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솔 Mar 20. 2018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잘 알고 있기에,

故김광석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는 쉼 없이 헐떡이며 당신을 떠올리고 게워낸다. 크게 숨을 들이쉴 때, 뱉어낼 때 당신이 나의 호흡을 방해한다. 목을 턱 하고 막아서 아무 단어도 뱉을 수 없을 만큼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 독한 가슴 한편을 묵묵히 잡아내고 쥐어뜯을 만큼 힘을 내지만 분수처럼 터져버린 마음을 막아낼 기력이 없다. 나는 또 울고, 운다.


추억은 습관이 되어서 버릇처럼 당신을 뜯고 만진다. 무의식 중에도 당신은 문을 두드리고 강제로라도 내게 추억을 강요한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을 모습 하나가 덩어리 지어 나의 생을 잠식한다. 이제 당신을 떠올리는 것도 고역이고, 내게 정신적인 힘을 요구하는 일인데 나는 그 피곤한 짓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결국 기력이 모두 빠져 바닥까지 아래로 깊이 내려가지만 헤엄쳐 나오지 못한다.


기나긴 아픔 뒤로 흐르는 나의 모습을 가엾게 여긴다. 보잘것없는 보자기를 펴고 나면 나는 꼭 끌어안고 저만치나 멀어진 당신을 기다린다. 발길이 닿는 대로 떠나가버린 당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진 한 장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당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되새긴다. 혹여 잃어버릴까 봐 가슴에 품었다가 다시 잃어버릴까 눈에 새겨두고를 반복한다. 지독한 이 슬픔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어도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피가 나도록 이어 붙인다.


십자가 앞에 내려온 피에타의 마리아처럼 나는 적막하게 울부짖는다. 다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었구나. 하나도 자라지 못한 내가 여기 있었구나, 못난 내가 여기 있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다시 의미부여를 시작했구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도, 감정적으로 나를 이해한 답에서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나는 속죄하는 죄인처럼 겸허히 아픔을 받아들이다가 이내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진다.


새벽녘 청승 떠는 모습도 지겨울 때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쏟아낼 때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조금 솔직함을 덧붙여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유치함일까. 고뇌하고 뱉어보아도 아니겠지만 주워 담기엔 이미 늦었다. 이토록이나 어리석은 마음을 쉽게 슥슥 지워냈다면 나는 더욱 불행하고 아픈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이 자체로 때론 축복받을 걸까.


밤이 있었다. 눈이 세상을 덮었고 차가운 손 하나가 가슴 아래로 떨어지던 밤. 별빛이 세상 가득히 덮고, 세상 속에 나만 존재하던 밤. 사무치던 그 감정을 부여잡고 목소리 하나에 벌벌 떨던 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저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던 밤. 그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 모든 아침을 뒤엎고도 돌아갈 자신이 있는데 밤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당신 짝이 있음을 상기하고 늘 깨닫지만 때론 좀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내게 스스로 상처받을 짓으로 위안을 하고 있다. 이 무한의 위안을 이어가다 보면 화가 나기도, 한심하기도 하지만 당신이 나의 별이었음을 어찌 잊으리, 그리고 그 별이 내 소유임이 아닌 걸 알아도 어찌 내가 마음을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있을까. 삐썩 말라버린 나뭇잎을 세게 쥐면 혹여 부서질까, 당신의 모습조차도 곤히 잡는 나는 도무지 잔인해질 자신이 없다.


여기, 조용히 스탠드를 켜두고 글을 남긴다. 가느다란 펜촉에 무거운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내린다. 조용하고 적막하게 노래 하나는 덤으로 나를 흩트려 놓는다. 멍해진 눈빛과 힘이 다한 손으로 타자를 한 자 한 자 내려칠수록 나는 죽어간다. 당신의 생각 한 조각에, 나의 단어 하나가 만들어지고, 당신의 소식 한 번에, 나의 문장 하나가 이루어진다. 내가 가만히 어느 순간을 떠올리면 당신은 다가와 조용히 손짓하고 떠난다. 나는 그 손을 부여잡고 타자기까지 끌어내어 누르고 누르고 눌러낸다. 찍어낼수록 나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음을 알면서도.


당신. 노을이 지던 때와 새벽녘 떠오르는 해였으며, 풀벌레 우는 소리와 이어 이슬 맺히는 순간에 물방울이 떨어지던 때였다.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초저녁 초라한 곳에 피어난 등불 하나를 가만히 어루만져 보면 퍽이나 당신이 밝아져 나의 온 공간을 뒤튼다. 그럴 때일수록 펜을 들어 한 자 꾹꾹 종이 위에 써내려 가던 촉감과 함께 묵묵히 셔터를 꾹 눌러내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 하고 깨닫는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 그러니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