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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22. 2020

<말아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신파는 이렇게 그려야 한다


TV에서 영화채널을 돌려보다 보면 한 번씩 이 영화가 꼭 나오게 된다. 덕분에 영화를 본 사람도, 보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 지나가다가 마주쳤을 법한 영화가 바로 <말아톤>이다. 15년도 더 지난 2005년 개봉작이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천천히 잊혀갈 법도 한데, 비슷한 장르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 영화가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영화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했고,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손에 꼽으라면 <말아톤>을 첫 번째로 꼽아두고 싶다. 좋은 영화도, 재미있는 영화도 참 많지만 나의 영화 인생을 통틀어서 돌아봤을 때 이 영화만큼이나 먹먹했던 영화가 없다. '신파'라는 장르적 한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좋다'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영화 자체가 가지는 스토리와 메시지도 좋고, 감독이 영화를 연출하려고 했던 방식과 촬영 구도 등에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화 속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낸 조승우 배우의 역작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를 하나만 대보라면 그냥 내용 자체가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마냥 눈물을 쥐어 짜내려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좋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시장에서 장애를 다룬다는 것은 일종의 감동 보증수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논란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장애'라는 소재가 현실에서도 워낙 예민한 소재인만큼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부담감은 막중할 것이다. 감동을 주겠다는 말로 함부로 동정을 팔아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유쾌하면 순식간에 희화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저질 영화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그런 의미에서 <말아톤>은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게 오히려 현실감 있게 잘 그려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도 과하지 않았고, 영화 전개도 지나치게 극적이지 않았다. 상황마다의 연출이 자연스러웠으며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다. 덕분에 눈물은 있지만 부담감과 거부감이 없는 진짜 '명작'이 탄생했다.




한국영화사에서 '장애'라는 소재는 끊임없이 소구 되는 소재이다. 최근에는 분기에 한 번쯤 장애를 다룬 영화가 개봉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에 집착하는 영화들이 많다. 하지만, 그중 대게는 신파와 감동을 위한 ‘극 중 장치’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우연한 상황을 극복하려 하거나, 한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주인공이 각성하는 별 이상한 전개로 마무리 짓는 영화도 참 많이 보았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초점을 두기보다, 스토리를 완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 셈이다. 이것이 꼭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장르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부감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영화사 초창기에 '장애'라는 소재를 이야기로 만든 <말아톤>은 '만들 거면 이렇게 만들어라' 같은 교과서 같은 느낌이 크다. 




<말아톤>은 현실적이다. 애써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 들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장애인을 향한 따가운 시선, 엇나가는 형제, 모성애만으로는 감출 수 없는 본질 속에 있는 고통까지 ... 카메라 속에 어설프게 담지 않으려는 고민의 흔적이 많이 돋보였다. 현실적인 만큼 냉정하고 냉소적인 세상 속에서 탄탄한 인물들의 설계와 한 번쯤 멈칫하게 되는 내러티브의 모음은 작 중 스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스크린 속 인물들과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상실감과 무기력감을 넌지시 던져줌으로써 문제의식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초원(조승우 분)의 모습이 관객으로 하여금 과연 어떤 생각을 들게 하는가. <말아톤>은 영화 초입부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보통의 영화들이라면 결말부에서 매듭지으려고 끙끙댈 부분인데 말이다.




