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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Oct 14. 2019

" 좋았다 "

이 말.

몇 달동안 묵혀둔 속내.


글을 쓴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몇시간의 짧은 삶 속에서 온전히 나의 손끝에 집중하는 일, 생각보다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다. 몇 자를 더 쓰려다가도 막상 생각했던 것들을 다 쓰고나면 기력을 다 한 것처럼 글에 대한 의지조차 사그라 들기도 한다. 몇 번의 글감과, 종이 위에 서툴게 남긴 글귀들도 있었다. 그것들은 기어이 옮기지 않은 까닭은 순간 진심이라고 착각했을 때라던가 쓰다 감정이 끝나버린 때, 그저 행위 자체가 귀찮아져 버렸을 때라던지 참 많은 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쓴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쓰고싶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순간이야 앞서 몇 번이나 겪어봤지만, 때마다 나의 삶이 달랐듯 이번만은 다를거라는 기대가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다시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이것은 너와의 기록에서 공식적인 초본이며 되풀이 되지 않을 소중한 감정이다.


사랑에 실패하고도 다시 사랑을 반복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몇 번이나 답을 찾으려 했지만 답에 대한 감이 오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좇아서인가, 상대방의 노력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의 변화인가 … 아직도 뚜렷한 답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저 좋았다고 해야할까. 무던하게도 그게 다였다. 유수히 넘어가는 시간 속에 찾았던 하나의 이유였다. 당신이 나를 이겼다. 끝끝내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그저 괜찮겠지라는 의문 가득한 마음이었는데, 당신이 좋아지게 되었다. 당신이 생각한 것 보다 더 이른 시간에 알았다, 당신 보내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고 떠나지도 않았는데 당신을 잃은 것처럼 아파할수도 있다는 걸, 사랑이 향하는 곳에 방향이 있을 뿐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당신을 향하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당신에게 치여 산산조각이 난데도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마음이 진심이 되었다. 


지금의 당신이 그저 당신의 마음일지 몰라도, 내게는 몇 안되는 새로운 순간들이다. 어쩌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내게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혹여 두렵나 묻는다면 조심히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나는 새벽에 깨어 팔을 뻗어 닿은 당신이 곤히 나를 안아주던 순간조차 낯설었으니까. 그렇게 품 안 숨소리를 느끼는 순간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밥을 먹지만, 우리가 꼭 밥을 먹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볼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쇼핑을 할 때에도, 그 어떤 순간에도. 그립다는 감정보다 더 그리운 감정이 있고, 보고싶다는 말보다 무한한 아쉬움이 있듯 말이다.


이 행복에 마땅히 그렇다 하고 안주할 수 있는가, 아니 나는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늘 당신을 만나러 간다.


