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악락
1.
20대 후반의 어느 시기, 나는 방랑자처럼 지내고 있었다. 소속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편한 존재가 되어 있었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서울 근교의 작은 사찰에 머물게 되었다.
작은 방 하나를 받았고, 공양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주지 스님은 예불에 참석하든 말든 전혀 구애하지 않았다. 오후에 일어나도 스님은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며 허허 웃을 뿐이었다.
사찰 살림은 보살님 두 분이 맡고 있었는데, 한 분은 에세이 작가였고 다른 한 분은 음식 솜씨가 좋았다. 방에는 인사 한 번 나눈 적 있는 아저씨 한 분과 조용한 여교수님도 함께 머물고 있었다.
2.
절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도서관이 있었고, 나는 거의 매일 그곳에 갔다. 사립이었지만 무료였고, 시설도 좋아 오래 머물기 좋았다. 그 도서관이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밝은 채광 아래에서 책을 읽는 일은 유난히 편안했다.
도서관 옆은 외가였지만, 나는 끝내 들르지 않았다. 왜였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초라한 모습이 보이기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 질문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주지 스님은 매일 새벽 예불을 올리고 절 주변을 손수 정리하셨다. 저녁 공양 때에는 소주 한두 잔을 드셨다. 처음엔 달갑지 않게 보였지만, 스님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단정했다. 나에 대해 묻는 일 없이 조용한 말만 건네는 태도가 있었다. 그 침묵이 배려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물어보지 않는 것, 그것도 한 방식의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3.
어느 날, 툇마루에서 이문열의 『금시조』를 읽고 있었다. 스님은 그 책을 모르셨지만, 금시조가 불교의 가루다 새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경전의 내용을 한참 말씀하셨다. 스님은 늘 내 마음의 문고리를 조용히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아저씨와 여교수님은 공양 때 함께 식사했고, 보살님들의 손맛 덕분에 식탁에는 늘 새로운 음식이 올랐다.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처음에는 그 자리가 어색해 피하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간을 기다리는 때도 생겼다. 인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천천히 변해간다.
그 무렵 나는 서당에서 1년을 마치고 나와 마음이 가라앉지 않던 시기였다. 문득 『맹자』의 구절이 떠올랐다.
獨樂樂(독악락), 與人樂樂(여인악락), 孰樂(숙락)
혼자 즐기기보다 함께 즐기는 것이 더 좋고, 많은 이와 함께할 때 가장 즐겁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마음 한쪽을 건드렸다.
스님은 식사 대신 소주잔을 들고 우리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 시선이 담은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가르침이었다고 느껴진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4.
세상일은 조용한 틈에서 방향이 바뀐다. 그 절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독서하던 몇 장면, 산책, 절하는 순간 같은 것들만 산발적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군데군데 끊겨버렸다. 하지만 그 끊김조차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훗날 어머니를 통해 스님 소식을 들었다. 외가에 들렀을 때였다. 뺑소니 사고로 의식을 잃은 상태라는 이야기였다. 청천에서의 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스님을 찾아가지 못했다.
왜였을까. 그 이유를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겁이 났던 걸까. 혹은 내 초라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걸까. 그 결정은 마음 한쪽에 가시처럼 박혀 남았다.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니며 무언가를 묻고 있다.
5.
오늘 박물관에서는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모두가 바쁜 와중에도 서로를 돕는 모습은 늘 감사드리는 마음뿐이다. 이런 순간에 감사가 차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맡은 일을 조금 더 정성껏 하는 것뿐이었다.
오후 무렵,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어떤 제품을 좋아하는지 몰라 하나씩 물어보고 피자를 주문했다. 우리 집은 도미노만 먹는지라 처음엔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행히 충분했다. 직원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다 보니, 피자 한 조각과 콜라만으로도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 음식을 나누는 시간. 그럴 때였다. 스님이 소주잔을 들고 우리를 바라보던 옛날이 떠올랐다. 크게 말 없이도 함께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의 모습이. 그 공양 시간 식탁 위의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독악락 여인악락 숙락.
그 말의 뜻이 그제야 몸으로 이해되었다. 혼자보다 함께일 때, 그것도 말 없이 함께할 때 무언가가 완성된다는 것. 전시도, 밥상도, 이 작은 일상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전시실 교대를 위해 자리를 떴다. 돌아가며 생각했다. 그 절에서 보낸 몇 달 동안 나는 분명 무언가를 배웠다. 스님의 침묵과 시선 속에는 이미 말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늦은 깨달음이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직도 마음에 박혀 있는 그 가시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될까 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