백스토리 활용도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110분 남짓한 이 영화를 모자의 이야기만 중심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각 인물들의 심리 상태도 설명해야 하고, 조연 인물들의 연계성도 잘 이어줘야 한다. 사건의 전개 아래 깔리는 배경 설명 또한 필수적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러한 요소를 일일이 설명하는 순간 영화는 쉽게 지루해지고 만다. <말아톤>은 이러한 설명들을 과감히 생략한 대신, 인물들 간의 감정상태와 몇 줄 남짓한 대화로 쉽게 이해시킨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어머니인 경숙(김미숙 분)과 초원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지나가는 필름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짐작은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그 사건이 인물들의 선택과 동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알 수 있게 만든다. 지금은 잘 보기 힘든 이러한 백스토리 활용법이 가장 좋았다. 상영시간 동안 쓸모없는 내용이 없었고, 각 인물들의 공감도를 훨씬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많이 변했지만 당시 시대와 영화 산업 방향으로 보았을 때 <말아톤>은 영화적 의미가 큰 영화였다. 비록 ‘장애인=감동'이라는 고정 클리셰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는 이유 없는 동정을 피했고 비장애인의 모습에서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모습과는 다른 시각으로 담아낸 점은 분명하다. 이전까지의 작품에서 장애인이라는 인물이 주는 느낌은 어떠했는가, 무기력하고 순진한 그저 겉보기에 불과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초원이의 욕심도 있었고 감정도 있었으며 의지 또한 있었다. '그만하자'라는 어머니의 말속에서도 스스로의 '의지'로 완주해내는 초원이의 모습은 당시까지의 영화들이 답습해왔던 장애인의 모습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동시에 주위 인물들의 고통도 원색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그대로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말아톤>을 명작으로 만드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26살의 조승우 배우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조승우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극호밖에 할 말이 없다. 영화 후반부 지하철에서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하고 소리 지르는 연기가 너무도 생생한 나머지 주위에 있던 단역배우들이 울음이 터져 NG가 났다는 이야기는 당시 조승우의 메소드 연기 그 자체를 입증하는 듯하다. 조승우의 연기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영화 전반부에서 결말까지 초원이의 태도는 그대로지만, 주위를 둘러싼 가족과 시민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변한다. '자폐아'를 그대로 연기한 그의 태도는 마치 스크린 밖에서 벗어나 현실에 있는 대상과 함께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극 중에서 어머니의 의미 없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행동을 반복하거나 하는 모습은 배역에 대한 조승우의 탐구력이 얼마나 섬세했는지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조승우의 행동 하나하나에 정윤철 감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영화가 자폐아에 대한 일반인들에 인식개선을 요구하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영화를 리얼리즘으로 만들어내 현실감 있는 접근으로 초원이라는 인물을 장애인으로서의 한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바라봐주길 바랬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실수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보면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충 어림잡아서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전부는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초원이는 결국 자기 선택을 따라서 엄마의 품을 떠나 긴 마라톤을 완주한다. 뛰지 말라고 애타게 말리는 엄마의 말에 안절부절못해하다 결국 손을 놓는다. 엄마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욕심으로 채워졌던 아이의 삶을 이제 풀어놓는 순간이 왔다는 걸 결국 스스로가 깨닫는 순간이 온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초원이가 하루 먼저 죽는 삶'을 놓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장애'라는 지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기보다 '성장'이라는 지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보인다. 여기서 성장은 초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주적인 삶의 성립으로 볼 수도 있고, 경숙이 꿈꾸던 이상을 포기하고 마침내 한 자아로서의 아들을 완성시키는 모성애의 성장으로도 볼 수 있겠다. 




나는 이 영화를 표현할 때 '장애를 극복'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든다. 물론, 초원이가 결국 42.195km의 마라톤을 완주했지만 이걸 극복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다. 완주를 했다고 해서 장애가 갑작스레 완치된 것도 아니고, 초원이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도 아니고, 어머니와의 사이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변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눈에 띄는 인물의 변화라면 마라톤을 함께한 코치 정욱(이기영 분)의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그렇지만 이것이 영화 스토리 전반부에 어마어마한 핵심 요소도 아니고 무언가 '극복'했다고 말하기엔 어색함이 있는데 말이다. 실존인물이신 배형진 분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초원이도 영화 속에서 초원이의 삶 그대로 살아갈 것인데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추신이지만, 영화 속에서도 그렇듯 그 누구도 장애라는 상황을 벗어나 극복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포함한 그의 가족 누군가는 굳이 '극복'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평범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데 마치 무언가 성공했다는 것처럼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개인의 신체적 한계나 주어진 환경을 이겨낸 것이 위대한 업적이긴 하지만 개인의 성공을 장애의 극복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이 영화를 본 지 몇 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후에도 많은 영화들을 봐왔지만 연출, 연기, 메시지 이 삼박자가 이렇게나 잘 엮어진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타 작품들에 <말아톤> 프레임을 씌우는 게 어쩌면 편협할 수 있지만, 이 영화만큼 탐구하지 않는다면 관객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식상하고 고전적인 시나리오임에는 분명 하나 그에 뒷받침되는 탄탄한 연출력과 섬세한 시나리오 작업을 부정할 수는 없다. 소재 자체가 흥미롭긴 하나, 흥행을 끌기에는 완벽히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이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 와서 처음 보게 된다면 괜스레 민망하고 촌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만한 가치가 있는, 아니 보아야만 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진 출처 : 말아톤 .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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