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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1. 2019

" 꿈에 "

현실이 아닌 곳에.

몇 분 남짓한 시간.


네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능청스러운 말투로 내게 농담을 건네고, 예전과 다를 것 없이 활짝 피어서는 눈에 그득히 담겨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나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포개지는 손깍지에 정신이 아득해져 그만 너를 잃을 뻔했다. 몽환 속 너는 변함없이 나를 꼭 붙잡고 수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너를 보았을 뿐인데 밀려오는 그리움에 이질감이 들었다. 숨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어색한 침묵 속에 네 목소리만이 가득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좁은 공간 속, 눈을 뜨면 모든 게 끝나버릴 테지만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조용히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한치도 자라지 않은 새하얀 손바닥이 푹 잠겼다. 손길 마디마다 저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네가 나의 손을 꼭 잡았을 뿐인데, 세상의 감각이 돌아오는 듯했다. 창문틀 너머로 햇살이 따듯했고, 먹먹하던 주위 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으나, 눈 안 가득 담기던 네 모습은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조차 자각하지 못했다면 어찌나 좋았을까.


이별의 순간과 닮은 듯 나는 지나칠 정도로 무던한 표정으로 너를 보고 있었다. 속내를 숨긴 채, 끝내 흔한 미련 한 번 보이지 못한 채 태연하게 너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 의식 속 깊숙이 존재하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환한 얼굴로 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게 진정 너인 줄은 알지만 네가 아님을 다시 자각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것만 네 눈을 바라보면 얼마 가지 않을 이 일말의 시간조차 아까워 그저 침묵으로 답했다.


네가 나를 꿈꾸게 만들었으니, 언젠가 네가 나를 또렷이 깨우리라.


네가 희미해져 갈 때쯤에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말 저 말 마구잡이로 뱉지만 너의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짧은 이 순간을 부정하고 싶었다. 꿈속 안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원망과 뒤섞인 그리움의 감정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너의 모습과 방실거리던 너의 목소리까지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리움의 산물이 되어버린 너를 완전히 부정하고 싶었다. 


눈을 뜨니 익숙한 공간의 천장이 또렷하게 보였다. 잠시 동안은 숨도 쉬지 않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게 두었다. 커튼이 걷힌 창문 너머는 거짓말처럼 흐릿하고 어두운 날씨였다. 온통 회색빛에 곧 비라도 내릴 듯 우중충한 날씨였다. 흐린 탓에 모든 것이 적막했고 숨소리조차 죽어버린 공간 안에서 이대로 턱 하고 멈춰버렸으면 싶었다. 깨어 손을 뻗어 가까운 곳에 너를 기록하려 들었지만 기력이 빠져 펜을 놓았다.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쓰려할수록 도리어 선명해지는 너를 감당할 수 없는 탓이었다. 이제 모두 정리하겠다던 나의 박약한 의지가 가냘픈 것이었음을 다시금 떠올렸다. 나는 하루를 망쳤다. 다시 실패했고 후회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오늘 이전, 그 전에도 네가 올 때마다 나는 무방비하게 점령당하고 만다. 겪을 때마다 이 거짓말 같은 순간들을 믿지 않지만, 동시에 믿고 싶어 지는 역설의 감정에 시달린다. 다시금 깨닫는다. 이만큼이나 내가 너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네가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감정은 무뎌지며 동시에 단단해진다. 


늘 같은 모습으로 예고 없이 찾아오는 너를 어찌 보내야 할지 더욱 막막해진다. 며칠간 또 밤잠을 설치고, 하루를 망치 고를 반복할지 모르겠다. 이미 휘이 떠나버린 너를 밤 안 지독히도 잡아놓는 날들을 이제 지났는데 어찌 네가 왔는지, 방 안 문을 활짝 열어놓은 탓인가 창문 너머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탓인가 어떤 이유로 네가 왔음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눈을 감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허망한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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