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솔 Sep 19. 2018

" 그 아이 "

나의. 

참 예뻤던,


그 아이가, 소란스럽게 온 공간을 어지럽힌다. 함부로 여기저기 손을 대기도 하고, 공간 안에 차곡히 정리해놓은 것들을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한다. 발자국과 손자국으로 여기저기를 더럽히다, 이내 싫증이 나서는 쉬이 바닥에 누워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곤 했다. 멀리서 조용히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아이가 공간의 전부인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했다. 공간 안에 나는 없고, 오직 너만이 존재했던 그 순간이 그리워지는 오늘의 기록.


유달리 불온전하던 나의 온 치부를 간지럽히다 이내 벗겨버린 너는 소란하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세상이 파묻혀 오직 네가 가진 미소로만 세상 하나를 온통 지배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아니, 흠모하듯 즐기고 있었다. 예쁜 말들로 세상 언저리를 가득 채운 너를, 분명 환희에 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만큼은 나의 불행과 사정, 외로움과 슬픔까지 모두 잊고 너에게 꼭 안겨있곤 했다. 너는 말보다 더 깊은 눈빛으로 네 안에 나를 담고 있었다.


너는 너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의 증명을 즐기고 나눠 쓰고 애처롭게 간직했다. 그렇게 증명해갈수록 나는 뭔가 덧대어지는 기분이 들어 네가 꼭 떠나지 않을 거라는 착각을 했다. 착각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웠지만, 그런 오만함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걸까. 나는 그 사랑에 대한 증명을 이어가야 했고, 어쩌면 네가 원치 않았던 증명 때문에 혹여 네게 부담이었을까 이제는 두려운 감정이 든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나, 단 하루도 내가 완벽하게 사랑받은 적은 없었을까. 나는 이 불안함의 굴레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몇 겹의 낮과 밤이 지났다. 새벽녘도 몇 번 띄워 보내고, 개운치 못한 이른 아침도 몇 번 마주했다. 그 속에서 분명 우리는 공존했고 함께했다. 하나, 우리는 서로의 감정 대신 각자의 시간을 걸었다. 이해와 노력이라는 이름으로는 극복하지 못했을 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홀로 남겨진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던 게 아닐까. 네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부끄러운 고백인 건 확실하지만, 변해가던 날들 속에서, 내 눈에 더 크게 보이던 건 우리가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이후에 남겨질 것들에 대한 회의감과 공포감이었다. 그리고 우리아 아슬히 걸어오던 이 길은 분명, 원치 않은 과정이었다. 감정을 지나치게 써내고 나서, 녹초가 되었다. 그래, 

나는 분명 울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내 마지막 말에 수없이 물음을 내던지고 대답했다. 네 가시 돋친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감정에게 자책을 요구하듯 아프게 한다. 내가 바랬던 모든 것과, 네가 봐온 모든 나의 모습들이 철저하게 부정되어서는 꼭 너와 나를 아프게만 만들어 놓는다. 네가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네가 그렇게나 사랑한다고 말했던 내가, 노력했던 모든 것들과 바랬던 사소한 것들이 그토록 엉망이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날은 유난히 흐렸다. 달이 뜨고 있었고,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걱정이 없었고, 나의 하루에 네가 없어졌다. 생은 어두웠고, 새벽은 깊었다. 너는 잠이 들었을 지금 시간에, 나는 감히 네 생각에 몸을 뉘었다. 그 날의 행복 속에, 다시 한번 포근히 온 생을 던지지만 이제는 어떤 따뜻함 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느 때보다, 날이 흐리다.


