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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13. 2018


" 그러니까 "

오늘 나의 기분은 뭐였을까.

스스로 생각해봐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았어.

아침이 오는 소리에 조용히 눈을 떴어. 내 몸의 감각이 도통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아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참을 누워있었어. 발끝부터 느껴지는 냉기가 시리도록 온몸을 휘감았을 때,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어. 나는 억지로 소리를 내어 이름을 불러보지만 공허할 만큼 아무도 없었어. 오로지 이 공간에 덩그러니 나만 남겨져 있다는 느낌이 너무 싫었어. 나는 도망치듯 침대에서 벗어나 핸드폰을 바라봤지, 수없이 떠있는 알람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씻지도 않은 채 모자를 꾹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어. 아무것도 없는 안에서 아무것도 없는 밖으로.


요즈음에 나는 아무것도 없어. 지독하리만큼 평범해서 가끔은 내가 누군가의 배경이 돼버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내가 살아있는 여기는 드라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배역을 맡고 있는 단역이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어. 그럼 누가 주연인 걸까, 대체 누가 나의 인생에서 나를 대신해 주연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내 인생에서조차 나는 주연이 되지 못하고 단역으로 살고 있는 걸까. 그럼 이 조그마한 내가 하는 이 짓도 대본으로 이루어졌던 걸까. 내가 저쪽 거리에 멈춰 서 이런 멍청한 생각을 했던 것도 다 만들어진 걸까. 나는 왜 그랬지. 몰라, 아무 생각 없이 슬퍼져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도 발길을 이어갔어. 근데, 드라마가 끝나면 수고했다고 누가 말해줄까, 보상이나 결과물이 있을까. 혹시나 끝난 뒤에 그럴 수 있다면 얼른 끝내줬으면 좋겠어. 그런 게 아니라면 내가 죽을 때까지 드라마를 끝내지 말아줘.


갑자기 세상이 너무 비대하게 느껴졌어. 내 발은 고작 이만큼인데 세상은 너무 과하리만큼 부풀어져 있는 거야, 그래서 기분이 오묘해지더라고. 너무 비대한 나머지 내가 끼어들어갈 곳이 없어진 것 같아. 좀 더 커지게 되면 나는 여기서 튕겨져 나가지 않을까, 갑자기 무서워져서 애꿎은 발가락만 내내 꼼지락거렸어. 세상이 내 공간을 남겨주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고개를 들었어, 저 사람들은 저만치 바쁘게나 흔적을 남기고 있더라고, 흔적이 너무 섬세해서 마치 저기 있는 공간이 저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어. 나는 그냥 멍하니 저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었지. 나는 그럴 수 없었거든.


꽤나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어. 내가 못난 사람처럼 느껴졌거든. 나는 빈번히 사랑에 실패하고,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여전히 똑바로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 잘 돼간다고 느낄 때쯤에 항상 누군가 훼방을 놓는 기분이 들어. 실제론 아무도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가끔은 더 괜찮아 보이려고 했어. 그럴 때일수록 더 아무렇지 않아보려고 노력했지. 근데 그러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더라고. 그냥 아무것도 없이 평생을 부유하고 싶어 지는 느낌 말이야. 그렇게 사는 것도 한두 번이지 평생을 이어갈 순 없는 거잖아. 난 정말 구제불능인가 봐. 너도 그렇니?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그런 거니? 나만 이런 거라면 나는 내일 일어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유리잔을 너무 많이 깼어. 미끄러지고 놓치고 힘을 너무 줘버리고, 갖가지 이유로 눈앞에서 깨져버렸어. 어떤 건 목이 떨어지고, 어떤 건 통째로 박살이 나고, 어떤 건 내 손을 스치면서 상처도 내더라고. 근데 빗자루로 쓸어 넘기다가 어쩐지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씩씩대고 있는데 또 측은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깨진 유리잔을 한참 동안 쳐다봤어. 이 유리잔이 혹시 내가 아닐까. 잠깐만 손에서 놓아도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게 꼭 나를 닮은 것 같더라고. 유리잔은 깨져버리면 돌릴 수가 없잖아.


글쎄, 사실 좀 아픈 것 같아 요즘. 덤덤해 보이고 괜찮아 보이는데 조금 아픈 것 같아. 드러나지 않게 작게 아팠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만 치나 심해졌지 싶어.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지. 내가 했던 말대로 나는 평생 불운하고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일까. 모르겠어.


습관처럼 네 생각을 했어. 왜 있잖아, 하루 일과 중에 하나처럼 느껴지는 것 말이야. '아, 이 시간 때쯤이면 소리 없이 네가 들리겠구나' 하고 말이야. 오늘도 그랬어, 거리를 걷는 동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네 생각이 나더라고.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아무 감흥이 없었어. 그냥, '그게 너였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헛웃음만 푹푹 내쉬었어. 그렇게 죽도록 앓고 별 짓을 다했는데도 나는 네 세상에 내 흔적 하나 못 남겼다는 게 우습게 느껴졌어. 그렇게 구질구질해서라도 네게 봄이고 싶었다는 게 애처롭더라고.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걸로 남겨질 거였으면 난 왜 그렇게 아등바등 걸렸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슬퍼지는 것 같아서 생각을 관두기로 했어. 관두기로 할수록 더 파고든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랬나 봐.


그러니까, 오늘의 나는 뭐였을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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