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市隱
1.
대학 시절, 전공필수였던 도시지리학 수업에서의 일이다.
호랑이 같던 J교수님이 어느 날 “오늘은 영화 본다”고 말하셨다. 단, 팝콘 금지. 허투루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상영된 작품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마지막 장면에서 두 남녀가 도시를 등지고 끝없는 국도를 걸어갈 때, 강의실은 숨도 죽인 듯 고요했다. 영화가 끝나자 교수님의 질문이 이어졌고, 내게 돌아온 물음은 이것이었다.
“저 두 남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모범답안은 ‘도시에 환멸을 느껴 시골로 떠난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괜히 반골 기질이 발동했다.
“길이란 결국 도시와 도시를 잇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저들은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도시로 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순간 강의실 공기가 미묘하게 식었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오래 남아 있다.
2.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건 없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는 달랐다. 저녁 시간, 거실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아버지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프로그램을 좋아해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캠핑 정도라면 모를까, 그것이 삶 전체의 방식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아직 모르는, 노년 남성이 감당해야 했던 어떤 외로움과 체념의 결 같은 것이 그 웃음 속에 스며 있었을 것이다.
3.
문득, 한 달 여간 절에서 머물렀던 시기를 떠올린다.
사실 그 절은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독립문에서 이화여대로 넘어가는 터널 부근, 산 모퉁이에 걸린 작은 사찰. 들어서면 사방이 산이라 잠시나마 서울을 잊게 하지만, 20분만 내려오면 이화여대와 독립문이 바로 이어지는 묘한 공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과 단절되고 싶었다.
산중 깊은 곳도, 유명한 선방도 아닌 '서울 한가운데'에서 은둔을 꿈꾸는 모습이 어쩐지 우스웠다.
하지만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도망이 꼭 멀리 가야만 가능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시장통 속에 몸을 숨긴다’는 뜻의 시은(市隱).
그 한 달 동안 나는, 도시라는 거대한 소음 속에서 나름의 은둔을 연습하고 있었다.
4.
세상이 지독하게 버거워 숲으로, 산으로, 섬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다. 어떤 이들은 정말로 그곳에서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흔히들 말하듯,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결국 돌고 돌아 사람에게서 치유된다.
영화 〈삼사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속세를 떠났던 이가 다시 길을 돌아 나가며, 오래 품어온 수수께끼의 답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다에 던지면 되느니.”
불교에서는 선을 닦는 최고의 길 중 하나를 ‘인중선(人中禪)’,
즉 부대끼는 사람 속에서 닦는 선이라고 한다.
산중의 고요보다,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며 마모되고 다시 가다듬는 과정이 더 어렵고 더 깊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내려앉는다.
---
야근 끝에 흐트러진 정신으로 툭툭 써 내려간 글이지만,
이 엉성함 또한 지금의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도시 속에 숨어 잠시 숨을 고르는 이 ‘시은’의 시간을, 나는 나름대로 견디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