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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03. 2019

" 서울역 "

가장 많이 남은 곳.

익숙한 듯 너무 먼 그 공간에서.


이른 새벽 서울역 한 가운데서, 조용히 기차를 기다렸다. 지나치는 바람이 추워 옷깃을 여미고 온몸을 감쌌다. 나는 소란스럽게 떨며 바짝 마른 입안에 침을 삼켜댔다. 아침까지 술을 마셔댄 탓에 속이 좋지 않아 몇 번을 비틀거렸다. 머리를 짚고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 한참을 두리번 거리던 가운데 문득 너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휴대폰을 들고 익숙한 이름을 수없이 뒤적거리다 들어오는 기차에 몸을 놓고 그만, 놓쳐버린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다 발끝에 멈춰섰다. 조용한 가운데 역 건너, 네가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우리가 정말 사랑했던 적도 없었던 걸까. 네가 나를 사랑했던 적이 없었던 걸까. 그랬다면 네가 나에게 보여준 그 모습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모습 중 하나에 너의 진심은 있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너의 말처럼 내가 만들어낸 너였을 뿐이었을까. 보고싶다는 말과 내가 너의 일상이 되었다는 말은 순간의 감정뿐이었을까. 너는 순간을 사랑했던 걸까. 그럼 그 순간을 사랑했던 나는 무엇이었을까. ' 기차안에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보낸 시간만큼이나, 아주 어렵게 잠들었었던 것 같다.


기차안에서 꿈을 꿨다. 나의 눈에 너의 이름을 부르던 나의 순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지나치게 들떠있던 눈과 수줍은 표정들이 보였다. 이질감이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깼던 것 같다. 나는 너였던 걸까, 아니면 여전히 나였던 걸까.


잠에서 깨고 너무 추웠다. 소란스럽게 온몸을 떨어도 냉기가 가시질 않았다. 나는 품으로 파고들어 애타게 온기를 찾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상한 눈빛으로 보아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따금씩 앓는 소리를 내며 울음을 참아냈다. 목 뒤로 울음을 삼키며 여러 번 소리를 내었다. 나는 우리 사이를 다시 떠올렸다. 거기에 사랑이란 말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정작 너는 없었다. 오직 나만이 존재했으며 오직 나만이 기억할 뿐이었다. 여전히 그립다는 말은 이제 지겨워진다. 뭔가 더 절실한 표현이 없을까. 너는 여전히 그런 것들보다 강렬하다.


역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먼 지 중간중간 걸음을 뚝 뚝 멈춰서곤 했다. 그 사거리에서 온몸이 굳은 채로 멈춰 서있었다.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뀌는데도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거기서 그냥 단지 너를 생각했을 뿐인데 소스라칠만큼 네가 아프게 느껴졌다.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다면, 내가 알고 있던 것도 다 잊혀지곤 내 인생의 어떤 부분에 다신 침범할 수 없도록 너의 영역이 저 멀리 어느 편에 있었으면 했다. 야속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어 되짚어 씹으며 나는 억지로 그런 것들을 부여잡는 탓일까, 무수한 감정 속에서 진심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순간을 되짚는다. 제멋대로 해석하며 사랑이라고 치부하던 날들이 그저 억울하게만 느껴진다. 그저 네가 미운 순간이 밉다.


집앞까지 잘 참아왔던 눈물 앞에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무기력감에 패배를 선언하고 문 앞에서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왜 우는지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너의 흔적을 더듬어서 울어댔다. 나는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들만큼 기억을 왜곡시킨다. 너는 어째 나에게 이렇게 큰 홈을 움푹 패어 남기고 떠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억지로라도 너를 잊으려고 하는 걸까,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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