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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지정葡萄之情

나를 지탱하는 것

by 김운

“오매 내 새끼 잘 잤냐!”

어릴 때 잠에서 깨어나면 외할머니가 내 엉덩이를 ‘툭툭툭툭’ 두드리며 하는 말이다. 나는 외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잠을 잤다. 외할머니는 팔이 아프고 저렸을 터인데도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날 때 보면 그때까지 팔을 베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팔을 살며시 빼고 내 엉덩이를 몇 번이나 사랑스럽게 두드리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 새벽에 정지문을 열고 아침밥을 하러 나가셨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어머니는 첫아들인 나를 낳았다. 그 무렵 아버지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간병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갓난아기를 병원에서 키울 수 없어서 외할머니가 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 젖을 먹을 수 없게 된 나를 데리고 다니며 다른 아이 엄마의 남은 젖을 얻어 먹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는 젖이 없으면 굶어야 했다. 그러자 아기에게 먹일 분유가 없던 시절, 당신이 직접 생쌀을 입에 넣고 죽처럼 될 때까지 곱게 씹어서 침과 함께 내 입에 넣어 먹게 하였다. 어린 자식을 위해 어미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 껍질과 씨를 가려낸 후 입물림으로 먹여주며 키우는 포도지정葡萄之情으로 나를 키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비위생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때 당시로서는 외할머니가 나를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지극한 모성애였다. 아마도 외할머니는 나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살이라도 아깝지 않게 떼어 주셨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외할머니의 애틋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2년 만에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돼서야 학교를 다니기 위하여 아버지,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우리 집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사는 곳이 더 내 집 같았고 항상 외할머니 집이 그리웠다. 나는 종종 동네 앞동산에 올라 외할머니가 있는 동네를 바라다보곤 하였다. 우리 집과 시오리 거리인 외할머니 집은 강진만 바다가 가로놓여 있어서 산 위에 올라 바라보면 동네 맨 뒤쪽에 자리한 외할머니 집이 아스라이 보인다. 마치 바다 위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그림 같은 동네는 맑은 날이면 당장이라도 외할머니가 집 뒤꼍으로 나와 모습을 보일 것 같은 생각에 빠져 한참을 서 있다가 내려오곤 하였다.


방학이 시작되면 다음날 외할머니에게 갔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는 날, 바로 하루 전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외할머니는 방학 때가 되면 내가 올 줄 알고 토방 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돌담길 맨 끝에 대문도 없는 초가집이 보이면 벌써 외할머니는 나를 보고 버선발로 뛰어나오셨다. “오매 내 새끼, 내 강아지 왔냐!” 하며 연신 “어이구 내 강아지, 오매 내 새끼”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자식이라고는 어머니 한 사람뿐인 외할머니는 귀하디 귀한 피붙이인 손자가 돌아올 방학을 나보다 더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침에 잠에서 깨면 내 엉덩이를 ‘톡톡톡톡’ 두드리며 부엌으로 나가고, 방학 한 달 동안 모든 사랑을 다 주셨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 외할머니는 떠나는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정류장에서 한 점, 점으로 남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은 외할머니의 사랑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다. 내가 성년이 되고 사회에 갓 진출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해 뒤에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도시로 나가고, 독립하고, 외롭거나, 불안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행복해하며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들, 딸을 낳고 손자, 손녀가 생기게 되니 불현듯 외할머니가 그리워진다. 나이가 먹어 갈수록 자꾸만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사랑이 더 필요한 걸까?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제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사랑을 베풀 나이인데.


주말이면 손자, 손녀가 집으로 온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이려고 부산해진다. 나는 외할머니의 포도지정을 생각하며 밥상에 올라온 생선의 가시를 발라 아이들에게 준다. 배불리 밥을 먹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이내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간혹 아이들에게 혼을 낼까 싶다가도 그럴 수 없다. 오히려 함께 뒹굴고 장난을 치며 논다. 외할머니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을 흉내 내어 보는 것이다. 내가 잘못을 해도 조용히 웃으며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맨몸으로 삭막한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고난과 시련으로 지치고 실의에 빠져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울 때, 과연 누가 이 아이들의 힘이 되어 줄까? 그 무엇이 이 아이들을 지탱해 줄까?


안도현 시인이 ‘연어’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나 아닌 다른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배경이 되는 것”이라고. 외할머니는 마치 나의 배경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나에게 모든 사랑을 베푸셨다. 당신의 삶을 어디에도 드러내놓지 않고, 가운데에 놓지 않고 배경이 되는 삶을 사셨다. 나의 배경이 되어 준 외할머니의 사랑과 삶은 내가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 기꺼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었다.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도,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외할머니의 사랑은 오래도록 식지 않는 온기로 남아 나를 지탱해 주었다. 이제는,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는 그 사랑을 꺼내어 나누어준다. 나누어주어야 할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을 받아 줄 가족이 지금은 나를 지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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