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04

(안) 즐거운 편지- 부제: 공간의 왜곡

by 낭만지리 굴비씨



1.

하루에 도대체 몇 개의 카톡이 쏟아지는가. 수십 군데에서 수백 개?
그중 90%는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지만, 혹여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까 싶어 스치듯이라도 훑어보게 된다. 인간의 습성이라는 게 그렇다.

특히 나처럼 강박이 있는 사람은, 그 작은 ‘1’이라는 숫자를 견디지 못한다. 결국 시간 날 때마다 모든 메시지를 열어젖힌다. 내가 봐도 환자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광고, 잡다한 글까지 전부 열었다 닫았다 한다. 애초에 손가락이 습관에 길든 탓이다.

오전에 출근해 방학을 맞은 고3 아이들을 상대로 짧은 강연을 하고, 다시 맡은 일들을 처리하러 복도를 걷던 길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온 고3 남녀 아이들이 사복을 입고 들뜬 얼굴로 전시장 옆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 나도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참 단순한 사람이다.

2.

그때 손에 들고 있던 폰에서 ‘깨똑’이 울렸다.

습관적으로 화면을 열었다. 또 광고겠지 싶었는데, 뜬금없이 ‘성평등가족부’의 메시지였다.
순간 마음이 불길하게 가라앉는다.

여성가족부의 이름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그 이름으로 오는 메시지 중에 나를 편하게 만든 편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은 이렇게 묻고 싶을지 모른다.
“그럼 안 열어보면 되잖아요?”

그러나 나는 반드시 봐야 한다.
딸을 가진 아빠이기 때문에.
이 메시지는 우리 지역의 새로운 ‘성폭력 전과자’의 주소와 인상착의를 고지하는 알림이다.

3.

손이 떨렸다.

수능 성적표를 받을 때의 떨림과는 전혀 다른 떨림이다.
‘혹여 우리 아파트 근처면?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그 불안이 먼저 밀려온다. 만약 그렇다면 딸에게 무엇을 어떻게 대비시킬 수 있을까. 이 한 장의 건조한 편지가, 결국 알아서 가족끼리 지키라는 말이 아닌가 싶어 분노도 치밀어 오른다.

지지난번에는 실제로 우리 아파트 바로 건너편 건물에 사는 사람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겪고 난 뒤, 나는 내가 얼마나 좁은 인간인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쪽 횡단보도는 의식적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 무언가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어둡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커피 사러 가던 익숙한 동네 길이, 아이와 손잡고 걷던 평범한 보도가, 하루아침에 ‘피해야 할 곳’으로 바뀌었다.

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본격적으로 충돌한 계기를 만든 것이 하마스의 까쌈 로켓이다.
까쌈은 값은 싸고 만들기 쉽지만, 문제는 어디로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쏘는 사람도, 맞을지도 모를 사람도 모두 두려워한다.

이 편지는 그 까쌈로켓과 같았다.

언제 올지, 어디에 떨어질지, 어떤 불안을 던질지 모르는 공포의 신호탄.
딸을 둔 부모라면 이 편지를 뜯지도 않고 버릴 용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편지를 열 때마다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붕괴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나머지는 각자 지키세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예방한단 말인가.
나는 편지를 받은 뒤 횡단보도를 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작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야 할 곳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을 세밀하게 감시하고 관리하는 일일 텐데, 지금의 시스템은 불안만 이쪽으로 넘긴다.

때로는 사회적 낙인이 주홍글씨처럼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물릴 수 있는 카드와, 애초에 물릴 수 없는 패는 분명히 존재한다.

5.

그렇게 공간이 왜곡되어 간다.

뭉크의 그림처럼, 저쪽은 소리 지르는 얼굴이 떠 있고, 이쪽은 어두운 건물이 웅크리고 있으며, 저 멀리 아파트는 음영 속으로 가라앉는다.
내가 자유롭게 걷던 동네, 아이와 웃으며 산책하던 거리가, 한 장의 알림으로 인해 비틀리고 굽어진다.

우리 주변에 성폭력자는 왜 이렇게 많은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들을 저지하는 대신, 두려워하는 법만 배우고 있는가.
알림 한 장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내 딸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편지가 올 때마다, 나의 세계는 조금씩 더 일그러진다.
강박적으로 확인하던 ‘1’이라는 숫자가, 이제는 공포의 신호가 되어버렸다. 그 사소한 한 글자가 내 일상을, 그리고 우리가 누려야 할 공간을, 한 통의 편지씩 조금씩 왜곡해 간다.

* 쓰고 보니 정말 강박증이 맞는듯 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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