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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용산역, 그 주변부 이야기

그 동네에 살았지요
꽤 오래전이라 기억됩니다

작은 역이 있었고
낡은 빌라와
그보다 덜 한 우리 아파트

90년대의 땟국이
옥상부터 맺혀 있던
폐쇄된 동네

길을 따라 옆 켠엔
작은 역이 있었구요

누구도 쓸 일 없던
허무한 역사
괴기한 주변과

어쩐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 버린
주눅이 든 거리

사람들은 그곳을
용산역이라
이름하였고

예의 모습처럼
홍등가가 난립했지요

젊은 마음에
길을 걷다
늘상 어색한 장면은
아가씨 건물과
건너편 정육점의
살가운 배치도

주홍색 형광등은
매양 다를 것이나
기표는 하나일 뿐
'낙인'이란 걸

집을 떠나 있었고
모든 게 수상했던
그 해 겨울

사람들은
옥상에서
삶을 멈추며
길은 파해지더니

어느 날인가
길 앞엔
미사가 있었지
못 본 체
고개를 숙이며
죄스레 걸어간 날들

하느님
우리를 위해
울어 주소서

여성의 모습으로
주홍의 빛은
모질게 남아 섰지
경찰서 옆 사창가

그 길을 따라
옹색하게 걸리던
현수막의 글귀
'우리는 감금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모든 게
감당할 수 없었거든요
아마 연상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왜 옥상에서
사람들은
불길에 화하고
시인은
평범한 사람을
읊조렸던지

낡은 역사는
삽시간에
뭉개져
무엇으로
화할 참인지

감금과 도피
떠나가는 입영열차
추운 겨울과
옆 골목 미군부대

한강이 지척이나
강을 본 적 없이
낮은 곳에 임한
사람들

가끔 1호선을 탈 때
지나치던 노을은
아름다웠다지
애써 찾은
다리는
삶을 마감하는
최전선인 바

그 날 바라보던
강물은
무슨 색이셨나요

가족을 보내고
시간이 지나고
제트리피-케이션이라네
빌딩이 들어서네

울던 노인과
미사보던 신부님
늙은 창녀와
우리네 한쪽 가계가

랜덤으로
사라져 가던
그즈음

뒷골목
헌책방 주인은
비 맞은 책을
떨이하며
커피를 건네는데

모두가
이명 속에 혼란할
기찻길 삶이지만

가리어진 공간에도
감정은 존재하기에

서울의 새벽
시린 불빛 속에
여기만은
아니라 했지만

하나 둘 가고 넘고
나도 떠나고

장소는 시간 속
슬픈 지층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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