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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Sep 30. 2022

설마 이게 없다고?

태국에는 의외로 이런 것이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며칠 전에 지도교수님과 함께 도이 인타논(ดอยอินทนนท์)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먼저 와 계시는 교수님께 자주 연락도 못 드리고, 며칠 전에는 약속마저 파하게 된 대역죄인인 나는 넌지시 식사 어떠시냐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러자, 


'월요일에 나랑 어디 좀 갔다가 저녁 같이 함세.'


"네, 선생님."하고 대답하고 나서 그 '어디 좀'이 매우 매우 궁금해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같으면 '푸핑 궁전(พระตำหนักภูพิงคราชนิเวศน์)'으로 꽃구경 가시겠지 생각했겠지만 느낌이 왠지 쎄~했다. 그리고 막상 다음 날 교수님 차를 얻어 탄 뒤에 우리의 목적지가 도이 인타논임을 알고 경악했다. 도이 인타논은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시내에서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차로 내내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지쟈스.


그 멀고 까마득하게 높은 곳을 아무렇지 않게 하하하 운전해가시는 교수님 옆에서 나도 넋이 나가 하하하거리면서 서서히 시야를 가리며 차오르는 안개(정확히는 가스라고 한다)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 구름 속인가 부다. 살아서는 갈 수 있겠지 하면서 오르는 데 교수님께서 대뜸 태국 차에는 히터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다. 응? 진짜로요? 차를 보니 정말 에어컨 부분에 '빨간색' 표시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태국 차에는 애초에 히터가 장착되어 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이 인타논 꼭대기 기온이 그날 12도여서 절실하긴 했지만, 뭐 잽싸게 내려왔다. 

 



"여긴 태국이야, 멍충아."라고 말하듯 정말 당연하지만 이게 없나 싶을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미리 예상했던 물품 중에 하나는 단연 '때수건', 타올 드 이태리였다. 뭐, 직물을 이태리에서 수입했을 뿐이고 실제로 이탈리아와 상관이 1도 없다고는 한다. 이 하찮지만 알찬 친구가 외국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일 먼저 챙겼던 기억이 있다. 가끔 태국에서 외지로 출장을 가거나 놀러갈 때 이것을 빠뜨리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샤워용 물비누를 두 손으로 묻혀 닦는 느낌은 마치 그냥 로션만 바르고 제대로 씻는 느낌이 나지 않아 늘 찝찝했었다. 


그렇게 아쉬운 샤워를 하다가 다시 원래 숙소로 돌아와 까끌까끌한 그것으로 박박 문지르면 그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좀 오버하자면 살짝 아플 때까지 긁기도 한다. 아, 저는 어쩌면 새디스트일지도 모르겠습니 드아아아. 사실 어릴 때 목욕탕에 가면 제일 도망치고 싶었던 대상이 아버지 손에 들린 이태리 타올이었는데 현재 상황과 참 모순된다. 그때 당시의 아버지는 목욕에 늘 전투적으로 임하셨다. 초록색 때수건 안에 일반 수건을 돌돌 말아 뭉쳐 던지기 직전의 짱돌 혹은 벽돌처럼 손에 쥐고는 내 몸을 사정없이 밀어주셨다.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나도 찜질 소금을 퍼다가 뿌리면 그만이었다. 지금의 내 피부가 티타늄재질이 된 이유가 바로...

아픈 과거는 뒤로 하고 난 여전히 몸을 씻을 때 이것이 없으면 영 찝찝하다. 한 커풀 벗겨낸다는 것은 기묘한 쾌감을 가져다 준다. 

 



태국에 와서 인근 쇼핑몰이나 시장에 갔을 때 들었던 위화감이 있었다. 참으로 색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다양한 옷들이 많았다. 아마 내가 패션업계 종사자였다면 며칠 밤낮을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꺼운 겨울옷이 없었다. 아니다. 내가 이상한 거였다. 당연히 없지. 

