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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28. 2018

" 감정의 촉각 "

허무하게 남은 것들

나는 실체없는 당신이 그립다.


선명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젠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고, 전부였던 것이 아릿하게 떠오르는 것들도 있다. 시간은 제 역할을 다 해주었다, 이제 내 몫만이 남았는데 나는 아직도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기억이나 추억 같은 건 갈수록 희미해지는데 유난히 떠오르는 것은 촉감, 그리고 실체 없이 이어지는 감정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요즈음에는, 코가 맞닿던 순간이 자꾸 떠오른다. 샛별이 떠오르는 밤중에 그 부드러웠던 촉감이 나를 온통 헤집어 놓는다. 취기에 놀라 입에서 코로 향긋이 번져오던 술의 냄새, 어둠이 얼굴을 가리던 순간에 실눈을 뜨어 마주 보던 당신의 눈매, 가라앉은 목소리로 쉬이 귀를 간지럽히던 당신의 목소리, 두려움에 꽉 잡아 맞닿았던 깍지 끼던 손바닥의 온도, 모든 것이 촉감처럼 내 얼굴 마디마디를 어루만진다. 또 그 모든 것이 몸에 닿았던 것처럼 내 밤을 스쳐 지나간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멍하니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 오는 촉감을 떠올린다. 당황하던 눈동자 정면에 포개져 있던 그 손. 머리 위로 따듯한 봄바람이 닿으면 당신이 나의 머리를 말려주던 때, 드라이기의 바람과 내 머리에 닿던 당신의 온기 어린 손의 촉감을 떠올린다. 아직 마저 떠나지 못한 겨울의 바람은 추웠던 겨울바람 속 내 볼 위로 닿던 당신의 조그맣던 손의 촉감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순간에 무엇과도 당신과 붙어있구나, 이렇게라도 핑계를 만들어 당신을 잊지 않고 싶어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닿기나 할까. 당신이 내 손을 잡았을 때 같은 마음이었던 것처럼 부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당신도 내가 가졌던 촉감을 떠올려주길. 그게 어려운 일인 걸 알아도 다른 사람과 잡은 손바닥 위로 나를 떠올리길. 내가 가졌던 손의 온기가 따듯해지라고 빌었던 그 밤에 내 손이 따듯해지던 기적 같은 순간이 다시 오길.


홍조 띄우던 볼에 차갑게 닿았던 당신의 입술이 떠오를 때면 나는 다시금 미쳐버린다. 그 순간에 내가 가진 당신을 모두 불러와 내 몸 구석구석에 문지르지만 이내 허망하게 사그라들고 만다. 고작 한 번의 당신일 뿐인데 나는 하루를 온전치 못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실체 없는 감정과 선명하지도 않은 촉각 덩어리들이지만 여전히 나를 하늘까지 올렸다가 지하 아래로 추락시켜버린다. 내 몸이 산산조각 나고 휴짓조각처럼 휘날릴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입술 하나를 잊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실체 없는 감정에 집착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지 그립게 하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답 비슷한 것을 내려도 내 감정의 이유를 완벽히 설명해주진 않는다. 이 감정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싶어,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어 몇 번이고 설명해보려 했지만 이 감정은 도통 설명되지가 않았다. 타인에게는 그저 슬픔으로 비치는 내 감정이 안타까워 내보이려 하는 것도 마음 아프다. 하긴, 나조차도 사랑이었나 싶어 수백 번 고개를 흔드는 주제에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역겹다. 그럼에도 조용히 손안에 꽉 쥐고 내 감정을 바라보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이게 혹시 원망하는 감정이라면 내가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늘 고민하고 내게 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결국 원망인지 죄책감 일지 답은 당신일 텐데도 나는 자꾸 내게서 답을 찾으려고만 한다. 때론 가슴 한편에 먹먹히 아려오는 감정에 손도 못 댈 만큼, 당신이 오는 순간이 이제는 반갑지 않다. 원치 않을 때 왔다가 원할 때에 도망가 버리는 당신이 내 하루를 무너지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 감정은 공포일까, 두려움일까. 내 감정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나는 그만 무너지고 만다.


이게 혹시 그리움이나 슬픔일까. 내가 가진 이 감정이 그리움에 가까운 것 같아서 나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애틋한 감정이 느껴져 주저앉아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리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 비참하게 무너져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도 그 사람에겐 좋은 모습으로 남겨줄 수만 있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 아, 나는 여전히 이 감정이 그립다. 당신이 그립고 당신과 나누었던 감정이 그립다. 수없이 되뇌지만 내 감정의 전부를 표현해주진 않는다. 그냥 그대로 당신이 여전히 그리울 뿐, 욕심이 나고 아프고 괴롭고 같은 것들의 복잡한 것들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것들만은 뺏기기 싫어 매일 밤 당신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별이 뜨는 시간도 코끝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순간도 이미 밤이 지나가버린 때에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 감정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나의 마음은 저 멀리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당신에게 거짓말처럼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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