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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야근, 그리고 늦은 귀갓길에

2023.02.17.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 아이에게는

부디 꿈이 없기를


다만

스스로에게

황홀을 느끼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를


아버지는 몰랐구나

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야망을 가지라던

고개를 들고 앞을 보라던

부질없는 문구들


기억나지 않는구나

앞만 보고 걸어가던,

그래서 형제가 떠나가고

친구가 사라지고

숨차다는 사람을

애써 무시하면서


저 길 앞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던가

왜 어릴 적, 아무도

인생이 여행이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을까


아무 곳이나 가도 된다고,

출발점도 종착지도

등수도 없는 곳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걸어가다 만나는 인연이

그렇게 소중하였다는 것을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지나가는 하루가

감사와 경이로 가득했음을

노래 가사로 알아야 했던가


아빠는 오늘 슬프구나

열심히 일하던 한 선배는

늘 일을 못해 혼이 났었단다

다들 그가 무엇이 정말 장점인지

알고 있으면서

험담하던 시간의 1분만이라도

그에게 진지한 시간을 가졌다면

어떠했을까.


그 역시 나와 같은 부류였나 보다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있으면서

맞지 않는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머리가 다 빠지도록

땀 흘리던 세월에


50줄이 넘어 퇴직을 신청한

그에게 나는 대리만족을 느꼈던 거야


그런 그가 1년 만에 폐암 4기라는구나

퇴직하자마자 책을 한 권 내었던 그에게

아빠는 그저 죄송하다고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단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있었거든

하지만 알고 있었을 거야

같은 과라는 것을 말이다

혹은 우리 모두가 말이야


나이가 들 수록 더 슬퍼질 것 같구나

아가야

꿈은 꿈일 뿐이란다

자신을 사랑하렴

늙은이의 한탄은

다 들을 것이 못되더구나

아빠의 말도 말이다


스스로 걸어갈 것이다

너는 말이야

외롭지만 늘 새로운

여행의 삶으로


아빠는 오늘도

트랙을 돌고 있구나

몇 번 남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해

잠도 오는구나


허한 오전이 지나

너를 만나는 길

오늘은 잠들지 않은

너를 안아줄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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