일반적인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맥시멈 단계는 긴팔 바람막이 정도였다. 사실 치앙마이 이 동네도 추울 때는 좀 쌀쌀하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겨울로 치는데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서 나도 2년차 때에는 긴 팔 옷을 입고 출근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1년차 때는 아직 태국 패치가 덜 되어서 반팔로 출근했다가 괜찮냐는 말을 줄곧 들었다. "너 그러다 감기들어!", "글쎄요? งง"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더라. 큰 쇼핑몰에 가면 스키복도 팔고 한다. 여기에서 돈 많은 사람들은 휴가철에 스키타러 다른 나라에 놀러간다고 한다.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것은 내 태국 생활 초창기에 가히 '재앙'으로 불릴 만했다. 어딜 가든 훠킹 포리너들은 대부분 뚜벅이로 지낼 수밖에 없다. 그때는 태국 면허를 딸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라 그랩 택시가 아니면 그냥 걸어다녔는데 살도 안 빠지고 그냥 기력만 쭉쭉 빠지며 뙤약볕에 말라만 갔다. 

정말 너무했던 것은 난 그저 2차선 왕복 도로를 살짝 건너고 싶을 뿐인데 한참을 가도 횡단보도가 안 보였던 것이다. 몇십 미터를 지나 드디어 아련하게 희미하게 보이는 추억 속 전여친같은 횡단보도가 허옇게 보였는데, 이거는 뭐 횡단보도가 아니라 횡단보도'였던 것' 같은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신호등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스킬 '차선 걸치기'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용기의 물약을 한번 들이키고, 한 차선씩 건넌 다음 눈치보며 그 거대한 차의 강을 건넜다. 


물론, 오랜만에 와서 본 치앙마이는 많이 바뀌었다. 원래도 신호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새로이 단 곳도 많고, 신호등을 새 것으로 교체한 곳도 많이 생겨서 제법 다닐 만하게 만들어 놨다. 새로운 모양의 보행자 신호등도 생겨서 참 신기했다. 더 이상 메야(Maya) 쇼핑몰 앞에서 목숨걸고 건너지 않아도 된다. 이걸 참 적어도 4~5년 전에 만들어 줬더라면. 샹.

  



태국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참 댕댕이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느끼는데, 이것이 종교적인 이유라는 것을 듣고는 생각했다. 어? 그러면 여기는 개장수가 없나 보다!


어린 시절만 해도 우리 동네에도 개장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본 적은 많지 않지만 어느 날부터 동네 개들이 씨가 말랐고, 그때부터 몇 년간 냥이천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동네 무서운 댕댕이들은 싹 다 잡아갔기 때문에 결국 왕국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요즘은 한국도 도시에서는 개장수를 보기 드물지만 태국은 당연하지만 개장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개들을 잡지 않고 키우지도 않는다. 그냥 보이면 밥주고, 아파보이면 피부병 약을 발라주고 내버려둔다. 




아는 선생님 중 한 분은 몇 년째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지내신다. 태국은 어딜가나 냉방이 잘 되어있다. 너무 잘 되어있는 곳에 가면 이악물고 감기에 걸리게 해주겠다는 듯이 빵빵하게 틀어 놓는 경우가 있다. 아무튼 냉방이 참 잘 되어있다. 그래도 사방이 뚫려있는 가게가 많기 때문에 이런 곳은 선풍기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숙박을 잡을 때도 에어컨 있는 방과 없는 방이 나뉘어 값차이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건기는 그렇다쳐도 우기를 에어컨없이 어떻게 버티는지 상상이 잘 안 되지만 나는 아무튼 에어컨이 없는 방에 서 지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존경하기로 했다. 부처십니까? 인고의 수행인가요? 아무리 산간 지방 치앙마이라 해도 습한 건 습한지라 에어컨은 필수지만 없는 경우가 의외로 상당하다. 




그리고 의외로 없는 것은 시간 개념이다. 정확히는 없어지는 것 같다. 

엄밀히 계절은 있지만 외관상으로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에 1년 내내 같은 시간 속에서 사는 느낌이다. 

12월 초에 페이스북을 켰는데 서울에 첫눈이 내리는 영상을 보고 체감을 했더랬다. 아 겨울이구나 벌써. 

눈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베란다를 보면, 아직까지 푸릇푸릇한 변함없는 바깥 풍경이 마치 시간이 멈춘 곳에서 사는 묘한 느낌을 준다. 아마 치앙마이에서 의외로 없는 것은 변화를 못 느끼는 시간 개념이 아닐까 한다. 나이들수록 자꾸 뭔가 까먹는 내 정신머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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