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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밝은데,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갔을까?

내가 본 최초의 영화 '빨간 마후라'

by 김운

초등학교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지금도 어느 여름날 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잠을 자다가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 그때는 시계라는 것은 간혹 부잣집에나 있는 물건이어서 가난한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그랬다. TV도 라디오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시계가 없으니 지금이 몇 시쯤인지 초저녁인지 한밤중인지 새벽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방 안을 살펴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옆에 없었다.


우리는 단칸방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여동생 네 명이 함께 살았다. 내 옆에는 여동생만 자고 있었다. 분명히 처음 잘 때는 다 함께 잠을 잤는데 왜 이 밤중에 아버지 어머니는 없는 것일까? 더군다나 부엌에서는 계속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부엌에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고 어린 나이이지만 예감에 도둑이 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두려움에 몸이 얼어붙은 채 이불속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도둑이 금방이라도 방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궁리를 해보지만 방법이 나올 리가 없었다. 다행히 부엌에서 나는 ‘달그락’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된 후에 조용해졌다. 아마도 도둑이 볼일을 다 보고 돌아간 듯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실까?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길래 자고 있는 우리만 남겨두고 한밤중에 집을 나갔을까? 한참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귀를 쫑긋 들어보고나니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아하! 그렇구나. 지금 영화 상영을 하는구나.’ 드디어 답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낮이었다. 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방송 차량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스피커로 방송을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주민 여러분을 모시고 오늘 밤 8시 초등학교 뒤 공터에서 영화 상영이 있사오니 많이 많이 관람해 주기 바랍니다. 시네마스코프 총 천연색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신영균’ 주연 ‘빨간 마후라(머플러)' ‘빨간 마후라’ 를 오늘 저녁 8시 초등학교 뒤 공터에서 상영할 예정이오니 손에 손을 잡고 많이 많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를 두고 두 분이서 살짝 영화를 보러 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자고 있는 동생을 깨워서 밖으로 나왔다. 부엌에는 들었던 도둑은 나가고 조용하였다. 마당으로 나오니 마침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동생 손을 잡고 대낮 같은 동네를 빠져나와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름달이 떠 있어서일까,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가 그곳에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조금도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듯이 씩씩하게 밤길을 걸어갔다. 우리 집은 초등학교의 정문 앞에 있어서 학교 담장을 끼고 500미터 정도 걸어가면 공터가 나오고 그곳에 천막을 친 1일 가설극장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천막은 이미 걷혀 있었다. 영화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천막을 거두고 표 없는 사람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텅 빈 야외 공간에 하늘을 배경으로 한 하얀 스크린은 사방 모서리에 튼튼한 끈을 묶고 기다란 기둥에 고정시킨 채,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었다. 주연배우 신영균이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공중 비행을 하면서 적의 비행기를 향해 총탄을 퍼붓고 있었다. “빨간 마후라(머플러)는 하늘에 사나이 하늘에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하늘 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그 옛날 60년대 유명한 ‘빨간 마후라’의 영화 OST(original sound track)가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크린 앞 쪽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달도 밝은데, 달 아래 오붓하게 앉아서 두 분은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집에는 도둑이 들고 아이들은 공포에 떨며 아버지 어머니의 묘연한 행방에 애태우고 있었던 상황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평화롭고 다정한 모습이었다. 일순 분위기를 깨우고 말았다. 나와 동생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놀라서 어리둥절하였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오매, 느그들이 먼 일이다냐!?” ‘먼 일은 먼 일이에요. 무서워서 아버지 어머니 찾으러 왔지요.’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완전체로 영화를 보았다. 몇 분 남지 않은 영화였지만 나는 그때 본 ‘빨간 마후라’가 내가 본 최초의 영화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달빛이 흐드러지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네 식구는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 어머니와 맞잡은 손을 심하게 흔들며 조금이라도 더 행복을 느껴보려고 애썼다. 아버지 어머니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모처럼 활짝 웃으며 행복해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조금 지난 1960년대,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집은 단칸방이고 가전제품 하나 없고 세간이라고 해보아야 가구도 없이 이불, 옷, 그릇, 항아리 등 살림살이에 꼭 필요한 것들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불행이라는 것을 쉽게 떠올리려 하지는 않았던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함께 어려웠고 그래서 모두 함께 도우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60년 전 우리 집에 들어와 부엌에서 음식만 먹고 조용히 돌아간 그 도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도둑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영화를 보러 가고 아이들만 집에 남아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신발을 보면 알 수 있고 방문도 열어 보았을 수도 있다. 그 도둑은 고픈 배만 채우고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다. 나는 이 도둑이 참으로 고맙다. 그때는 도둑도 선량한 사람들이었나 보다.


그때 아버지 어머니의 달빛아래에서의 데이트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방해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단하고 팍팍했던 시절, 비록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몰래 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지금도 내 기억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다. 또한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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