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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24. 2019

" 너를 "

보내는.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한동안은 정말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대로, 영원히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져 나온 감정이 주워 담아지지가 않아 몇 날 며칠을 그대로 두었더니 우두커니 선 채로 나의 일상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이상한 미련과 헛된 마음이 나를 에워싸고선 놓아주질 않았다.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들어 우울한 날들에서 도통 헤어 나오질 못했다. 멍청한 생각들이 매일 밤 나를 괴롭혔고, 죽일 듯이 네가 달려들곤 했다. 질리도록 무던한 새벽과 밤에서 깨어나질 못했으며, 저주를 퍼붓다가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꾸역꾸역 나를 찾아오는 것들에서 벗어나려는 날들을 보내고 나서야, 글을 쓰는 지금은 괜찮다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나를 배신한 문장을 꾹꾹 쓰고 싶었다.


익숙한 장소에서 떠났다. 몇 평 짜리 내 공간을 '지키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겠지만 '스스로 떠났다'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소소한 것들이 시작되었고, 많은 것들을 끝맺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끝내지 않는다면 나는 이 많은 것들을 어디까지 끌고 갈 생각이었을까. 후련하게 끝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아득히 밟힌다. 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조심하게 꿈꾸곤 했다.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하곤 기억에 환상을 덧대어서는 나를 더욱 추하게 만들며 나를 환상의 행복 속으로 끌어당기곤 했다. 이젠 그런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싶다.


새벽녘에 바다를 보러 떠났다. 자정이 넘어 맞이한 새벽 바다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쌀쌀한 바람과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던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에서 쏟아져 나온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발등 언저리까지 닿았다 저 멀리 떨어지는 파도 앞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저 수평선 너머의 무언가를 지긋히 응시하며 소리 없이 몇 마디를 외쳐댔을 뿐인데, 몇 억 겹의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들이 바다의 선 위에 배들의 불빛 탓에 해변의 모래 언저리로 되돌아갔다. 밀물에 밀려드는 마음이, 썰물에 따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래, 나도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런 말로 삼켜낼 뿐이었다.


네가 좋아하던 것들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다시 바꾸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가 좋아하던 것들에서 멀어지기가 영 쉽지만은 않다.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많은 것들이 여전히 나의 삶 언저리에서 나를 흔든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원망이나 미련이 이제 반갑지 않다. 이것들을 곱씹으며 슬픔에 빠져 나를 처량하게 만드는 게 이상하리만큼 스스로 즐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너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다다르기에 너무 오래 걸렸다. 음악과 먹는 것, 책과 맥주, 기차와 장소. 이것들이 중요한 게 아닌지 알면서도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괴롭히는 이것에서 벗어나는 게 너무 오래 걸렸다.


'보고 싶어서 그랬어' 온 힘을 다해 너에게 절규했다. 기력을 다해 더 이상 빛도 발하지 않았겠지만 그저 그 말이 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 줄여 뱉는, 이 습관 때문에 하고픈 이야기 수만 가지를 그저 '보고 싶었다'라는 이유로 끝냈다. 네게는 그저 비참함의 산물 그 이상도 이하로도 느껴지지 않았을 그 말을 나는 꼭 해야만 했었고, 이기적 일지 모르는 그 바람 앞에서 수없이 고뇌하고 후회했다. 늘 그랬듯 답도 없는 너를 향해 몇 번이나 부정하고 나서야 나의 솔직한 마음을 인정했다.


덧없는 너를 잃었고, 그에 순응하던 나는 없다. 이것들이 내가 이별에 쉬이 순응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나는 그것들에 버티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웠고, 이전엔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해 그것들에 매달려 한없이 추락하곤 했지만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네게로 나있었던 긴 방향의 길이 조금씩 덮혀져 감을 몸소 체감한다. 너무 멀리 와버린 탓에 이젠 네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간혹 희미하게 너를 마주하면,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너를 우연히 발견한 것 마냥 한참을 꿋꿋이 바라보는 것이 남은 것의 전부일 거라고 안도한다.


너는 모른다. 길을 걷다가도 달빛 비치지 않는 어딘가에서 몇 번을 멈칫하다 울었는지,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도 못하고 한동안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디저트 집 앞에서 몇 번의 후회와 원망을 반복했는지. 기차를 타는 게 얼마나 어려워졌으며, 내가 디딜 수 있는 공간이 끝도 없이 좁아지는 기분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옥죄어 오는 감정들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했는지. 하루에도 몇십 번씩 찾아오는 무기력 앞에 내가 어떻게 두 발을 딛었고, 얼마나 많은 약으로 몇 날 며칠을 버텨야 했으며, 잠들지 못하는 새벽 앞에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지키려고 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헛된 미련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을, 원망하는 것조차 미안하다 느껴져 되려 나를 탓하던 날을, 꿈속 어딘가에서 마주친 너를 몇 번의 다른 모습으로 마주해야 했는지, 무수한 나를 망가뜨려 놓고, 지금의 내가 얼마나 불편한 사람이 되었고, 얼마나 그리운 사람이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너는 나를 그저 보냈을 뿐이지만, 나는 너를 보내기 위해 너를 만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간헐적으로 나를 찾아온다. 이전에 내가 사랑하던 너의 모습으로 휘황찬란하게도 나를 헤집어 놓는다. 알고 있다. 이게 네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이전에 모두 끝나 버렸으며 지금 명확하게 존재하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거쳐 온 지 모른다. 지독한 연과 후유증은 끝도 없이 나를 파고들었다. 덧난 듯 부풀어 오른 상처의 덩어리들이 나의 언저리에서 몇 번이나 나를 쓰러트렸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본질이 모두 썩어 문드러지고 나서야 너를 향한 마음이 지금 천천히 죽어간다. 너를 보내는 때가 아주 천천히 오고 있다.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의미없는 말을 몇 번 덧대어 보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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