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마음으로만 잘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글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혼자 보는 글과 함께 보는 글. 그리고 돈이 되는 글.
돈이 되는 글은 대개 누군가의 검열을 거치기 마련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드라마 글은 특히 더 많이.
피드백받은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일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보조 작가의 도움을 받는다.
보통은 한두 명이지만 그 이상을 두는 작가들도 있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조 작가 구인 글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꽤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드라마 제작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득 보조 작가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봤다.
보조라는 말은 보태어 도움. 주되는 것을 상대하여 거들거나 도움. 또는 그런 사람.
작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보조 작가이다.
그런데 난 이 말이 참 이상했다.
작가면 작가지 보조 작가는 뭐지?
물론 보조라는 말은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작가라는 말에 붙으면 어딘가 애매하고 불편했다.
예전에는 제자의 의미로 문하생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제는 그 말이 고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접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실제로 뽑는 사람도 가르칠 제자를 원하지 않는다.
결국은 보조 작가가 아니라 그냥 작가를 원한다.
그게 힘들 뿐이다.
단막극 공모전 당선 이후 보조 작가 의뢰가 자주 들어왔다.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내 작품을 하나라도 더 써두고 싶었다.
보조 작가는 내 작품을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날도 보조 작가 의뢰 전화가 걸려왔다.
한창 도서관에서 내 작품을 쓰고 있을 때였다.
일단 소개해주신 분을 생각하니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할 때 하더라도 일단 면접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장 잔고를 보자 갑자기 갈등이 생겼다.
아껴 쓴다고 하는데도 늘 잔고는 간당간당. 그만큼 마음은 텅 비어갔다.
초조하고 답답한 내면이 글 안에 고스란히 담기는 듯했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하기로 마음먹자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다.
온에어 중인 연속극 대본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초인적인 힘이 필요했다. 작품 이외의 것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그건 보조 작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느라 머리를 쉴 틈 없이 돌려야 했고, 매 순간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까 봐.. 한 글자도 쓰지 못할까 봐.. 나의 한계와 마주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시절, 나는 분명히 뜨거웠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뜨거워져야 한다.
쓰게 만드는 힘. 즉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건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난 보조 작가가 내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돈 때문에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보조 작가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으로는 절대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을.
글을 쓰기 위해선 예열이 필요하고,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자존심과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 내가 쓰는 글이 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작가가 아닌 ‘보조’라는 말에 내가 방점을 찍었다면,
아마 나는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보조 작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보조 작가가 하는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런데 그보다 먼저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뜨거워질 준비가 되어있는지..
‘보조’라는 말 뒤에 숨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작가'와 '보조 작가'의 온도 차이가 크면 클수록
내 역량을 발휘 못한 채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일만 하는
말 그대로 작가가 아닌 보조로써 끝이 나게 될 것이다.
처음 돈 때문에 시작했지만, 나는 보조 작가를 하면서 다시 못할 큰 경험을 얻었다.
단막극과는 다른 긴 호흡을 배웠고,
드라마 제작 과정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체득했고,
그에 대처하는 작가의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또.. 생각지도 못한 큰 기회와 만날 수 있었다.
변화의 조짐은 늘 전화 한 통이었다.
뜻밖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은 프리랜서의 삶에 변곡점이 되곤 한다.
길조가 될지 흉조가 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모든 일은 시작된다.
그날 역시 그랬다.
한창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하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시 그 작품의 담당 부장님이었다.
그분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고 의아했다.
나에게 다음 작품을 맡아보라는 것이었다.
보조 작가가 아니었다. 메인이었다.
솔직히 긴가민가했다.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가 이제 막 중반부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그냥 일개 ‘보조’ 작가일 뿐인데? 갑자기 다음 작품을 맡으라고? 이걸 믿으라고?
역시나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었다.
그때부터 테스트가 줄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메일로 전해받은 드라마 기획안에 대한 모니터를 써야 했다.
보조 업무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하고 수정 방안에 대하여 적어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이 나 이외에도 여러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는 걸.
그 가운데 선택되었고, 그다음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획안 전체를 갈아엎고 나만의 새로운 기획안을 쓰는 작업이었다.
그제야 나는 직감했다. 이건 기회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보조 작가 업무와 새 드라마 기획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몸도 힘들었지만,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모든 게 물거품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까 봐. 나의 노력이 외면당한 채 버려질까 봐.
예상대로 여러 우여곡절이 찾아왔다.
그것 역시 전화 한 통이었다.
갑자기 걸려온 감독님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다 없던 일이 되기도 했고,
반대로 내가 전화 한 통으로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한 적도 있었다.
다 자포자기한 날이었다.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은 결국 내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될 일은 어떻게 해서든 되고야 만다.
운명이란 그런 것. 벗을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에 대한 믿음.
그동안 숨 쉬듯이 글을 쓰고 또 썼던 나를 믿었고 내가 쓴 글을 믿었다.
그것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든 테스트를 통과했다.
사람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보조 작가로 일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나의 보조 작가를 두고,
나의 작업실에서 나의 글을 쓰는 장편 드라마 작가가 된 것이다.
삶은 늘 우리에게 조용히 시그널을 보낸다.
시련을 통해서, 고통을 통해서,
가끔은 뜻밖의 전화 한 통으로,
생경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때론 그곳이 가시덤불 벼랑 끝일 때도 있다.
떨어지거나 비상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거나.
무엇을 하든 괜찮다.
누가 뭐래도 그게 최선일 테니까. 열심히 나를 응원할 뿐이다.
삶은 매일 반복되는 것 같지만, 끝없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무한의 이야기.
날씨와 햇살 정도에 따라 수십 가지의 빛깔로 변주되는 광활한 바다.
그래서 구질구질하고 누추하지만 끝까지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