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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Oct 04. 2022

어딘가 좀 이상한 우기

자고 일어났더니 갇혔어요

태국은 요즘 비가 많이 쏟아진다. 이상할 정도로.


"원래 태국은 비 많이 오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이번 우기는 조금 이상하다고들 말하고, 나 역시 내가 알던 기후 현상이 아니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근 1년 반만에 치앙마이지만 내가 알던 치앙마이가 아니다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 가운데, 기후의 배신은 조금 벙찐다. 저 하늘 위에서 물바가지를 한 짐지고 어디 쏟을지 각잡는 조물주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치앙마이 기준으로 3월~4월부터 9월~10월까지는 우기로 치고 비가 오질나게 오는 것이 국룰이다. 내 체감상 하루 두 차례 정도로 스콜성 폭우가 쏟아지는데 쏟아지는 시간도 묘하게 비슷해서 일기예보와 함께 아주 조금의 신통력과 운만 갖춰진다면 비에 상관없이 싸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비가 쏟아지는 상태에서는 1시간 이내로 그칠 것을 예상하고 그냥 타협하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피해를 안 받는다고 정신승리하는 경우도 많다. 


부슬부슬 오는 비도 오곤 하는데, 이 경우에는 그냥 쌩까고 돌아다니면 된다. 사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경우 이 비가 정말 거슬리는데, 특히나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더 하다. 시야가 일단 가려지니 닦으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폭우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여서 다니기가 참 무섭다. 애초에 빗길 자체가 미끄럽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 내놓고 타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번 폭우는 뭔가 좀 다르다고 다들 말한다. 침수가 될 정도니. 사실 침수가 되어도 1시간이면 금방 쓰윽하고 빠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예전 뚜벅이 시절에 님만해민에서 처음 태국식 폭우를 맞이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님만의 어느 골목(지금 구글맵을 찾아보니 님만 쏘이7이 확실하다.)을 헬렐레하면서 걸어다니고 있었다. 우왕 타국의 골목길! 하면서 감탄하며 중심가 쪽으로 나오는 중이었는데 정면의 도이수텝 방면에서 거대한 먹구름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거대하고 웅장해서 마치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나오는 마더쉽(Mother ship)같았다. 그리고 그 먹구름은 굵고 큼직한 장대비를 지상을 향해 쏘아대고 있었다. 


'아, 이제 지구는 끝인가?'


하고 생각할 때쯤에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어느 가게 차양으로 숨어들었고, 비의 장막이 마치 배틀그라운드의 전자기장처럼 내 앞으로 쓰윽하고 지나갔다. 고작 비인데,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내가 피한 곳은 마사지 가게였는데 안에서 가게 직원이 환한 미소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갇혔으니 들어와서 마사지나 받고 가시렴.'의 미소에 이끌려 받고 나오니 다시 또 해가 쨍쨍하게 들이쳤다. 나의 첫 태국 마사지 경험.


그대로 원래 가려던 메인 도로로 나가니 완전 잠겨있었고, 차들이 지나다니면서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외국인 난민들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이리저리 님만해민 강을 횡단하고 있었다. 실로 진풍경이었다. 


'이 정도면 수영을 해도 되겠는데.'


또 삽시간에 물이 쫙 빠지기는 했지만 수위가 꽤 되어서 겁이 날 정도였다. 몇 개월 뒤에 또 폭우가 쏟아졌는데, 틱톡인지 페북인지 어디에 실제로 도로에서 수영하는 미친자가 도래해서 정말 깜짝놀랐다. 이걸 실화로 만들어?


마치 레이저빔 같은 강력한 비를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나는 태국 비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최근 창클란(ช้างคลาน) 지역의 침수는 좀 무섭기도 했다. 요 며칠 태풍이 온다더만 진짜 줄기차게 비가 오더니 삥 강의 물이 불어버려서 창클란을 비롯한 저지대가 모조리 침수되어버렸다. 태국 오기 직전에 강남 물난리를 목도한 직후라 그런지 더 무서웠다. 


어제 오후에는 스승님이 저녁을 먹자며 부르셨는데, 본인 숙소 근처 창클란 일대 도로 사진을 직접 찍어 보여주셨을 때는 큰일났다 싶었다. 스승님은 그 다음날 오전부터 일정이 있었는데, 도로가 물에 잠길까 봐 안전한 숙소로 미리 옮기신 뒤였다. 친한 태국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내일이면 삥 강 상류에서 물이 더 내려와 완전 잠길지도 모른다고. 


내 숙소는 지대가 낮은 편은 아니지만, 요즘은 새벽에 장대비 쏟아지면 괜스레 베란다에 나가 밖을 확인해 보곤 한다. 어제는 장대비 쏟아지는 영상을 올렸더니 서울도 장난 아니니까 괜한 엄살 말라고 한다. 아니, 나는 오도방구 타고 나가고 싶다고. 그냥 나가고 싶다고... 


가장 친숙한 기후 현상이 비인데, 요즘은 좀 무섭다. 정말 이대로 지구는 끝인가 싶기도 하다. 거, 그만 좀 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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