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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Sep 17. 2018

" 평범한 안부 "

잘 지낸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그랬듯이.


모처럼 안부를 전합니다. 안부를 전한다는 말이 우습게 들리네요.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말은 핑계 삼아서 안부를 전하곤 했으니까요. 문득, 어느 날에 당신이 그 안부를 알아줬으면 하고 소망하던 때도 이제는 여름밤과 함께 고이 접어 보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어쩌면, 당신의 마음이 좀처럼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옛날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지도 꽤 시간이 되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당신이 모르는 만큼 내가 모르게 되었다는 건 우리가 꽤 오랫동안 서로에 대해 무심해졌다는 거겠죠. 어쩌면 서로가 아닌 일방적인 저의 관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마저도 무심해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니, 평생 극복하지 못할 당신을 한 단계라도 극복한 느낌이 듭니다. 이게 괜찮은 일인지, 아쉬워야 하는 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당신처럼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신호이지 않을까요.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당신이 그리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나는 늘 여전히 갖가지 핑계를 두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포장하고 있노라면, 꼭 우리 사이가 뭔가 중요한 것이었다는 착각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동경하던 당신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깨어 자각하게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신을 동경했던 날들보다 더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분명, 당신은 내게 상처였고, 씻을 수 없는 비참함 정도였습니다. 정도라고 표현하는 건, 제가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이야기겠죠. 사실, 처음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외면하고 싶지만 그건 맘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떨어진 수많은 증거가 바로 코앞에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런 당신을 원망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이 그랬다고 솔직하게 인정할 때가 왔을 뿐이니까요.


이렇게 말을 적고 나니까 우습기도 하네요. 지난 몇 년간 내가 울고, 떼쓰고, 버거워하고, 무너지고 했던 것들이 이렇게 한 번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요. 그때는 이 아픔들이 지나치게 비대해 견딜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정말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억과 사람과 남은 것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건 오직 저뿐이겠죠.


안부가 궁금하긴 하네요, 몇 번 연락을 해볼까 고민했지만 그때마다 열심히 견뎌왔습니다. 딱 한 번, 답답한 마음으로 당신의 목소리를 마주했던 일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은 당신이 좀 진지했길 바랬는데, 사람 마음은 늘 마음처럼 되지 않나 봅니다. 나는 당신의 질문에 그저 그냥을 몇 번이나 던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숨기고 괜찮다 했던 날처럼, 그 날에도 혹여 당신에게 부담일까 그냥이라는 말로 수없이 나를 달래었건만 지나고 나니 후회만 가득, 쓸쓸함만 배가 되었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어떨까, 그냥 저도 담담하게 당신을 마주할지도 모르겠네요. 


거기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고요를 몇 번 지나쳐 행방조차 묘연해져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밤을 새워 종종 당신을 떠올리곤 합니다. 어느 구석 즈음에 푹하고 처박혀 있는 당신을 몇 번씩이나 다듬고 정리하는 것은 늘 저의 몫이지요. 당신을 떠올려 좋은 날을 상기시키는 게 저에게 최선의 방법은 아니겠지요. 하나, 이렇게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덤덤해져야 언젠가 당신의 얼굴 앞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겠죠,


살아있기에 아름다운 날은 갈수록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의무이자 저에게 주어진 책임의 일부입니다. 지독하고 엉망인 삶 속에서도 우리가 끊임없이 생을 살아야 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겠죠. 이 말을 하는 이유라 하면, 다시 몇 번이나 지독한 사랑과 아픔이 제 가슴 깊숙이 찌르고 도망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꽤 오래전에도, 불과 얼마 전에도 말이죠. 생각할수록 우스운 일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늘 우스운 변명과 괜찮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모든 걸 망치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지나치게 아프고선 모든 것들에 후회하고 다짐합니다. 막상 앞에만 서면 모든 걸 잊고 예전과 다름없는 제가 거기 있을 뿐인데요.


그런데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훑었기에 지금 와서도 모든 날들이 진심이었다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미련하게 더 찌질하게 아파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스스로에게, 어쩌면 훈장 같은 걸 새겨주려고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잘했다고, 수고했고, 당신은 아파할 권리 같은 게 있다고. 그만하면 됬지만 그만하기에 네가 사랑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 지도 모릅니다. 이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 앞에서 미련과 찌질이 얼마나 솔직한 말이며, 이토록 보태어 설명치 않아도 되는 말들이 더 있을까요.


풀벌레 우는 소리 창안으로 밤 깊게 울리다 이내 멈추었습니다. 선선히 부는 바람이 귓전을 스치던 때에 죽은 것처럼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던 때도 한때로 밀려가버렸습니다. 창밖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저는 어느덧 9월 자락이 다 되어버렸구나 이렇게 다시 가을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저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합니다. '아, 그 사람 내가 그래서 좋아했어' 따위의 말로 당신에게 연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 이게 슬픔이라던가 아픔이라던가 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은 때에 맞게 모두 소모해버렸습니다. '보고 싶다'라고 솔직했던 나는 '안녕, 부디 잘 지내세요'라는 말로 별 가득히 뜬 밤을 다시 헤맵니다. 이 밤에 또다시 스스로를 동정하기에 당신의 안부를 평범하게 묻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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