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시준비하면서 주역점을 보다

by 낭만지리 굴비씨

1.


전시 준비는 프리랜서의 일이 아닌 이상, 담당자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는 담당자의 노고는 물론, 동료, 다양한 협력업체, 도록 제작사, 대여 기관 등 수많은 관계자들이 정밀하게 연결된 총체적인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그렇기에 긴장감은 늘 따릅니다. 특히나 평생 서지학자로서 홀로 연구에 매진해왔던 저에게, 이렇게 대규모로 얽힌 네트워크 속에서 일 대 다수의 멀티플레이를 수행하는 것은 몹시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저의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전체 일정에 영향을 미치기에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때로는 이 무거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결정을 더 확고히 내려야만 했습니다.


2.


두어 번의 전시를 치른 뒤, 저는 전시를 앞둔 8개월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주역점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점을 해독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전시가 무사히 진행되기를 기원하는 작은 의식이었습니다. 요즘은 산가지 뽑는 앱도 있더군요.


'잘될 것이다'와 같은 긍정적인 점괘는 힘든 한 달을 버티게 하는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점괘에 의지했던 것은 일이 유독 고되고 불안할 때였습니다.


전시 개막이 20일도 채 남지 않게 되자, 업무량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납니다.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큰 특별전을 담당했던 한 선배는 제가 일이 얼마나 바빴냐고 묻자, 그 상황을 이렇게 압축했습니다.


"오후되기 전에 휴대폰 충전이 다 닳곤 했어요."


3.


오늘도 아침에 나와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카카오톡과 전화, 이메일이 동시에 울리고, 저를 찾는 목소리들에 응답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이었습니다.


문득 어제 뽑았던 괘사가 떠올랐습니다. 여기 글을 읽으시는 전문가분들께는 부끄럽습니다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개막 17일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산가지로 점을 쳤는데 처음 보는 괘가 나왔습니다.


'택수곤(澤水困)'


연못에 구멍이 났으니, 곤궁(困窮)함을 면하기 어렵다.

몇 분간 어질어질했습니다. '매우 곤란하다', '일이 안 된다'는 부정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잠시 멈춰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저는 늘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이 점을 친 것은 아닌가 하고요. 이처럼 쓴소리를 들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손을 배우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전시의 성패는 하늘에 달린 것이며, 점이나 제 바람과는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저에게 주어진 몫은 묵묵히 노력하고 마지막까지 맡은 일을 책임지고 끝내는 것뿐이라고 다짐했습니다.


80년간 단독 전시가 없었기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귀한 지리지(地理誌)를 소개할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에 감사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택수곤' 괘에 담담히 감사하게 됩니다.


4.


사람이 살면서 굴곡 한 번 없이 어찌 살겠으며,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는 전시 준비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남은 17일이 조금은 더 겸허하고 담담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승패를 가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매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택수곤' 괘에 대한 글을 더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부연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 괘는 길하지 않으나, 다만 대인(大人)에게는 길하고 형통하리라."

"군자는 이 괘를 가지고 자신의 사명에 도달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된다. 마치 사마천처럼..."


저는 감히 그분들의 수준에 비할 수 없겠으나, '곤궁의 괘'를 만났다면 맡은 자로서의 사명감을 품고 묵묵히 노력해볼 따름입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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