유들 때문이다.


내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일 때 네가 더욱 유난이다. 꿈에서 깰 때마다 괴로웠다. 깊게 잠들어있는 나를 불현듯 스쳐서는 네가 보채듯 몇 번이나 괴롭혔다. 그 깊은 잠에서 깨 한참을 허우적대면 너는 존재하지도 않은 채로 나의 시간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그런 날에는 꼭 예정되었다는 듯이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게 엉망으로 돌아가곤 했다. 지난밤에도 그랬다. 새벽에 깨어 찬찬히 네 얼굴을 몇 번 되짚었다. 이제는 어찌할 수도 없는 너를 몇 번이나 떠올리고, 좌절하고, 슬퍼했다. 창 밖 흩날리는 눈발을 한참 보았다. 겨울밤에 네가 나를 이토록 흔들고 떨리게 했다. '내일 아침엔' 이란 문단으로 많은 문장을 지었지만 뭣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되감아 읽었던 너의 말이 한 줌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만났던 날들이 그리 끝나버렸듯, 우리 소소한 생의 부분도 쉬이 작별하고 말았다. 이별은 계절을 지나 이젠 네가 떠오를 것들조차 없을 텐데 왜 나는 꾸준히 네 세상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걸까. 지긋지긋한 네게서 벗어나고 싶다 안달 내다가도, 나는 그리움에 잠겨 무수히 너를 건져낸다.


이 쓸쓸한 추위 속에서 내가 너를 갈증 하는 것이 살을 에는 추위가 너를 불러일으키는 탓인지, 그리움에 수반된 감정의 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추운 겨울 속에서 너를 떠올렸음은, 네 따듯한 말 몇 마디가 그리웠을 뿐이었다. 우리의 계절은 뜨거운 여름밤,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고 서툴게 말하던 너와 내가 그 무렵의 더위를 이길 수 없었나 보다. 불타는 여름밤에 휩싸여 애태운 가을을 지나 어느덧 냉기로 가득한 겨울에 빠져있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내가 충분히 괜찮지 않았냐고, 내가 뜨겁지 않았냐고,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우리가 너무 서둘렀던 게 아닐까 하고 태연하게 말해보고 싶었다.


나의 바램이 되려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동안에 전부가 아니더라도, 이후에 내가 너의 일부가 되기를 바랬다. 애석하게도 나의 불행으로 인해 시작도 전에 겁을 먹고선 그 지독한 끝을 향해서 무던하게도 몸을 내던졌었다. 지금의 나의 바램은 무엇일까, 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미련에서 탈피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무던한 기다림을 매듭짓는 것일까.


진심은 위태롭다. 행복하기를 지나치게 열망하면 불안이 된다. 불안감은 빠른 속도로 삶을 삼켜버린다. 그때에도 여전히 불안함 속에서 행복을 열망했었다. 이 불행할 삶 속에서 네가 한 줄기 구원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곧 추락할 것처럼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나는 믿었었다. 떨리는 손을 잡아주던 그 온기에 지탱해선 밤을 건너 새벽녘에 홀로 떨어져도 나는 불안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길을 잃고 나면 그 온기가 나를 이끌어주겠지, 이내 나를 편안하게 인도하겠지 무수한 믿음으로 외로움을 견뎌냈다. 죽을 것 같은 우울 속에서도 당신이 나를 구원해주지 않을까 하고 몇 날 며칠 방구석에 틀어박혀 떨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빛조차 비치지 않는 그 삭막하고도 어두운 몇 평의 공간에서도 나는 늘 당신을 떠올리곤 했다. 쉽게 망쳐질 수 없을 거라 확신도 하고, 미쳐버린 광신도처럼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바램 속에서도 꾸준히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었다. 


그 속에 나는 없었고, 잃어버린 내 뒤로 무수한 네가 떠났다. 나는 다시 좌절하고 망 가지고를 반복했다. 적어도 몇 번의 과정 속에서 나는 점차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조차 잊어버린 채 무기력해지게 되어버리거나 광인처럼 반쯤 미쳐버리곤 했다. 때론 나를 구원하겠지 하는 누군가 있었을지라도, 나는 금방 뒷전으로 밀려 그저 쓸모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싫어하는 것들의 무언가로 취급되어버려서는 처절한 울분만을 토해낼 뿐이었다. 


나는 왜, 너와 영원할 거라고 쉬이 착각했을까. 아니, 왜 우리가 영원할 수는 없었을까. 나는 끝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발버둥 치며, 사랑했던 만큼이나 처절하게 이별하고 있었다. 이별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때마다, 지나치게 허무해진 마음속 곯은 것들이 가슴 여기저리를 괴롭힌다. 그럴 때면 꼭 네가 나를 죽일 것 같았다. 네 그 무수한 흔적들이 나를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숨을 꽉 막고선 나를 죽여버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아직도 실체 없는 감정에 집착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슬프고 그립게 하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답 비슷한 것을 내려도 내 감정의 이유를 완벽히 설명해주진 않는다. 이 감정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싶어,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어 몇 번이고 설명해보려 했지만 이 감정은 도통 설명되지가 않았다. 타인에게는 그저 슬픔으로 비치는 내 감정이 안타까워 내보이려 하는 것도 마음 아프다. 조용히 손안에 꽉 쥐고 내 감정을 바라보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담배를 피우며 나의 눈을 또렷이 쳐다보는 때, 새벽 밤에 산책을 나가며 소란스럽게 문을 열던 때, 소란스러운 기차역에서 조용히 나의 허리를 감싸던 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침대 위에서 장난을 치던 때, 조금 더 가까이 안아달라던 때, 눈이 부셔 조용하게 불을 꺼달라 하던 때, 아침에 그 쉬어버린 목소리, 꽃처럼 피어나던 웃음소리가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너를 통해 배운 것이 지독히도 많지만, 너에게 한 번도 고마울 줄 모르는 나는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인 걸까. 더 이상 확신이 들지 않는 것에는 나를 바치고 싶지 않다. 몇몇의 짧은 경험 뒤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의 신념은 '타인을 위해서'라는 명분만 둔 채 오로지 나를 위해 나의 생만을 온 신경에 담는다. '다신'으로 많은 문장을 써 내렸고, 맘 언저리 즘에 꼭꼭 묻어두고선 아무도 보여주지 않을 테다 다짐한다. 설령, 이후에 후회하더라도 내일을 생각하지 하곤 많은 감정을 꾹꾹 죽여낸다. 가끔, 명확하지 않은 감정에 생각을 덧대어 놓곤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아도 괜찮아지겠지 속으로 몇 번을 되뇐다. 그게 그저 이어지는 꾸준한 나의 삶을 존속시켜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게 마지막 말을 뱉은 뒤로, 어쩌면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순리에 수긍하듯 나는 그 사실을 마땅히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능선 너머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너를 여럿 떠올렸다. 이제 네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온 감각들이 여전히 너를 향하고 있지만 네게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혹여, 오늘 밤엔 꼭 네가 내 생각을 해주었으면 했다. 아무렇지도 않아도 좋으니, 간혹 내가 그랬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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