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불안한 휴머니스트 굴비씨
May 23. 2023
점심마다
같은 절에 간지
석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때는 연꽃에도
아직 주홍빛이 있었지요
어느 날
낮은 길목에
들꽃이 피더니
오랫동안 지질 않았고
끝내 시들지언정
색이 바래지 않았는데
일주문을 들어서면
모든 일이
처음으로 리셋되며
어스름한 걸음으로
절을 하여 봅니다
바람이 세 번 부니
이파리가 날리는데
나이 든 비구니 스님은
머리에 수건을 얹고
무심히 내 앞을 지나가는데
대웅전 뒤에는
언제나 응달에
좌측 명부전에는
떡 상자가 수북하고
사십구재를 하려는
가족들은 저 켠으로
낯선 객은 대웅전 안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습니다
그걸 부정하려던
그런 적도 있었지요
사랑을 떠나려 한
시간도 있었지만
당신은 언제나
미소만 지으시는군요
다만
감사드립니다
돌아 나오는
점심 나절
이파리는
한 번 더 수분을 짜내고선
서걱거리기 시작하는데
멀리서 노스님은
비를 꺼내
쓸기 시작하시고
이 돌개바람 속에서
또다시
돌아서 일주문을 나서면
다시금 현실인데
참 재미나군요
구운몽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저
웃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