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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튀김집 앞에서

  출장과 주말 당직으로 이번 주에는 이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저녁나절 무엇인가 허전하여 동료들과 두어 차례 방문했던 맛집을 찾아갑니다. 한 집은 마지막 손님을 막 받았고 또 다른 집은 닫았더군요.


  어두운 관사에 혼자 있기가 싫었나 봅니다. 이리저리 차를 굴리며 길을 따라 흘러 다녔네요. 그러다 오래된 시장골목에 차를 세워 봅니다. 얼마 전 방문했던 한 튀김집이 생각났거든요.


  길거리에 있던 한 튀김집. 정말 평범하고 하루 종일 볕이 들지 않는 간이 가판대에  주인아주머니는 연신 튀김을 만듭니다. 시장이 파하는 시간 즈음에 아주머니는 어눌한 한국어로 튀김을 권하고 600원짜리 상추튀김과 깻잎튀김을 먹었지요.


  세상에. 600원 튀김에 꽉 찬 고기 속이라니요. 게다가 너무 맛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일본어 억양이 채 가셔지지 않은 가운데 셈을 더디게 하셨지요. 다문화 사회라지만 지방의 쇠락한 시장통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사연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나 오늘이 되었지요.


  튀김은 이미 다 팔리고 없습니다. 고구마튀김만이 저를 반기네요. 아주머니는 이제 장사를 파하려 합니다. 제가 안쓰러웠는지 고추튀김과 김말이를 다시 만들어 주시네요. 사람이 북적입니다. 제 옆에 있던 이들은 저보다 단골일 테지요. 하나하나 계산을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아주머니는 3800원을 3000원만 달라하고 제 옆의 모녀는 기어코 동전을 꺼내서 쥐어주네요. 주인이 가격을 깎는 건 처음 봅니다.


  그 사이 네 개의 튀김이 제 앞에 나왔고 몇몇 이들이 남은 게 있냐고 지나가며 묻습니다. 저 아래 준비된 튀김옷을 보았거든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다 팔렸다고 손사래를 치네요. 그리고 저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돌아서서 서툰 한국어로 혼잣말을 하는 것을요.


"욕심부리면 안 돼. 오늘은 여기까지다."


  사실 하루종일 힘들었습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일은 일대로 꼬이고 위에서는 쉼 없이 프로젝트 압박이 들어오고, 가족의 불화나 개인적인 우울함이 세 쌍으로 밀려오던 하루였지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겁니다.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고추튀김이 매워서였겠지요. 


  아주머니는 마지막 남은 고구마튀김 두 개를 저와 옆의 다른 연인에게 맛보라고 주는군요. 연인들은 끝내 고구마값 500원을 더 내고 갔습니다. 이 즈음에서 저는 단막극에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분명 2700원어치를 먹었는데 아주머니는 더듬거리며 셈을 하더니 2000원만 달라고 합니다. 앞의 테이블처럼 돈을 더 드리려고도 했으나 그냥 따르기로 합니다. 대신 다음에 한 번 더 오지요.


  가끔 들르게 될 것 같습니다. 간장에 튀김을 찍어먹으며 왜 그리 눈물이 나려 하던지. 사람이 그리웠던가 봅니다. 아니면 그리 원하던 인간다움의 무엇인가를 이곳에서 보았기 때문일까요. 사람들에게 블로그로 홍보를 하거나 sns에 올려 대박을 내주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가만히 포장마차를 벗어나며 그냥 모든 것이 그대로 있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저 혼자 가끔 가려고요. 전 욕심둥이니까요.


  탐하려는 사람들과 탐하는 자들. 그리고 월요일이면 득달같이 달려들 정치와 기싸움이 아련하지만 잠시나마 이곳에서는 체온을 느꼈습니다. 걸어가는 길에 할머니 두 분이 시장길에서 인사를 하시네요.


"죽지 않고 있었구먼."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또 보네."


자꾸 울컥거리게 되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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