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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Sep 25. 2022

물리면 아주 잣되는 거얌

떠돌이 개들을 볼 때마다 킹형욱 님이 생각났어요

나는 얘네들이 외국인만 보면 짖는 줄만 알았다. 


태국에는 유독 떠돌이 생물체들이 많다. 떠돌이 고양이, 강아지, 새, 닭, 찡쫑, 뚜깨 등.

그중에서도 떠돌이 댕댕이들은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을 텐데, 내 주관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 친구들은 밤에서 새벽 사이에 미쳐 돌아갔다가 한낮이 되면 쥐죽은듯 잠든다. 마치 햇볕을 받으면 타들어가는 '나는 전설이다'의 좀비들이나 뱀파이어들처럼. 그래서 내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에서 시체들이 낮에 그늘로 숨어드는 것을 보고 처음 떠올린 것은 타 좀비 작품이 아니라 태국견들이었다. 


태국 떠돌이 댕댕이들을 마치 좀비처럼 묘사하긴 했지만, 실상 이 친구들만큼 불쌍한 친구들도 없다. 

낮에 이 친구들은 그늘밑에서 얌전히 잠만 잔다. 밥은 언제 먹나 싶을 정도인데, 불교국가인만큼 사람들은 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약도 발라준다. 예전에 학교에 상주하는 리트리버처럼 생긴 거대한 댕댕이가 보라색으로 싹 염색해서 돌아댕기길래 요즘 강아지들은 전신 염색도 하나보다 했는데, 그것이 바로 '피부병 약'이었던 것이다. 따로 주인이 없고, 하루종일 밖에 있다 보니 피부병에 취약한데 이렇게나마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뒷골목 개들은 아직도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처음 태국에 와서 '개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하하, 샹 일주일만 더 빨리 들을걸.'


이미 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맨션에는 옆 블록에 사는 검은 댕댕이가 하루가 멀다하고 놀러오곤 했다. 이름은 잘 모르겠고 해리포터를 인상깊게 본 기억을 되살려 나 혼자 '시리우스 블랙'이라고 지어놓았었다. 이 친구는 상당히 건장한 몸에 잘생긴 견빈스타일이었는데, 머리를 쓰다듬어도 전혀 거부감이 없이 헤벨렐레 하면서 엎드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운 안 좋은 날


당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댕기기 전이라 나는 편의점까지 걸어갔다가 터벅터벅 저녁 8~9시쯤 맨션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시리우스 블랙이 골목 도로 한복판에 엎드려 있었다. 어두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자태가 마치 지옥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만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벌려 맞이할 준비를 했는데, 이놈의 심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으르릉... (뭐냐 너는)"

"이 봐. 기억 안 나? 나야! 치앙마이 촌놈. 어제만 해도 같이 잘 놀았잖아."

"으르릉 왈 으를헐우라ㅘㄹㄹ(그분이 곧 강림하시리라!)"


그 친구는 악마 빙의하듯 내쪽으로 스멀스멀 위협적으로 오기 시작했고, 나는 이 친구에게 배신당한 참대한 기분으로 거대한 블록을 빙 돌아서 맨션의 왼쪽으로 돌아 들어왔었다. 아마 그대로 전진했다면 병원 신세를 졌을지도 모르겠다. 듣기로는 개에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릴 확률이 참 높은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하니 안 물리는 게 답이라 생각했다. 


공포는 이따끔씩 찾아오곤 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녀도 밤의 개들은 여전히 무섭다. 치앙마이 산티탐에서 '왓 록 몰리'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는 열린 공터(요즘 가 보니 잠겨 있었음)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한 네 마리가 상주하고 있다가 밤에 오토바이를 쫓으며 짖어대곤 했다. 나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는데, 벨로시랩터만 보면 그룹사냥을 당하던 이 때가 떠올라서 아직도 소름이 올라오곤 한다. 


이렇게 가끔 한바탕 쫓기고 나서 태국인 친구에게 하소연을 할라치면 웃으면서 


"하하하하, 그러면 밤에 안 다니면 되지요.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처음에 이 친구들이 지독한 Raist인 줄 알았다. 어떤 사람이 농담조로 외국인에게만 유독 개들이 짖어댄다는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개들이 후각이 발달했으니까 어쩌면 나도 그 거름망에 걸러져 쫓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태국에서도 외진 시골에서는 태국 현지인들의 광견병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꽤나 높은 수치로 일어나고 있다고 들어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 생각이 들었다. 



요즘 태국에 다시 와서 한 5일 정도 머문 숙소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이 든 결정적인 계기도 사실은 '개'때문이었다. 이 숙소는 치앙마이 중심에서 좀 벗어난 외진 주택가에 있었는데 주변에 가게도 없는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해가 지고, 숙소 건물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데, 태국 분 두분이 쫓기고 있었고, 뒤로는 엄청난 크기에 방깨우(태국 토종견)가 위협적으로 짖으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 오토바이는 아슬아슬하게 잡히기 직전에 가속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러다가 그 마동석 행님같은 친구가 내쪽을 바라봤다.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뒷걸음치며 로비로 쑥하고 들어갔다. 그래... 아고다가 아마 9시 30분까지는 전화를 받는다고 했었더라 분명...



개들은 본인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면 짖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성난 친구들에게 함부로 등을 보이면 오히려 뒤에서 습격당하기 쉽상이라 몸집을 키워서 내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한다. 킹형욱 선생님도 방송에서 개들 잡도리할 때 끄떡없는 자세로 훈육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는데.......

그래도 모르겠다. 아직도 큰 개들만 보면 뇌정지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도로 위에서 차를 맞딱들이고 맹수로 착각해서 뇌정지 오는 고라니마냥 요즘도 큰 개를 보면 선뜻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참, 개 참 좋아하는데. 개좋아하는데.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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