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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세상의 평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세상을 살아가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같은 분야만을 걷게 되면 저 앞에 있는 사람과 내 옆사람만 보이기 때문에 처지는 발걸음에 자존감도 같이 낮아지곤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경험이 많았던 것 같아요. 좌우를 돌아보며 곁가지를 넓히는 성품이 못되었던 때문이겠지요. 60년 전에 지미 핸드릭스 노래가 새삼 생각납니다. 태양에서 세 번째 돌멩이... 그 위에 사는 우리들은 위아래를 나누고, 상하를 가르는군요.


퇴근을 위해 책가방을 정리하다가 몇 주전의 일이 떠올라 글을 남기게 됩니다. 누구에게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스스로 기억의 편린을 그 어떤 방법으로든 갈무리하고 싶었거든요.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자문을 해달라고 연락이 온 게 일이 있기 몇 주 전이었습니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할만한 전공과 연구를 하는 저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더군요. 제 전공은 고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 같은 그런 고지도 말이지요.


초여름이던 그날은 오후부터 비가 느리게 왔었지요. 직원분과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자문을 원하는 '그'를 만나러 갑니다.

"00시에 대한 고지도를 찾아서 목판을 새기고 싶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금 여쭈어 봅니다. 백발의 장인은 신념에 가득 찬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요. 정석의 길로만 살아간다면 뒷골목 포차에서 2차 정도는 지나야 옆 테이블에서 통성명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을 그런 드문 만남이었겠지요.

"00시의 고지도를 목판에 새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자문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다지 신통치 못한 학자로, 요행히 이 근방에 이런 주제를 연구하는 이가 저였던 까닭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5분, 10분 형식적인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30분 40분이 지나자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저는 차를 한 잔 더 요청할 정도가 되었지요. 찬찬히 귀로 들으며 작업실을 눈으로 둘러봅니다.


세월호가 있었고 현직 대통령과 그 전전 전의 대통령의 모습이 소담하게 조각되어 종이에 찍혀 있습니다. 공적인 자리는 사상과 이념과는 벽을 쌓아야 하겠기에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빗소리를 느낄 뿐이었지요. 담당 직원은 옆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함께 필기하고 있었지요. 제 이야기는 도움이 될 게 없을 텐데도요. 2시간의 예정된 시간이 마무리되어 갑니다. 서로에 대한 시큰둥한 감정이 어인 일인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10분의 시간을 더 요청했고, 그분은 자신의 작품을 하나씩 설명해 주셨지요. 그리곤 몇 장의 판화 인쇄물을 저에게 손으로 말아 주셨습니다. 남북 정상을 아로새긴 그의 다양한 작품 가운데 뒷 배경이 대동여지도의 백두산 모습임을 알아보고는 미소가 번집니다. 쓸모없는 공부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리곤 다시 한번 그와 같은 작품이 저의 작은 지식과 함께하길 기원해 봅니다. 세상의 평화는 마블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겠지요. 이 작은 도움이 더 나은 세상과 예술을 만들어 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고지도 공부를 계속해야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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