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끄적끄적 06

카나리아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십여 년 전, 박사과정 시절이었다. 당시 동료들과 17세기 어느 지식인의 일기를 강독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집안에서 일하던 머슴이 부친상을 당하자, 일기 주인은 그에게 40일의 휴가를 주며 필요하면 더 말하라고 했다. 나는 처음 그 글을 보며 ‘보름쯤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에, 그 너른 배려가 의외였다. 물론 한양에서 부산까지 걸어 보름이 걸리던 시대였지만, 그 머슴은 멀지 않은 고을 사람이었다.

그 장면을 읽으며, 논어에서 신종추원(愼終追遠, 장례를 신중히 치르고, 조상을 잘 추모하라)을 강조한 이유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죽음을 온전히 예우하는 일은 공동체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대하는가를 말해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2.

오늘 아침, 또다시 주민번호와 각종 신상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씁쓸하기 그지없는데,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이어폰을 꽂은 채 걸음을 옮긴다. 맞벌이를 하며 새벽배송을 쓸 수밖에 없는 우리 같은 가정에 이 업체는 이미 대체할 수 없는 독점 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하루치 뉴스를 몰아 듣다 보니 온통 그 회사 이야기다. 듣지 말 걸 그랬다. 마음이 여린 나는 그런 소식 하나에도 잠이 설친다. 결국, 새벽녘까지 뒤척이다가 다시 글을 붙들게 되었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그 회사의 노동자 오 씨는 올해 들어 여덟 번째 희생자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멈춰 세운 건, 그가 아버지의 장례 발인을 마친 지 채 하루도 쉬지 못한 채 현장으로 돌아왔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발인을 치르고 하루 더 쉬던 토요일, ‘오늘 나올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다시 배송을 나섰다.

3.

부모의 장례에서 5일을 쉬는 것은 고용노동부 표준 취업규칙에 명시된 최소 기준이다. 그러나 현실은 법전에 적힌 문구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긴급했을까. 그렇게 사람을 재촉해야 했을까.

기사의 다음 문장을 듣는 순간,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오 씨는 평균 주 6일, 83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하루 14시간씩 쉼 없이 배달을 해야 하는 일정이다. 잠은 언제 자며, 가족과는 언제 이야기를 나누는가.

영국 산업혁명기 노동자의 평균 근무시간이 주 6일 72시간, 하루 12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세기에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고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열어 다시 인스타그램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언뜻,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4.

옛날 탄광의 광부들은 유리통에 카나리아를 넣어 들어갔다. 카나리아는 산소 부족을 가장 먼저 느끼기 때문에, 그 작은 새가 쓰러지면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곧장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과문한 내가 들은 말 가운데 하나는, 시대가 어려워지면 시인과 작가가 카나리아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공기가 혼탁해지면 먼저 입을 막는 대상이 이들이었고, 그들의 침묵 속에서 시대의 위험이 드러났다고.

그 회사는 올해만 여덟 건의 죽음을 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근무일지를 공개한 적이 없고, 책임을 인정한 적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추정만 할 뿐이다.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일했고,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사회의 가장자리에 몰린 노동자들이 이미 숨이 가쁘다. 그들의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카나리아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죽음을 보고 무엇을 깨달을지는 오롯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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