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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Sep 29. 2022

선천적 쫄보

인생을 비교적 야물딱지고 안전주의적으로 사는 방법

오늘은 외진 곳에 꾸엣띠야우(ก๋วยเตี๋ยว)를 먹기 위해 싼티탐의 뒷골목을 돌아댕겼는데, 가게를 찾다가 들어간 뒷골목에 태국 남자 고딩 무리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일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살짝 잡았다가 풀고 태연하게 지나갔다. 까마득하게 어린 친구들이고, 가뜩이나 태국 고등학교 교복은 뭔가 좀 더 유아틱하게 생긴 느낌이 들어 위협적일리가 없지만 그래도 이들이 골목길 양쪽에 오토바이를 잔뜩 세워 놓고 괄괄하게 뭔가 떠들고 있자니 일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쫄았다. 


난 기본적으로 사람이 여럿 뭉쳐 있으면 쫀다. 예쁜 누나들이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있어도 다가가기 무섭고, 지하철에 할아버지 서넛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어도 왠지 한 소리 들을까 봐 무섭고, 일진처럼 보이는 고딩이 모여 있으면 당연히 무섭다. 얼마 전에 국수 먹고 기도 드리러 간 왓차이몽콘(วัดใหญ่ชัยมงคล)에서도 닭들이 담장에 대여섯이 모여 앉아서 '뛝뛝'거리는 것도 무서웠다. 이것이 내가 남들에게 밝히지 않은 비밀 중에 하나이다. 


무서워한다는 것이 너무 오버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렇다. 나는 괜한 위험거리를 만드는 것을 싫어한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요즘의 나는 더 그런 것 같다. 긁어 부스럼은 '대부분 아프기 마련이다.'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험이나 도전을 쉽게 관두지는 않지만 하기 전까지 백만 번은 생각하는 타입이다. 




인생 거하게 망치거나 대박을 노리는 내 친구 만화작가 J와 나는 오랜 친구이자 알코올메이트이다. 몇 년 전, 본업을 바꾸는 상당한 결단한 그였지만 사실 그나 나나 '선천적 쫄보'임은 틀림없다. 태국을 방문하기 전 단 둘이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뜸 그가 말했다. 


"나도 그렇고, 친구들 중에 문제 없고 사고 안 치는 새끼들만 모여서 정말 다행이야."

"우리들이 다 찐따여서 그래."

"그래, 찐따들은 결코 위험한 선택은 안 하거든."


J의 친척들 중 하나가 도박 이슈로 거하게 말아먹은 사연을 듣다가 나온 얘기였다. 술자리에서는 안 좋은 사례는 또 안 좋은 사례를 얘기하게 한다. 나도 도박과 관련된 들은 이야기를 꺼내고, 인생 품평을 한다. 이 자리에서는 둘 다 마치 인류학자라도 된듯 진지하게 분석한다. 이미 소주는 두세 병을 넘어가고 있었다. 타산지석이랬나. 이런 류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교훈적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교훈이랄 것까지는 없었고 여태까지 붙어지내는 여섯 명의 친구들은 모두 찐따임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이 글을 쓰기 조금 전에는 뭔가 이상한 담배 냄새가 나서 봤더니 누군가가 일반 카페에서 대마를 피우는 것 같았다. 아마 내 코가 재정신이라면, 추측이 맞다면 나는 태어나서 최초로 대마 태우는 냄새를 맡아본 것이 된다. 사실 태국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부러워 했는데, 그러던 와중에 태국 대마가 합법화가 갑자기 진행되고 나서는 나는 사실 태국 여행을 주저했었다. 


"하, 새끼 대마하러 가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까 봐. 쫄보들은 또 이 팔랑귀와 타인의 시선이 인생의 발목을 붙잡을 때가 많다. 대부분은 무지성 충동 급발진에 브레이크를 거는 좋은 장치이지만, 한번 제동이 걸리면 석 달 열흘 후쯤에 이불킥을 하며 '아, 그냥 해 볼걸.'하며 후회한다. 


뭐, 이번 상황은 달랐다. 나는 남들이 나를 불순한 목적으로 태국을 방문하는 것처럼 생각할까 봐 걱정했다. 약 해 본적도 없는데 대마 마니아가 될까 봐 포기했다가, 그래도 태국에 있을 때 신세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러 감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뭐 사 먹을 때마다 조마조마하며 대마 체킹을 하고 있다. (막상 오니 찾는 게 힘들다.) 




찐따들의 대부분의 쫄보 특성을 가진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최적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 비하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알파메일도 아니요, 그저 때가 되면 두드러지기를 바라는 잠재적 관종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위험한 것은 싫고 막상 너무 많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 훌륭하도록 쫄보다. 나같은 쫄보들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문제를 만들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항상 이러한 쫄보들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사람들이 생각들을 하는데, 사실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이 승리자고 그들의 대부분은 쫄보이며 오직 소수가 소위 말하는 영웅들이다. 사실 영웅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의 추대하고 추앙하기 때문에 소수일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우리는 쫄보 테크트리를 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쫄보'는 더 이상 비하의 단어가 아니라 '위험한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는 사람'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디폴트 조건일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 보라. 무례한 사람에게 대놓고 쌍욕을 박을 만한 정의로움이 항상 탑재되어 있는가? 무리 속에 들어가 당당히 'NO'라고 말하며 '훠킹 레볼루션 둗!'을 외칠 수 있는가. 인생 과정이 혁명이라면 당신은 영웅이고, 아니면 쫄보이며 여기에서 '쫄보'는 절대 비하의 의미로 쓰여서는 안 된다. 


안전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뭔가 현실에 안주하는 매너리즘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마치 프레임 안에 가두는, 꿈도 함부로 꿔서는 안 된다는 나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페어리 테일에서 '운명에 순응해야 해.'라고 말하는 조연들처럼 가두리 양식 안에 물고기가 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면 너무 슬프다. 나는 때로 무모함을 용감함으로 객기를 도전으로 인식하는 데 주목하는 잘못된 열정주의자들을 볼 때마다 멀리하고 싶어진다. 나에게는 그들조차도 '위험요소'이니까. 

  



진정한 쫄보는 '남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안 한다.'라는 마인드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본다. 피해를 주게 되면 '저기요.'가 나올 거고. 나는 또 그에 대한 변을 할 거고. 입에서 변냄새가 난다고 하면 싸워야 할 거고, 경찰을 부를 수도 있고 안 부를 수도 있고 참 복잡한 그거. 하기 싫다. 그것 또한 '리스크'이니까. 조심조심의 삶은 사람을 새가슴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윤택하고 평안하고 야물딱지게 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난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될 것이 아니라면 모두들 행복하게 롱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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