내 근본은 우울함에서 시작된다. 부정적인 기운들이 아우라처럼 내 온 몸을 감싸고 돈다. 이것들은 내 어린시절에서 비롯되었을수도 있고, 내가 붙잡고 있는 형상들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나는 달에 한번은 병원을 가야하고, 잔재에서 비롯된 불안으로 버스조차 타기 어렵다.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우울이 올때면, 이따금씩 못된 생각을 하곤 한다. 단순히, 나의 기호로 나의 본질을 선택할 수 없듯 내 무기력함에 내가 이길수 있는 것이 아기에 나조차도 거부하는 나의 본질을 당신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다시 본론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다면 여러가지 답을 내릴 수 있겠다. 이 감정이 나를 성장의 기회로 밀어붙였다가 깊은 바닥까지 떨어드리기도 하고, 감정의 동굴 속 몇날 며칠을 밤새워 보내게 하다가도, 간혹 지나치는 장소에서 하염없이 슬퍼지게 만들기도 한다. 수십번이나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온 몸을 내던지고 혹사시키면서도 기꺼이 웃을 수 있다 말하기도 했다. 사랑인 줄 알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나를 무너뜨렸나, 새벽 언저리 숨도 쉬지 못한채 울음을 토해내던 때 다짐했던 마음이 언제 이리 희미해졌는지 모르겠다. 사실,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에, 나는 아주 약하게 흔들린다. 내 이전의 과오들이, 지나왔던 것들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 당신의 무한한 사랑 앞에서 흔들고, 할퀴고, 찢고, 무너뜨리고, 괴롭히고, 망가지고, 찌르고 … 를 수없이 반복한다.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다 가도 의미없이 멈춰서고 무기력함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상하게도, 당신을 보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느낀다. 당신을 꼭 끌어안고 당신을 마실 때에 나는 이대로 다 괜찮으리라 안심한다. 세상이 적막해지고, 눈 앞이 오직 어둠으로 가리워지는 때 품안에 꼭 들어온 당신에게 잠겨 죽는다. 당신의 눈동자 안에 나를 보는 때, 포근하게 감싸오는 손바닥에 안심한다. 그게 광안대교가 되었든, 진주산성이 되었든, 고향 언저리에 어디가 되었든 … 나는 꼭 그렇다. 고백을 하기 위했다면 서론이 길었고, 묵혀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지금이 맞다.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말이 너무 많았지만 명백한 사랑이다. 좋아한다는 말보다는 좀 더 무겁게 너를 사랑한다,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활짝 필 수 있을까. 진정하려 추를 달아보아도 훤한 가을바람 한 번에 다시 뜨고 만다. 나는 쉼 없이 두근거린다. 갈피를 잡지 못해 흔들리는 마음의 방향을 한 곳으로 밀어낸다. 때마침 그곳에 당신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 나 스스로도 내가 어색하리만큼 발끝을 띄웠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서툴게 적어내리지만 이 마음을 문장 안에 심어둘 수 있을까.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득'이 되고 만다. 당신은 존재하에 나타나 나의 생을 어지럽히고 향에 취하게 만들었다. 당신의 새하얀 손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났을지도 모른다. 욕심을 부려 더 못된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생각만으로 나는 환상에 잠겨 쉽게 깨어지질 않는다. 달콤한 말투에 그만 마음을 홀려 몇 날 새벽을 쉽게 잠 못 이루게 될지도 몰라, 며칠째 달이 어떤 모양으로 변해가는지 눈 속에 담아둔다. 사랑스럽다는 말에 물들어 때론 교태를 부려본다.


취기 어린 마음으로 진솔함을 마주할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너의 말은 아스라이 피어 나의 삶이 되었고, 내 일상을 잠식해간다. 그래, 당신이 활짝 피었다. 온 생에 당신이 피어 나는 피할 곳이 없어 경치에 흠뻑 젖고 말았다. 나는 젖은지도 모르는 채 헤벌쭉 당신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창피한지도 모른 채 그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몫이 되었다. 너는 내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멈추지도 못하고 당신에게 끌려온 삶을 만끽하고 있다. 사랑이 다시 올까 두려웠던 적이 있었던가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당신을 만끽하고 있다. 어떤 감정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모르는 걱정조차 입안 가득 담아놓고 풍류에 취해 그저 내 몸 하나를 비튼다. 몇 해가 지나도 좋으니, 너는 떠나지 말아라.


네가 준 것들이 나의 공간을 가득 메운다. 아니, 네가 가득 내 삶을 메운다. 이 무더운 여름에 다시 도착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났고, 또 지나겠지만 새벽녘에 졸린 눈을 써내려가는 이 글자가 길을 잃지 않고 당신에게 그대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횡설수설 분간조차 가지 않는 글이라 해도 당신은 알아주어야만 한다. 이것이 진짜 오늘의 진심이고 앞으로의 진심이 될 터이니.


나는 사랑을 한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연인의 고리를 채워나가려 한다. 기대하는 만큼 씁슬하겠고, 사랑하는만큼 아프리라. 외로움에 온몸을 비틀다가도, 문득 당신을 떠올려 잠들것이고. 공허함에 몇날 며칠을 새다가도 정처없이 움직이리라. 정해져 있지 않은 결말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어떤 날에는 당신을 쓰다 지쳐 잠들지도 모르겠다. 삶의 순위가 바뀌어가고 뒤죽박죽한 일상 속에서도 명확히 당신을 만나리라. 분명한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가지고 있던 세상의 단어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리라. 당분간 글 쓰는 게 어려워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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