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불안한 휴머니스트 굴비씨
Mar 02. 2024
애써 주신 선물은 감사합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지요
재작년에는 입춘까지도
가지 위에 감이 남아있곤 했는데
이 겨울은 그런 맛이 없군요
더 온전한 계절이었고
눈도 오질 않더라 했는데
나무는 다르게 생각했나 봅니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주차장
시큼한 밤공기 속에서
희미한 온기를 느꼈습니다
여전히 기온은 영하일 것이나
그 오래전 기억 속
봄날 저녁에 지어내던
밥의 향기와
햇살의 잇금이 남을 적 까지
돌아오지 않던 가장의 모습
문께에서 서성이던
늙은 개의 푸근함마저
분명 봄이 오기는
올 모양입니다
오랜 내음이
베어감을 보니 말이지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었지요
다만 살아갈 뿐입니다
그 목적이나 방향성은
오래전에 잊힌 듯하나
한 번 들어온 길이
늘 두 갈래는 아니기에
느리지만 걸어갑니다
삶의 모습이 경주가 아닐진대
빨리 걷지는 못하겠네요
차라리 처음부터 늦었다면
그저 기억나지 않던
최초의 뜻처럼
걸어가겠습니다
오래된 가객이 남긴
잊힌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