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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Nov 20. 2019

" 면담 "

일정.

물음과 답.


Q. 요즘은 어떤가요?

_ 괜찮습니다. 그게 꼭 진짜 괜찮다는 말은 아니구요, 괜찮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원하는 걸 잘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듯이, 저에겐 일상생활이 소망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괜찮게 살려고 노력하고, 태연해지려고, 덤덤해지려고 계속 노력중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무너질 것 같거든요. 그런 불안감과 태연함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휘청거리면서 살고있는 기분이 들어요. 

-

Q. 괜찮다면 이유가 있나요?

_ 그 사람인 것 같아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좋은 사람이고 싶다' 라는 말처럼 어떠한 사실들이 내게는 의무처럼 주어진 것 같거든요. 어쩌면 당연한거고, 그게 상대방에겐 당연하지 않을수도 있는데 … 그냥 그 사람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상기해요. 모든 걸 망쳐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면 천천히 떠올려요. 그럼 좀 나아지는 것 같아요.

-

Q. 편안해진다는 뜻처럼 들리네요, 그것도 이유가 있을까요?

_ 편안하다 … 라는 느낌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전 늘 안절부절하거든요. 지난번에도 얘기했듯 저는 행복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가진 이 자그마한 것들 조차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어쨌든 선생님, 그 사람이 제가 가진 일정 영역을 계속 넘어오는 것 같아요. 나는 영 무섭다가도, 그게 썩 걱정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가끔은 정신을 놓고 안주해요. 새벽에 깨어서는 몇 번이나 걱정을 하면서도 괜찮다 하고 되뇌이는 것 처럼요.

-

Q.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그런 적 있나요?

_ 수없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전에도, 오래전에도 여러 번 그랬어요. 옆에 누가 있으면 잠들기가 영 어렵거든요. 왠지 모를 책임감도 있고, 조바심도 있고, 두려움도 있어요 … 설령 그렇더라도, 눈을 떴을텐데 감는 순간조차도 상상해요. 이걸 부정하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그저 잠결에 몇 번씩 뒤척인다고 생각하겠죠.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신경이 쓰였다거나, 날씨가 조금 추웠다거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 그런 이유들이 아니에요. 잘 아시잖아요?

-

Q. 무슨 의미죠?

_ 선생님, 이전에도 저는 쉽게 잠들지 못했어요. 따듯한 우유를 마셔도, 운동을 해도, 약을 먹어도 말이에요. 그런 것들보다 제 밤을 짓누르는 무수한 근심들이 있었겠죠. 그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동반했고, 과거와 함께 찾아와요.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가볍게 나타나요. 매일 밤 죽을듯이 제 목을 조르던 것들 있잖아요. 그치만, 나아질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 쉬이 잠들 수 있는 걸지도 몰라요. 노력하지 않았지만 늘 애썼어요. 그런데, 무수히 무너져요. 편안하게 지탱한 밤들이 별들보다 더 잘게 무너지더라구요. 뻗어주지 않은 팔 속에도, 등돌린 날개뼈 속에서도, 애달프게 가녀린 머릿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무수한 절망 속에서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헛된 기대감 아세요? 나를 죽일듯이 조르던 차가운 공기가 나를 지켜주겠다 말하면 그 몸을 쉬이 내줄 수 있겠어요? 전 늘 두려워요, 전 아마 이기지 못할거에요.

-

Q. 그러니까 그 사람인가요?
_ 그 사람은 달라요, 선생님. 이전에도 매번 그랬지만 그 사람만은 다르다고 믿고 싶어요. 제발.

-

Q. 주제를 환기해보죠, 그 사람과 어떤가요?

_ 글쎄요 … 두렵다가도 그런 것들은 온통 무너뜨리는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빛의 이면에서 사람을 지켜본 적 있으세요? 이전에 그랬어요, 어두운 길이었는데 가로등 조명에서 그 사람이 언뜻 보였어요. 손도 잡고 있었고, 우리답게 가까웠지만 어쩐지 그 사람이 언뜻 보였던 것 같아요 … 그러니까 뭐랄까, 황홀했어요. 언뜻 보이는 그 사람의 살결이, 눈빛이 온통 제 것 같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표현하기 정말 어려운데, 그 사람만이 '온통' 이었던 것 같아요.

-

Q. 다행이네요.

_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시는 아닐거라고 무수히 많은 흔적들 속에서 저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거든요. 꼭 그럴 줄 알았거든요 … 저는 말이죠, 언젠가 때가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피해야 했어요.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요. 로맨틱이든 뭐든 그런 소리들이 제 일상을 뒤집고선 한참이나 허덕이게 하고싶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그런 것들은 너무 많이 겪고 나면 소모품처럼 닳아 없어져 버릴 것 같았어요, 저는 상처받는 것 보다 그런게 더 두려웠어요. 내가 가지고 있던 본질조차 잃을 만큼 비참해질 때 말이에요.

-

Q. 그 사람 이야기를 해보죠, 무엇을 기다리나요?

_ 그 사람은 맹목적인 따듯함이 있어요. 이전에 제가 그랬죠, 사람의 본질은 따듯하고 전 그걸 믿는다구요. 그 본질이 몇 번 씩이나 부정당하고 멸시받을때, 제 마음은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세상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맹목적인 따듯함이 있어요. 나를 보듬고, 아낄 줄 알아요.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 사람이 제게 따듯하다고 이야기해요. '내가 왜?' 라고 늘 되물어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

Q.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_ 저는 악합니다. 이기적이고 쉽게 열패해요. 시기하고, 못됐고, 못났죠 … 선생님은 절 너무 못된 사람으로 느끼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아요. 주변의 기대감도 그렇고, 제 근본적인 배경도 있을 것 같아요. 전 늘 불안해요, 제게 괜찮다는 말이 왜 그렇게 두려울까요. 선생님, 불안함에 사로잡히면 안된다고 하셨잖아요. 여전히 일상이 불안해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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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불안함이요?

_ 불안은 기대에서 온다고 하잖아요. 괜찮은 삶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걱정 말라고. 근데 전 그게 너무 무서운 거에요. 기대가 무너지면 어떡하죠? 안정된 삶이 지속될 수 없다면요?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다면 전 어떡해야 할까요. … 다음에 더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아요.

-

Q. 다음에 더 이야기 나눌까요, 이후에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까요?

_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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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약 처방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_ 이전보다 조금만 낮춰주세요. 요즘 일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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