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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Dec 01. 2019

글 얼마어치 써드릴까요?

당신에게 줄 마음이 내겐 없는데요

지망생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뜻한다.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밝고 희망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수 지망생, 배우 지망생, 감독 지망생, 공무원 지망생 등등,

세상에는 지망생이 참 많다.


그런데 작가 지망생들은 스스로를 망생이라고 부른다.

전에는 그저 지망생의 줄인 말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망생이가 망할 놈의 인생이란 의미로도 쓰인다는 걸 알게 되자 잠시 멍해졌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서..

또 그게 납득되는 현실이 서글프고 울적해서..


작가는 프리랜서다. 간혹 업체에서 일한다고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4대 보험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미래에 대한 그 어떠한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라는 꿈을 위해 자기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글을 쓴다.

그래서 자기 몸이 타들어가도 불꽃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에 비유되곤 한다.


꿈은 누구나 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그만큼 꿈이라는 명분은 무모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가끔 폭력적이고 부당하기까지 하다.

일테면 돈에 대한 문제에서 그렇다.

작가가 돈 얘기를 먼저 꺼내면

작가가 돼가지고 무슨 돈을 그렇게 밝히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작 그런 말을 하는 당사자는 자기 몫을 이미 챙겼거나

아니면 꼬박꼬박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돈만 밝히면 속물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도 엄연히 직업이고,

직업이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직업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글 값을 요구하는 데 있어 움츠리지 말고 당당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글을 써야 한다.

글이 곧 작가의 자존심이며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단막극 한두 편 방송했을 무렵, 한 드라마 감독님의 연락을 받고 제작사에서 미팅을 가졌다.

감독님은 우연히 내가 쓴 미니시리즈 기획안을 본 뒤였고 과분할 만큼의 칭찬 일색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함께 일을 해보자는 말에 나는 계약조건에 대해 물었고 그러자 그분 역시 그랬다.

무슨 작가가 돈을 그렇게 밝히느냐고 면박을 주었고, 돈은 나중에 다 챙겨줄 테니 일부터 하자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작가도 사람이고 감정이란 게 있다 보니 돈을 받으면 그만큼 더욱 열심히 쓰게 된다고.

그런데 돈도 못 받고 일을 해야 한다면, 저는 자존감이 떨어져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없다고. 저는 돈 받은 만큼 일한다고 쐐기를 박아 버렸다.

그런 말을 하는 나를 당돌하게 쳐다보던 그때 그분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이후에 그분과는 연락이 끊어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때를 후회하지 않는다.


작가들의 꿈을 빌미 삼아 돈도 안 주고 일을 시키려 하는 건 착취다.

그런 사람들의 꿀 바른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일 확률이 크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저마다 처한 상황과 경우가 다를 것이며

그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전적으로 본인 선택의 문제이다.

오죽하면 돈도 안 받고 일을 하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 글을 인정하고 나와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돈으로 나를 구차하게 만들지 않는다.

글 값을 주고 당당히 좋은 글을 요구한다.

기회인지 착취인지 구별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꿈과 낭만에 기대어 살기에는 요즘 작가들의 삶이 너무나 곤궁하고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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