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삶으로의 도피는 무엇을 주는가?
1년 전 심장약 부작용으로 폐출혈이 있고 나서 예전의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감기도 자주 걸리고, 먹는 약이 늘어나다 보니 위장장애까지 생긴다. 아픈 곳이 늘어나니 삶의 열정이 식어가고 의지는 약해지기만 한다. 감기로 한 달을 보내고 위장장애로 또 한 달을 보내고 나자 몸도 몸이지만 자꾸 마음이 무너지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 나았네. 혈색이 좋은데.” 물론 고마운 말이다. 멀쩡하게 걸어 다니니 좋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남의 속도 모르고 쉽게 하는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꼭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아픈 사람인가?’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이번 주에 나올 거죠?”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임에도 다시 나오고 봉사활동도 하자는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머뭇대기만 한다. 아프다고 해야 할지, 몸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제는 상태가 그럭저럭 좋았는데, 오늘은 또 상태가 안 좋고 오락가락하니 나부터 헷갈리고,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불 붓듯 일어나다가도 금방 사그라져버린다. 그러다가 혼자 이런 결론을 내린다. ‘우선 건강부터 제대로 회복하고 난 후에 해야지.’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과 자꾸 회피하려고만 한다는 자책감이 든다.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 나 스스로 상처를 입고 있는 건지 이것 역시 혼란스럽고 괴롭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만남을 줄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당면한 내 문제와 내가 원하는 일에만 집중하니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불편과 갈등이 줄었다. 책을 읽고 산책하고 글을 쓰는 일, 이렇게 생활이 단순해졌다. 온갖 세상일에도 무관심하려고 노력한다. TV, 신문, SNS 등은 온통 정신을 흩트려 놓는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실시간으로 세계를 연결하여 모든 것을 알려준다. 많은 것을 알면 세상을 잘 알 수 있을까? 지식과 정보가 상업화되고 왜곡이 되어 오히려 길을 잃을 지경이다. 나는 자발적이고 선택적 고립을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것만 보고 듣고 만나고 일하기로 했다.
그런 어느 날 같은 성당에 다니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그분으로부터 고립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오히려 더 자주 만나고 싶고 진솔하게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분은 술을 좋아하고 나는 술을 못한다. 특별한 용무가 있지 않는 한 술을 좋아하는 남자들의 만남은 대개 술을 매개로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기대하는 만큼 친밀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나를 고립하려들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나를 자꾸 끌어들이려고 한다. 사는 것이 이렇게 엇박자이다. 다행히 그분은 나에게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걸어왔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봉사에 오라는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서 어려운 부탁을 한다고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아프기 전에 기쁘게 함께 했던 일이다.
성당에 도착하니 남자는 3명이고 여자는 8명이었다. 여자들은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계란말이가 프라이팬 위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대형 가마솥에서는 삼계탕이 끓고 있었다. 그날의 메뉴는 밥, 삼계탕, 계란말이, 콩나물 무침, 무말랭이무침, 그리고 지역 제과점과 식당에서 기부받은 제과, 빵, 죽이었다. 여자들은 일하면서 웃음이 그칠 줄 모르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시키는 심부름 하며 그래도 흡족한 표정이다.
음식이 준비된 후 남자들은 자동차로 배달을 나갔다. 일일이 가정을 방문하고 음식 가방을 전달하고 나니 오랜만에 노동의 피로가 몰려온다. 그러나 그 피로감 속에는 알 수 없는 달콤함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소란함이 친밀감을 더하고 고립으로 굳어있던 마음의 근육이 풀린다. 음식을 받아 들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하는 노인들이다. 하루하루의 힘든 삶의 모습과 외로움과 슬픔이 짙게 배어있는 얼굴들을 대하면 가슴이 뜨끈해진다.
내가 원하는 일만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단순한 삶으로의 도피가 주는 생활은 안락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안락함이란 무기력의 다른 모습이었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근육이 풀리고 나른한 날이 늘어갔다. 기대한 것만큼 건강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고 자꾸만 아픈 곳이 새롭게 생겨났다. 어쩌면 감기는 나에게 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병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하고 섞이는 삶으로부터 도피는 몸과 마음을 더욱 나약하고 나태하게 하였다. 무사안일만을 꿈꾸는 삶은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될 것이다. 몸은 더 병들고 정신은 쇠락할 것이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서 노동이 주는 달콤한 피로와 소란함 속에서 오히려 삶의 활력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느슨한 근육을 긴장시키고 잠자는 세포를 깨우고 있었다. 자신만을 지향하는 삶이 자기 발전이라는 착시 현상에 사로잡혀 고립과 고요함 속에서 머무르고 싶었지만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사회를 만들어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살아야 비로소 한 인간이 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잡한 삶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여야 한다. 다시 도피를 시작하여야겠다. 고립되고 안락한 삶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내가 도피하여야 할 것은 ‘도피로부터의 도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