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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ug 23. 2018

" 이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꼬리를 무는 사랑의 의심을,


며칠간 '쓴다'는 사실과 멀리했다. 바쁜 일이 생겼고, 안정적이지 못한 일상은 여전했다. 어쩌면 사실, 내 몇몇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은 삶이었건만, 분명 괜찮지 않았다. 네가 옆에 있었지만, 허전한 공기가 온통 맴돌았다. 이 기분에 대해 변명하려 답을 찾았건만, 뚜렷한 변명 한 점 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멀리 있어서, 너무 달라서, 누군가 부족해서 따위는 마땅치 않았다. 그저 사랑한다는 사실 뒤로 돌아오는 허망한 의심이었다.


사랑한다는 사실에 취해있던 내가, 너의 사랑에 의심을 품었다. 만나러 가는 길에도, 돌아오는 길에도, 심지어 함께 있는 순간에도. 행복함에 취해 의심조차 않던 마음에 불안함의 불씨가 자라더니 이내 나를 뒤집어 삼켰다. 처음은 너의 무심한 표정에서 시작되었다. 들떠있던 내 표정과는 다르게 때론 너무 무심한 내 표정이 가슴 깊숙한 곳 언저리를 찔러댔는지도 모른다. 그 불행한 신호를 무시하려 들었다가, 이내 지금은 너의 뒷모습에서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어쩌면 그대로일 너일 텐데, 나는 그 가벼운 사실마저 부정하기 시작한다.


간간히 너의 손을 잡고 있는데도 너는 어딘가로 가있는 느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분명 너는 나의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지나가던 타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두 제 각기 원하는 환경에서 소란스럽게 사랑을 자랑하는데, 대체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마주하게 되는 나는 태연할 자신 있을까. 그렇게 겪고도 익숙하지 않을 아픔을 나는 다시 겪어야 할까. 이 연을 쥐고 있는 건 오직 나만이,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게 아닐까.


나와 함께하는 순간에 너는 우리의 공간에서 벗어나 너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러질 못해서 네가 부럽다가도 이내 외로워진다. 그 공간에서 나는 낯선 이방인일 뿐, 존재의 의미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네가 없어질 때면 두리번거리다 이내 네 뒤꽁무니만 찾아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너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무엇인지 서러워 그냥 허망하게 웃어 보였다. 하나, 너의 들뜬 마음으로 내 깊은 마음까지 눈치채기엔 무리였다. 나는 더 슬퍼지기 전에, 고개를 돌린 너의 뒷모습으로 몇 번 눈물을 훔쳤다. 네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숨죽여서 몇 번이나 그랬다.


네 삶의 주연은 너일 텐데, 왜 내가 사는 삶의 주연은 내가 아니고 네가 되는 걸까. 내가 살아가는 생마 저도 나는 온종일 조연일까. 나의 생을 궁금치 않아하는 네게 이렇다 말해주는 일도 버겁다. 담벼락 너머에서 공허한 울음소리를 삼켰다. 어쩌면 그토록 바랬던 삶의 표본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걸까. 아니면 예전처럼 똑같은 실수만 하고 있는 걸까. 근원을 파내고 파낼수록 역시 내 탓일까. 너의 사랑의 목적은 나를 향한 것 일가, 아니면 너의 외로움을 위한 것일까.


문득, 혼자인 순간들이 그리워졌다. 지나친 역설이겠지만 분명히도 그랬다. 아프고 힘든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지금만큼이나 복잡한 순간에 덜 헤매지 않았을까,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슬슬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 이 난관이 내게는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네게 내가 전한 예쁜 말들은 수없이 모자란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슬퍼지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한 말처럼 너무 과분하고 성에 넘치는 사랑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러기에, 나는 혼자여야 하는 게 아닐까.


온갖 복잡한 마음 뒤로 네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건망증 탓에 깜빡하는 건 그리 많으면서, 이럴 때면 자꾸 네가 휙 하고 나타나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나는 무기력해진 탓에 별 반응조차 내질 못한다. 눈치를 보다 연기를 하기도 하고, 내 감정 뒤로 느껴지는 너의 감정에 먼저 손대려 하겠지. 모든 걸 희생하고도 너와 마주치는 한 번이 괜찮아서 그저 실실거리며 너를 따르겠지. 위로받지 않아도 꽤 괜찮다는 생각으로 몸음 뉘이고, 밤새 숨죽여 이불속을 헤매겠지. 아마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렇겠지. 혹여나 하는 너의 질문에도 나는 아니라고 거짓말하게 되겠지.


지금은 그저, 네가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이별하고 싶지만은 않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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