원망하고 있었다. 쉬이 작별을 고한 너를. 사랑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역설이 있다. 우리는 쉬이 상처받았고, 상처 주고, 원망과 비극을 반복했을지도 모르겠다. 너의 외면과, 너의 무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지막 미련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애써 변명했던 날들이 이젠 다 무슨 소용이 된 걸까,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저 소리 없이 사라질 마음 들일 텐데. 이 또한 나의 잘못이라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면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자신도, 사랑받을 자신도 없는 사람으로 남을 뿐이다. 이런 원망 섞인 소리를 해보았자 이제는 그저 원망만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저, 이 작은 마음마저도 네가 몰랐으면 하는 조용한 침묵을 기다린다.


나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참회 비슷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끄러워 코를 몇 번 훌쩍 대가 팔로 얼굴을 감싸고선 창가에 머리를 기대었다. 좋아하는 음악이 귀에 흘렀고, 좋아하는 풍경이 바깥에 흘렀던 것 같지만 네 모습이 더 많이 비춰보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더 예쁘게, 더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은 욕심이 아니었을까. 이따금씩 무서운 생각이 든다. 애초부터 네가 날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철저하게 부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이 모든 걸 망쳐버린 게 정말 모두 내 탓일까 싶어 자꾸만 나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는다. 무섭다. 내가 나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내 감정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는 것이 자꾸만 무서워지기만 한다.


그저께는 미처 지우지 못한 사진이 내 하루를 어지럽혔으며, 어제는 아이의 목소리가 온종일 세상을 맴돌았다. 오늘은 한동안 하지 않았던 게임을 틀었다가 네가 신나서 내 볼을 붙잡던 게 생각났다. 그 눈 안에 담겼던 네가 참 예뻤는데 하고 새벽녘에 무수히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두고 간 흔적을 지워내느라 아직도 애를 먹는다. 이따금씩 멍하니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내 삶 사이에 불쑥 튀어나올 때면, 너를 참 많이도 심어두었구나 하고 멍하니 그 속에 빠져있곤 한다. 그때마다, 너무 예쁜 기억들이 나타나서는 내게 후회를 보채곤 한다. 상처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이럴 때면 나를 무수히고 아프게 한다.


네가 사랑받는 아이라는 걸 세상 모든 이들이 알 듯, 무엇보다 내 잘 알았으리라 단언하고 싶다. 너는 내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기에 꾸준히 사랑받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꼭 그렇지 못할 것만 같다.  하나, 아무도, 그 누구도 나만큼이나 너를 사랑하지 못할 거고, 그리고 네가 기어이 그 사실을 깨달아 그리움에 빠져 있기를 바란다. 그토록 아름답던 너를, 단지 나의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었던 날들을 단 하루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생을 가로질러 너에게 뛰어갔던 그 날의 속도만큼이나, 아이는 내게서 멀리 달아난다. 손도 쓰지 못할 만큼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달아나는 아이가 내 생의 전부였고, 그 장면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아이가 이따금씩 뒤돌길 바라지만, 아이는 빠른 걸음에서 나의 시야에서 허망하게 사라진다. 부랑자 같은 나의 생이 다시금 나를 집어삼킨다. 나는 진이 빠진 채로, 이 어둠 속에 깊이 몸을 숨긴다. 아이는 이대로 멀리 사라질 뿐이지만, 나의 생이 여전히 흐르고 있음에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You'll miss me. No one no ever love you as much as I do. Why isn't it love enough? - <Closer> 中


내 생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던 온통 엉망이었던 나를 사랑해줬던 네게 고마웠다.


Dear Catherine, I've been sitting here thinking about all the things I wanted to apologize to you for. All the pain we caused each other. Everything I put on you. Everything I needed you to be or needed you to say. I'm sorry for that. I'll always love you 'cause we grew up together and you helped make me who I am. I just wanted you to know there will be a piece of you in me always, and I'm grateful for that. Whatever someone you become, and wherever you are in the world, I'm sending you love. You're my friend to the end. Love, Theodore. - <HER> 中


이 모든 것이 그리울 만큼, 이 모든 날이 비참한 만큼, 이 모든 생이 아름다웠던 만큼.

매거진의 이전글 " 평범한 안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